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등포구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

정재민 입력 2019. 7. 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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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영등포구의회 개원 1년.. 이제 구태와 결별해야 할 때

[오마이뉴스 정재민 기자]

지방선거 민심에 찬물 끼얹은 영등포구의 현실

촛불항쟁 이후 진행된 2018년 지방선거의 민심은 단연코 '적폐청산'과 '새로운 지방정치'에 대한 염원이었다. 촛불민심은 지방선거에서 적폐세력을 단호히 심판했으며 이는 기존의 지자체와 지방의회 권력을 대부분 교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영등포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구의회가 개원하자마자 허홍석 구의원 공천헌금비리의혹 혐의가 불거졌고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퇴운동이 벌어졌다. 현재 허 의원은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단순 채무관계에 불과하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즉시 항소해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시작부터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찬물을 끼얹은 영등포구의회는 올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지난 3월 윤준용 현 영등포구의회 의장과 조길형 전 영등포구청장, 김재진 현 영등포구의원의 '눈 먼 돈 잇속 챙긴 공직자' 삼각 커넥션 비리 의혹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 CBS 노컷뉴스가 보도한 영등포구 비위 의혹 기사.
ⓒ 노컷뉴스 갈무리
 
CBS <노컷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윤 의장은 구의회 부의장이던 2014년 7월부터 2년간 국민 혈세로 지급된 업무추진비를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집중 사용했다. 30차례에 걸쳐 쓴 돈만 1011만1000원이다. 해당 식당은 당시 윤 의장의 업무추진비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이기도 하다.
 
조 전 구청장은 자신이 만든 사모임의 운영진에게 구청 사업을 몰아준 의혹을 받는다. 사모임 회장 A씨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업체는 2011년 말부터 2017년 중순까지 구청에서 발주한 사업 94건을 수주했다. 계약금은 8억7000만 원이 넘는다.
 
사모임 부회장 B씨가 운영하는 광고물 제조업체는 2012년 말부터 구청 사업을 받기 시작해 2019년 2월까지 총 75건을 계약했다. 계약금은 7억5000만 원에 육박한다. 두 업체에 배당된 사업은 대부분 경쟁 입찰이 필요 없는 2000만 원 이하 수의계약이었다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회사를 처남집에 물려준 이후 구청 사업을 무더기로 따낸 정황이 확인됐다. 처남댁 회사와 김 의원의 사무실은 같은 건물, 같은 주소를 써왔다. 2016년부터 구청 사업 43건을 수의계약으로 수주했고 계약금이 3억5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이 영등포구를 이렇게 만들었나 
 
▲ 윤리위 제소된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진 의원 신상발언 지난 6월 12일 영등포구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윤리위에 제소된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진 의원이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 영등포구의회
 
첫째, 자정기능을 상실한 영등포구의회 그 자체다.
 
본래 구의회의 기능은 구청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되레 의회구성원들이 수 년간 영등포구청과 호흡을 맞춰오거나 비위 사실을 눈감아온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니 감시와 견제는커녕 외부 감사와 수사기관의 조사가 필요한 지경이다.
 
또한 구의회 스스로 윤리특별위원회조차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비리혐의 기사가 보도된 이후 영등포구의회에서는 윤리특위를 구성하고 해당 의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해당 안건을 다루는 도중 일부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아 산회시켜 무산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약 2개월 후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윤리특위가 구성됐으나 일부 위원들이 사퇴하여 이 마저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했으면 '국회 뺨치는 영등포구의회 윤리특위 논란'이라는 기사가 보도됐겠는가.
 
둘째, 보수양당 수십 년 기득권 정치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다.
 
영등포를 불명예로 만드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친인척 비리의혹에 휩싸인 자유한국당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해야 한다는 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 다름 아닌 민주당 의원이었다. 지금 영등포구의회에는 '민주당이 아니라 민갑당, 민을당이다'는 신조어가 돌아다니고 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영등포구의원 17명 중 정의당 구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한 것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 되고 지역에서 수십 년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오던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보수양당 기득권 정치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상식적인 의회운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영등포구청의 응당한 후속 조치의 부재다.
 
전임 구청장과 관련된 의혹이지만 명백히 영등포구청이 발주한 계약에서 특정 인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비리의혹이 제기된 만큼 응당 현 구청장은 지난 과거의 모습과는 단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관련 내용을 철저히 감사하고 문제가 확인됐을 경우 응당한 책임조치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사안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지금까지 영등포구가 조사를 하고 있거나 감사를 했다는 소식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비리 의혹 당사자가 구의회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현 구청장의 면전에서 자신을 감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자의 요구도 있는 만큼 채현일 구청장은 청렴한 영등포구를 만들기 위해 지금이라도 관련 사건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고 해당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넷째, 수사기관의 응당한 인지수사의 부재다.
 
구체적 사안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수사기관의 인지수사가 시작돼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소식도 없다. 비리의혹이 세상에 드러나도 결국 정식으로 다루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이와 같은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리혐의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위법한 사실이 있다면 법적책임을 묻는 과정이 있어야만 비리사건은 결코 쉽게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너무나 아쉬운 시민들의 관심과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영등포구민들 중에 이번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지방의회나 지자체는 정부중앙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어서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비해 언론의 관심을 좀처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리정치는 시민들의 무관심이라는 토양에서 자란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언론은 중앙언론이 다루지 않는 지역의 사안을 심도 있게 취재하고 사안과 내용을 지역주민들에게 전달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지역언론의 감시기능이 강화될수록 지역의 비리정치는 점차 설 곳을 잃게 될 것이다.
 
▲ 제8대 영등포구의회 개원 1주년 기념식 제8대 영등포구의회 개원 1주년 기념식
ⓒ 영등포구
  
영등포구의회가 구태와 결별하고 진정한 구민들의 대변자로 거듭나길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는 말이 있다. 가장 어려울 때가 다시 새롭게 시작할 때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동안 확인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등포구의회가 '업무추진비를 완전히 공개하고 엄격한 사용 규정을 마련한 조례'를 제정했다는 소식 그리고 '공직자 친인척 수의계약을 완전히 배척하는 조례'를 제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영등포구의회가 오랜 기간의 구태와 완전히 결별하고 진정한 구민들의 대변자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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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재민씨는 정의당 서울 영등포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를 지역언론 <영등포투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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