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과 김남길의 새벽.. 반주인가 해장술인가

이용재 음식 평론가 입력 2019. 7. 20. 03:02 수정 2019. 7. 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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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6) '무뢰한'과 해장의 과학
영화 '무뢰한'에서 혜경(전도연)과 재곤(김남길)이 새벽에 해장국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다. 반주일까, 해장술일까. 반주였기를 바란다. 해장술은 꺼져가는 불씨에 다시 붓는 '기름'일 뿐, 숙취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영화 캡처

"도시에 이끌려서 보았다가 음식이 남았다." 영화 '무뢰한'(2014년)의 한 줄 평이다. 도시가 나빴다는 말은 아니다. 첫 장면부터 건축 전공자인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형사 재곤(김남길 분)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의 발걸음을 따라 잠깐 펼쳐 보여주는 신축 아파트와 묵은 주택, 그리고 어두운 내리막길인 출구를 빠져나가 골목길까지. 채 1분도 안 되는 동안의 장면이나 공간 전환이 빚어내는 대조가 훌륭했다. 애초에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러 갔던지라 골목길, 언덕길, 시장 등을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거친 정서의 배경으로 마음껏 즐겼다.

도시가 그렇게 좋았음에도 그 위에 음식이 올라앉았다. 엄청나지도 않고 자주 등장하지도 않는데 강한 여운을 남겼다. 잘 만든 것 같지도 않고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음식이 아주 잠깐 등장해 영화의 거친 정서 밑으로 가늘게 흐르는 피로함을 증폭해 내보여 준다. 혜경(전도연 분)이 자기 집에서 재곤에게 만들어 주는 잡채도 그렇지만 두 사람이 새벽에 먹는 해장국이 특히 인상적이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먹는 해장국의 정서도 좋았지만 소주가 어떤 역할이었는지도 궁금했다. 습관적으로 시킨 반주였을까, 아니면 해장술이었을까?

그게 그거 같지만, 차이가 크다. 굳이 꼽자면 전자, 즉 반주가 차라리 바람직하다. 해장술은 사실 꺼져가는 불씨에 다시 붓는 기름이나 마찬가지다. 숙취는 '알코올 음료를 마시고서 육체 또는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불쾌한 경험 및 심신의 작업 능력 감퇴를 가져오는 현상'이다 두통, 메슥거림, 구토를 비롯해 근육통, 현기증, 입 마름, 피로감, 초조 및 우울함, 발한 등의 증상이 딸려 온다. 다소 놀랍게도 알코올에 의한 숙취의 기전은 완전히 규명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음주로 섭취한 알코올이 체내에서 대사될 때 형성되는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농도 증가를 가장 유력한 후보라 여긴다. 그 밖에도 사이토카인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의 영향, 혈중 당류의 부족 등도 꼽고 있다.

술을 마시면 에탄올뿐만 아니라 메탄올도 섭취하게 되는데, 후자는 몸에서 대사를 거쳐 해로운 메탄알이 된다. 체내 농도가 올라가면 실명에서 사망까지 이를 수 있으니, 응급 조치로 몸이 에탄올 분해에 집중하도록 술을 더 마시는 게 해장술 원리이다. 따라서 반짝 괜찮을 수 있지만 이후 더 괴로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권하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해장술은 세계적 음식 문화이다. '개털(hair of the dog)'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개에게 물리면 그 털을 뽑아 태워서 바르면 낫는다는 민간요법 말이다. 손상을 입힌 바로 그 대상으로 치료하라는 논리이므로 술은 술로 푼다는, 해장술을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다양한 해장 칵테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블러디 메리(Bloody Mary)'가 있다. 토마토 주스와 보드카 위주로 만드니 빨간색인 한편,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별명(블러디 메리·유혈 여왕)과도 통한다. 토마토의 신맛과 감칠맛에 건강 채소인 셀러리까지 꽂아 나오니 해장에 그만일 것 같지만 역시 술이므로 음주 뒤에는 피하는 게 좋다. 만약 술을 빼고 토마토나 오렌지 주스만 마신다면 효과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음주 후에는 위장도 예민해지니 신맛의 주스를 들이부어서 좋을 게 없다. 같은 원리로 살펴보자면 영화에 등장하는 해장국 또한 선지나 콩나물은 괜찮지만 다진 양념 등으로 더하는 매운맛, 그리고 뚝배기에서 펄펄 끓을 만큼 높은 온도는 술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진 양념은 좀 덜어내고, 몇 분 기다려 한 김 식혔다가 먹는 게 해장 및 위장에 좋다.

술도 안 되고 뜨겁거나 맵거나 신 음식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무엇으로 해장하는 게 좋을까? 언제나 기본이면 중간은 간다고, 흔하디흔한 물이 있다. 알코올의 이뇨 작용으로 손실된 수분 보충에는 확실히 제 몫을 할 뿐만 아니라 맛도 중립적이라 장을 자극하지 않는다. 음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과 다음 날 아침에 충분히 마시기를 권한다. 스포츠 음료와 코코넛워터(코코넛 열매 속의 물)도 해장에 좋다. 스포츠 음료는 당분 탓에 운동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음주처럼 인간이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상황 이후에는 전해질 보충에 제 몫을 한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코코넛워터도 같은 원리로 전해질과 당분을 보충해준다.

속을 웬만큼 진정시켰다면 아침 식사는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권한다. 한국의 국물 음식 가운데서는 명불허전이라 할 수 있는 콩나물국이나 된장국이 여느 때보다 음주 다음 날 수분 및 염분 보충으로 자기 몫을 한다. 한편 달걀은 아미노산과 시스테인이 풍부해 간을 돕는 한편 숙취를 잡아 주니 이 둘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음주 후 부족해진 칼륨을 보충해주는 바나나를 간식으로 챙겨 먹으면 몸은 곧 진정될 것이다.

바쁜 세상에 좀 더 효율적으로 해장할 방법은 없을까? 숙취 해소제를 고려해볼 수 있다. 그 자체로 엄청난 산업이라 2005년에 600억원이었던 매출 규모가 지난 10년 동안 최소 300% 성장했다. 대개 음료로 나오는 숙취 해소제는 헛개를 비롯해 오리나무, 마가목 추출물, 산사나무 열매 등의 생약 제제로 만들고, 알코올 분해를 억제하는 한편 섭취 후에는 대사를 촉진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감소시키며 간세포 보호 및 위장 점막 손상을 방지한다고 주장한다.

요즘은 스파이가 술에 취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러시아에서 개발했다는 안티포크멜린을 바탕으로 개발한 음주 전 보충제도 약국과 편의점에서 판다.

규모도 크고 제품도 다양한 세계이지만 숙취 해소제의 효능은 사실 검증된 바가 없다. 숙취의 기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듯, 숙취 해소제의 효능 및 과학적 근거도 정확하지 않다는 말이다. 부득이하게 찾을 경우 ALDH, 즉 알데하이드 분해 효소가 숙취의 열쇠이므로 해당 성분 함유 및 임상 시험 결과를 근거로 숙취 해소제를 선택한다. 참고로 소량의 음주, 즉 알코올 섭취가 건강에 좋다고 최근까지 내려온 믿음―물론 연구 결과를 바탕 삼은―도 뒤집혀, 이제는 완전한 절주만이 건강에 긍정적이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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