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돈 다이-컬트 독립영화 감독이 만든 좀비영화 [시네프리뷰]

2019. 7. 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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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데드 돈 다이

원제 The Dead Don’t Die

감독/각본 짐 자무쉬

출연 빌 머레이, 애덤 드라이버, 틸다 스윈튼, 클로에 세비니, 스티브 부세미, 대니 글로버, 케일럽 랜드리 존스, 로지 페레즈, 이기 팝, 사라 드라이버, 르자, 캐롤 케인, 셀레나 고메즈, 톰 웨이츠

상영시간 104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7월 31일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에서 인종차별 서브플롯은 농장주 스티브 부세미가 ‘백인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모자를 쓰는 형식으로 희극적으로 재현된다. 누가 보더라도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캠페인’에 대한 노골적 희화화이다.

상상도 못했다. 짐 자무쉬 감독이 좀비영화를 찍으리라곤. 짐 자무쉬 하면 떠오르는 〈천국보다 낯선〉(1983) 같은 수많은 비평상을 거머쥔 영화들, 이른바 컬트-예술영화와 B급 장르의 대표격인 좀비영화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지 않는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스타일리시한 그의 작품 상당수가 여러 장르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포레스트 휘태커가 암살자로 주연한 영화 〈고스트독〉(1999)은 누가 봐도 스즈키 세이준의 괴작 흑백영화 〈살인의 낙인〉(1967)에 대한 오마주다. 어쩌다보니 아직 못봤는데, 그의 2013년 작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뱀파이어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의 언론 시사는 없었다. 홍보사에 문의해보니 관계자들만을 대상으로 영화사의 미니영사실에서 시사를 한다길래 요청해 참석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모 영화매체 관계자, 그리고 필자까지 3명만 참석한 시사였다. 정성일씨는 과거 〈로드쇼〉나 〈키노〉를 통해 감독에 대한 컬트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 책임감으로 참석한 듯했다.

‘짐 자무쉬 사단’ 총출동 좀비영화

흥미롭긴 했다.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었을까. 틸다 스윈튼이나 애덤 드라이버, 대니 글로버 등 이른바 ‘짐 자무쉬 사단’ 배우들과 함께 즐기며 만든 영화로 보인다. 장의사이자 홀로 일본 검술을 수행 중인 틸다 스윈튼은 영화의 절정부에서 마을 중앙의 묘지 위에 홀연히 나타난 UFO(미확인비행물체)를 타고 떠나버린다. 그러니까 그녀는 지구에 잠시 방문한,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암약했던 외계인이었다. 전형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21세기 버전이다.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농담도 실없다. 경찰 2인조로 나오는 애덤 드라이버와 빌 머레이는 경찰차에 앉아 문득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 영화 결말이 어떻게 나는 줄 알아?”, “당연히 알지. 짐(짐 자무쉬 감독)이 내게 통대본을 보여줬거든.” “뭐? 나는 쪽대본밖에 못받았는데.”(빌 머레이가 쪽대본을 받았다.)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장르의 기원쯤이 되는 조지 로메로의 좀비영화들을 원용한다. 시작 장면의 묘지 신은 분명 조지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의 인트로에 대한 오마주다. 조지 로메로의 이 기념비적 영화에서 설정은 “금성 방사능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짐 자무쉬 영화에서 발단은 ‘프래킹(fracking)’, 그러니까 고압의 물 분사로 돌을 깨 셰일가스를 얻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다. 즉, 극지방의 빙하 밑에서 프래킹을 하다 지구의 자전궤도가 뒤틀려버린 것이 좀비 발생의 원인이다(라디오 뉴스 대신 TV 앵커가 “프래킹이 문제될 것 없다”는 석유회사 논리를 전한다).

