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메디컬드라마, 한국 사회의 통증을 진단하다

김선영 | TV평론가 입력 2019. 7. 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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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드라마 <닥터탐정>의 19살 정하랑(곽동연)은 하청업체에서 승강장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계약직 노동자이다.

지난주 SBS에서 두 편의 메디컬드라마가 나란히 방영을 시작했다. 편성도 이례적인데 드라마 자체도 꽤 눈길을 끄는 구석이 많다. 수목극 <닥터탐정>은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박준우 PD가 연출을, 산업의학 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극본을 맡은 사회고발 메디컬수사극이다. 뒤이어 금토극으로 방영된 <의사요한>은 국내 최초로 통증의학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데다 존엄사라는 논쟁적 화두를 담아 화제를 모았다. 두 작품에는 기존의 메디컬드라마가 가장 중요한 관전포인트로 내세웠던 수술신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환자들의 증상을 즉각적으로 치료하기 이전에 그 질환의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고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메디컬드라마가 환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의사들의 노고에 집중했다면, 두 작품은 인간의 고통을 더 오래, 더 깊게 들여다본다는 데 진정한 차별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고통에 관한 더 다양한 시각이 제시된다.

먼저 <닥터탐정>이 주목하는 것은 사회가 유발하는 질병이다. 이를 탐구하기 위해 드라마는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를 첫 회에 가져온다. 19살 정하랑(곽동연)은 대기업 TL메트로의 하청업체에서 승강장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회사가 약속한 정규직의 꿈을 품은 채, 쉬지 않고 일만 하던 그는 몸에 이상이 생긴 그날에도 스크린도어를 청소하다가 변을 당한다. 사측은 ‘매뉴얼’대로 즉각 정보를 장악해서 언론을 통제하고 유가족, 노조, 시민단체의 접근을 막은 뒤 사고 원인을 개인 과실로 몰아간다. 하지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도중은(박진희)과 산업재해 수사기관 미확진질환센터(UDC) 의료진은 정하랑에게 청소액 유독물질과의 지속적 접촉으로 이상증세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직업병에 의한 사고임을 밝혀낸다. 드라마는 더 나가 정하랑 사고 이전에 같은 노선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노동자 사망 사건을 언급하면서 한층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이윤과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하청 시스템,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사고 날 때만 반짝하는 여론과 정치계 등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를 자리 잡게 한 모든 사회적 책임이 그 안에 있다.

<닥터탐정>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질병이 점점 사회적 재난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요즘 의학계에서도 질병과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의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된다면>에서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차별과 같은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정하랑과 같은 하청업체 계약직 노동자, 기업 식당의 조리 담당 여성 노동자들, 제과업계에서 ‘오너 갑질’에 시달리는 직원들 등 <닥터탐정>은 하나같이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의 질환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이 역학 관계를 증명한다.

이러한 질병과 사회적 관계 탐구에서 더 중요한 목적은 사회적 제도의 개선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닥터탐정> 첫 번째 에피소드의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누려온 안전이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음을.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군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하는 대목이 이를 말해준다.

드라마 <의사요한>에서 박정보가 아프다는 말을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차요한(지성).

<의사요한> 역시 고통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통증의학과 환자들은 대개 통증의 원인을 알기 위해 다른 과들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이곳을 찾아오게 된 이들이다. 드라마는 이들의 오랜 통증에 단지 희귀병처럼 진단 내리기 어려운 상황만이 아니라 이들의 고통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의 책임도 작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환자로 등장한 재소자 박정보(김도훈)가 그의 병을 꾀병 취급하는 이들로 인해 병세가 점점 악화된 사례다. 그는 끝내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거기서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의료진 때문에 필요한 처치를 받지 못한다. 그를 살려낸 의사는 박정보가 아프다는 말을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차요한(지성)이다. 박정보는 그가 유전성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차요한에 의해 치료를 받게 되지만, 드라마는 그 이전에 그와 같은 병을 가지고도 아무도 아프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사망한 엄마의 비극을 언급한다.

통증의학이라는 소재를 내세운 <의사요한>이 지향하는 메시지 역시 결국은 고통에 대한 공감에 있다. 의사가 예진을 오래 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환자에게 감정이입한다며 ‘1분 이상 환자와 말 섞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 현실 속에서, 회생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안락사를 조치한 차요한은 살인죄로 낙인찍히고 감옥에 간다. 그를 살인자라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의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환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으니까”라고 답하는 차요한을 통해, 드라마는 논쟁을 불사하고서라도 인간의 고통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길 촉구한다.

<아픔이 길이 된다면>의 말미에서 김승섭 교수는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을 증명한 역사적 사례들을 들면서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통증은 그러한 공감의 힘을 잃어버린 결과에도 있지 않을까. 두 편의 메디컬드라마는 바로 그 공감력 상실의 증상을 진단한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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