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트럼프 '리얼리티 쇼' 이후

원재연 2019. 7. 1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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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시계' 재가동했지만 / 미국서 북핵 동결론 줄이어 / 재선 위해 北과 타협할 수도 /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
역시 트럼프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30 판문점 회동 얘기다. 트럼프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일본에 왔다가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트윗을 날릴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다. 김정은이 응하면서 즉흥 제안은 현실이 됐다. 트위터 한 줄로 세기의 회동이 성사된 것이다. 김정은의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트럼프는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됐다. 전 세계 이목은 온통 판문점에 쏠렸고 중심엔 트럼프가 있었다. 트럼프 연출·주연의 ‘리얼리티 쇼’가 대박이 났다.
원재연 논설위원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한 트럼프가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건 TV쇼를 통해서다. 2004년부터 12년간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면서 방송감각을 익혔다.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배운 것이다. 트럼프가 정치와 외교를 리얼리트 쇼처럼 다룬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이런 기질이 지난해 6월 역사상 첫 번째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한몫한 건 사실이다. 이번 판문점 만남도 사진찍기용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없는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있다.

판문점 회동으로 비핵화 국면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멈춰섰던 ‘비핵화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건 판문점 리얼리티 쇼 이후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합의에 따라 곧 북·미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후속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길이 열려야 할 것이다. 리얼리티 쇼의 바람직한 결말이다.

판문점 회동이 끝나자마자 뉴욕타임스발 북핵 동결론이 불거졌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미국이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닌 동결로 협상전략을 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줄을 잇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론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실현하지 못할 것이란 현실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 측 비핵화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비보도를 전제로 “우리가 바라는 건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파문이 커졌다.

미국 정부는 손사래를 쳤다. 국무부는 “우리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고 했다. 그래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어제는 핵동결은 목표가 아니라 비핵화 협상의 입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새로운 셈법’을 요구해온 데다 비건이 ‘유연한 접근’을 강조한 터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 대신 미래 핵개발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로 목표를 낮출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번만이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하노이 회담을 앞둔 지난 1월 “협상 최종 목표는 미국인 안전”이라고 했다.

북·미의 비핵화 해법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앞서 핵동결을 1차 목표로 삼는 게 현실적인 협상안이 될 수는 있다. 미 국무부도 그렇게 보는 모양이다. 문제는 핵을 동결하는 선에서 협상이 멈추는 경우다. 워싱턴에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만 막으면 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어서 현실화할 경우 한국으로선 끔찍한 일이다.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CNN방송은 북한 땅에 발을 디딘 트럼프의 행보가 2020년 대선이란 렌즈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했다. 판문점 방문으로 값진 정치적 승리를 거둔 트럼프가 내년 11월 대선 이전에 협상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재선이 지상과제인 트럼프가 북·미 협상을 적당히 포장해 외교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핵은 트럼프가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 좋은 이슈이기도 하다. 트럼프 리얼리티 쇼의 결말이 걱정되는 이유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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