조지 로메로 영화에서 영화의 서브플롯은 유색인종, 여성, 어린이에 대한 약자 차별이다. 이 서브플롯은 그저 시간 때우기 동시상영용 B급 영화가 사회비판 메타포와 연결되는 기폭제였다. 조지 로메로의 두 번째 좀비영화 〈시체들의 새벽〉(1978)은 좀비를 ‘현대 도시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은유적 존재로 확장시켰다. 이 ‘살아난 시체’들이 도시의 쇼핑몰 주변으로 몰려드는 것은 거기에 그들의 먹이가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한때 인간이었을 때의 소비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장르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

짐 자무쉬 영화에서 인종차별 서브플롯은 농장주 스티브 부세미가 ‘백인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모자를 쓰는 형식으로 희극적으로 재현된다. 누가 보더라도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캠페인’에 대한 노골적 희화화이지만 짐짓 감독은 “트럼프와는 관련 없다”고 딴청을 부린다. 둘째로 소비습관을 잊지 못하는 좀비들. 처음 이 센터빌(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중앙동 내지는 중앙마을)에 출현한 좀비들은 영업이 끝난 식당에 난입해 주인과 종업원을 뜯어먹은 뒤 드립커피머신을 발견하고 커피에 집착한다. 패션모델 좀비는 ‘패션’이라고 말하고, 연주자 좀비는 ‘기타’라는 말을 반복하며 돌아다닌다. 결국 마을 사람들 모두는 좀비들에게 당하고 마는데, 가수 톰 웨이츠가 연기한 은둔자 밥이 쌍안경으로 그 과정을 관찰하며 시적 단어들로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읊조린다.

확실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패션, 기타, 커피를 좀비들이 말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나, 이 중앙마을의 몰락을 밥의 내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은 마치 게으른 사진작가가 자신이 담으려는 잔혹한 사건을 시위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 문구를 찍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짐 자무쉬 스타일로 좀비 장르를 재해석했다든가 오마주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신의 사단 배우들과 함께 킬킬거리며 장난삼아 핼러윈 파티 상영용 비디오 영화를 찍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건 너무 혹평한 걸까.

21세기 들어 주류 장르가 된 좀비물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 포스터 / 경향자료

프랑스의 평론가 필립 루이에는 그의 책 〈고어영화〉에서 조지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을 무시무시한 고어 신으로 점철된 영화처럼 묘사해놨지만, 이 영화에서 두세 컷에 불과한 고어 신은 그리 끔찍한 장면은 아니다. 느릿느릿 걷는 좀비들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달라붙어 살을 뜯어먹거나 골을 파먹는 그런 장면이 본격화된 것은 앞서 언급한 〈시체들의 새벽〉부터다. 조지 로메로 이후 그런 고어 신에 대한 집착이 본격화된 것은 루치오 풀치를 비롯한 이탈리아 호러영화 감독들의 아류 좀비영화들부터다. 유럽에서 조지 로메로 영화의 속편인 것처럼 개봉한 〈쟘비2〉(‘쟘비’는 이 영화의 국내 비디오 출시명) 속 좀비들은 바닷속에 들어가도 죽지 않고 계속 전진하다 식인상어와 맞서 격투를 벌인다.

구더기가 들끓는 얼굴에 대한 클로즈업, 신체 상해 장면에 대한 포르노적 집착이 이탈리아 호러 감독 루치오 풀치에게 ‘변태감독’쯤의 악명을 안겨줬다. 사실 이후 뛰어다니는 좀비라든지, 기관총을 난사하는 좀비 같은 창의적 설정은 다 이 이탈리아에서 찍었으면서도 미국 뉴욕이 영화 배경이라고 강변하는 이탈리아 B급 호러들로부터 나왔다.

돌이켜보면 리처드 매더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를 부두교 좀비와 구분되는 현대 좀비물의 기원으로 친다면 좀비 장르의 본격적인 개화 시기는 반 세기 이후인 세기 말, 21세기 초다. 이제 TV드라마에서도 좀비는 주류 장르가 됐다. 다른 장르들과 이종교배는 지금도 활발하다. 국내에서 지난해 개봉한 〈창궐〉은 사극과 좀비 장르를 결합한 시도였다. 밤(1968)과 새벽(1978), 그리고 낮(1985)의 이른바 ‘살아난 시체 3부작’으로 완결된 걸로 여겨진 조지 로메로의 좀비영화 시리즈는 〈다이어리 오브 데드〉(2007), 〈서바이벌 오브 데드〉(2009)로 이어지며 ‘파운드 푸티지+좀비물’로 변주됐다. 조지 로메로는 2017년 세상을 떠났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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