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교수> 포스터

<수상한 교수>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동안 여러 콘텐츠에서 '선생님'을 다룬 방식은 대부분 비슷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처럼 사회에 대한 높은 통찰력과 자신만의 올곧은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에게 깨우침을 주거나, <위험한 아이들>의 루앤 존슨(미셸 파이퍼)처럼 독특한 수업방식으로 문제아들까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이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교사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 작품, <수상한 교수>는 기존 작품들이 다뤄온 교수의 이미지를 와장창 무너뜨린다.
  
 <수상한 교수> 스틸컷

<수상한 교수>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리차드(조니 뎁)는 상위 1%의 삶을 누리는 상류층 교수이다. 그에게는 정원사를 둔 커다란 집이 있고 자신이 지닌 부와 명예가 있으며 교육자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다. 완벽한 인생을 설계하고 그려나가고 있던 리차드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쳐버린 것이다. 딸 올리비아(오데사 영)는 커밍아웃을 하고 아내 베로니카(로즈마리 드윗)는 그가 다니는 대학 총장과 불륜 관계임을 고백한다.
 
내면의 화와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 연못에 뛰어든 리차드는 그 안에서 흠뻑 젖은 뒤 마치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교실에서 학생들을 쫓아낸다. 그는 소수의 학생들만을 남긴 채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중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야외수업 중 바닥에 누워 마리화나를 피우는 리차드. 그의 자유분방한 면모는 집 안에서도 이뤄진다. 딸의 커밍아웃도, 아내의 불륜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그는 대신 자신도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수상한 교수>는 교육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영화 <디태치먼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디태치먼트>는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학생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살아가던 교사 헨리가 왕따 메레데스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를 통해 마음을 열어가며 학생처럼 교사도 아픔과 성장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수상한 교수> 역시 리차드의 아픔과 내면적인 성장을 담아낸다.
  
 <수상한 교수> 스틸컷

<수상한 교수>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하지만 <수상한 교수>는 '교육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관점을 통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 이 무기의 원동력은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보여주는 세련되고 시니컬한 유머감각이다. 리차드는 마치 제3자가 된 것처럼 자신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모든 문제에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대학교수로 성실하고 모범된 삶을 살아오던 그는 교실에서 처음 담배를 피워보고 술집에서 종업원과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여기에 아내의 불륜 상대이자 자신의 대학 총장인 헨리를 향해 신랄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자세는 죽음을 앞둔 순간 삶을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경험하기 위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리차드는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하게 하고 작품을 하나씩 선정, 이를 읽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 오라고 말한다. 그는 점수는 마음대로 주지만 자신의 생각을 전함에 있어서는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그의 마지막 말에는 지식이 아닌 학생들을 더 많이 알고 싶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한 줌 밖에 안 되는 지식보다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더 깊은 공간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을 보여준다.
 
이는 가족과 친구 피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리차드는 과거의 아쉬움이나 갈등 대신 그들을 향한 이해와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한 명의 교육자 혹은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 나갈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리차드라는 한 명의 인간이 되어 개인적인 삶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는 후회와 반성 대신 더욱 치열하고 재미있게, 다양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라는 말을 통해 각자가 지닌 인생이라는 책을 다채롭고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을 촉구한다.
  
 <수상한 교수> 스틸컷

<수상한 교수>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작품 속 리차드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조니 뎁이라는 배우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악동 스타일의 코믹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리차드가 선보이는 시니컬한 유머는 조니 뎁이 지닌 캐릭터성에 맞춰 신선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에 갱년기로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친구 피터와 불륜에도 당당하고 강한 모습을 선보이는 아내 베로니카와의 케미는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담은 재미를 선사한다.
 
<수상한 교수>는 한 명의 교수의 깨달음과 진리를 위한 수업이 아닌 죽음을 앞둔 남자의 마지막 인생 강의를 코믹하게 그려내며 신선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행복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리차드의 모습은 죽음이란 끝이 아닌 삶을 배워가는 또 하나의 과정임을 알려준다. 얄궂은 현실과 시니컬한 웃음에 담긴 삶을 향한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수상한 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