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중·러 공군기도 죽창으로 물리치자?

김광일 논설위원 2019. 7. 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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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무리, 철저한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 이것이 글자 그대로 통용되는 곳이 바로 국제 사회다. 국가 간 경쟁과 다툼은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원칙은 하나뿐이다. 바로 ‘국가 이기주의’다. 그 어떤 선의도, 그 어떤 의리도, 그 어떤 과거도 필요 없는 오로지 ‘이빨과 발톱’, 그 힘의 논리에 충실한 ‘배타적·합법적 폭력 집단’, 그게 바로 국가의 본질이고, 그러한 국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국제 사회인 것이다.

어제 러시아 군용기와 중국 폭격기가 나란히 합동 작전을 펼치면서 대한민국 영공과 방공식별구역을 무려 3시간 동안 유린했다. 우리 공군기가 경고 사격 360발을 쐈다고는 하나 거의 눈 뜨고 당한 꼴이다. 아프리카 사자들이 물소 떼를 뒤쫓을 때 강한 물소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뒤쳐져 있는 어린 물소를 겨냥한다. 골목길 깡패도 늦은 밤에 혼자 귀가하는 만만한 여성을 노린다. 동물들도, 운동경기도, 약육강식 사회도 상대의 약한 부분, 상대의 허점, 상대의 구멍, 상대의 틈새를 노린다. ‘틈새’, 이걸 노린다. 지금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커다란 틈새가 벌어져 있고, 러시아와 중국 공군기가 그 틈새를 3시간 동안 유린하고 돌아간 것이다.

몇몇 신문들은 우리 정부에게 "단호히 대응하라", 중국·러시아에게 "즉각 중단하라", 이렇게 외치고 있지만, 너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우리의 영공을 잠재적 적국의 공군기가 유린했는데도, 청와대는 지하벙커의 국가안보회의, 안보장관회의, 그 어떤 것도 소집하지 않았다.

잠재적 적국의 공군기가 우리 영공을 유린한 것은 어제 오전 6시44분에 시작돼 3시간12분 뒤인 오전 9시56분까지 진행됐다. 오전 6시44분에 발생한 영공 침범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점심 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추경 처리 얘기만 했을 뿐, 영공 침범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낚싯배가 빠졌을 때는 묵념까지 올렸던 대통령이 영공이 유린당했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러시아에 항의하고, 우리 외교부가 러시아·중국 대사관에 있는 대사와 무관들, 그 사람들을 불러 항의했다고는 하는데, 저쪽은 아무런 반응도 없고, 별로 심각하게 들은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독자들의 댓글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다음에는 강제 착륙시켜라." 이렇게 말했다. 머리에 정을 맞는 것 같았다. 맞다, ‘강제 착륙’이라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3시간12분 동안 유린했다면, 우리 공군의 경고 사격이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강제 착륙을 시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른 독자는 말했다. "대통령이 한미일 동맹을 깨버리니 동네북이 되어 버렸다." 동네북이 되면 힘자랑하고 싶은 건달들이 반드시 건드려 본다. 그게 지난 수백 년 동북아 현실이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북한 목선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나라인데 러시아, 중국 같은 강대국은 당연한 거 아니냐?"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현실을 보게 한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죽창으로 물리치자." 최근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발언을 패러디하면서 무력한 현실을 비꼬는 말이었다. 씁쓸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한미일 동맹이 깨지면 생기는 일, 그것은 바로 맛보기." 한·미, 한·일, 그 틈새가 보이자 잠재적 적국이 맛보기, 간보기를 했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우리 개돼지들은 문순신 장군만 밉사옵니다." 문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를 언급한 것을 패러디 했는데, 이 역시 촌철살인이다.

또 다른 독자는 이런 말을 했다. "근데…군하고 청와대가…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나…국토방위와 관련된 것 중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지금 우리 군이 사격까지 할 정도이니…믿어달라는 건가?" 많은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글이라고 생각됐다. 청와대 설명보다는 오히려 이런 댓글들이 우리나라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한 날이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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