한국교회 만연한 세습 관행에 제동 건 명성교회 판결
명성교회 2년여 갈등 불씨 여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명성교회 부자세습을 무효화 한 교단 재판국의 판결은 무엇보다 국내 교회에 광범위하게 확산한 목회직 세습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로 풀이된다.
아울러 돈과 힘을 가진 대형교회의 전횡을 교단 차원에서 견제하고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실행위원장인 방인성 목사는 교단 재판국 판결 직후인 6일 새벽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세습을 금지한 법 조항을 삭제하려는 명성교회의 시도가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과 불법 세습까지 하면서 감추려는 명성교회의 각종 부패의 심각성을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형교회의 돈과 힘으로 노회와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더럽히고 추락시키는 위험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명성교회 소송을 제기한 '서울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원고 대표인 이용혁 목사도 "이번 판결은 명성교회가 교단 내에서 가장 큰 교회로서 영향력이 크지만 총회 재판국이 그것을 보지 않고 법리대로 판단해 준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교단 내에서 더 이상 세습은 안 된다고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통해 한국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교회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명성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재판국은 5일 밤 교단 내 최대 규모인 명성교회가 설립자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위임목사를 아버지의 후임으로 청빙하기 위한 결의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는 지난해 8월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적법하다며 명성교회 손을 들어준 교단 재판국의 판결을 취소한 제103회 교단 총회의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교단 총회에서 15명의 재판국원 전원을 교체해 재판국이 새로 꾸려졌음에도, 새 재판국은 이후 1년 동안 총회 결정을 수용하지 못한 채 표류해왔다.
이번 판결 직전까지도 재판국원이 세습 찬성파 8명, 세습 반대파 6명으로 갈려 결론을 못 내리고, 판결이 다음 달 예정된 제104회 교단 총회 이후로 연기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재판국은 이날 오후 5시 40분부터 자정까지 6시간 이상 릴레이 심리를 거쳐 예상을 깨는 세습 무효 판결을 끌어냈다. 재판국은 표결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막판까지 치열한 격론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이 10만명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로 1980년 김삼환 목사가 설립했다. 교회 측은 2015년 12월 김삼환 목사 정년퇴임 후 새 목회자를 찾겠다고 했으나 2017년 3월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의하면서 교회 부자세습 논란이 불거졌다.
예장 통합교단 총회는 2013년 교단 헌법에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세습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하지만 명성교회 측은 교단 헌법에는 '은퇴하는'이라고만 명시돼 있기 때문에 김삼환 목사가 은퇴하고 2년이 지난 후 청빙한 김하나 목사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청빙을 강행했다.
이는 돈과 힘이 있는 대형교회의 대표적인 세습 사례로 꼽히며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교계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명성교회를 비롯해 주요 교단에서 세습방지법을 제정했음에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각종 변칙세습이 확산하면서, 개신교계 전반적으로 해당 교회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변칙세습으로는 지교회를 설립한 후 아들을 그 교회 담임목사로 가도록 하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세습', 교차세습이 두 교회를 넘어 여러 교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자간 세습', 할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에서 손자가 목회지를 승계하는 '징검다리 세습' 등이 꼽힌다.
이런 가운데 나온 명성교회 부자세습 무효 판결은 개신교계 퍼진 세습 관행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명성교회 세습을 둘러싼 2년여 동안의 갈등이 완전히 종식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명성교회 측이 재판국 판결에 불복해 또다시 교단에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교회법이 아닌 사회법에 따라 법원에 소송을 낼 여지도 있어 불씨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 교단 차원의 세습 반대에 반발해 교단을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명성교회 대외협력실장인 강동원 장로는 재판국 판결에 대해 "예상 밖의 결과다. 올바른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니어서 현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공식 입장은 추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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