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고기'에 더 호의적인 밀레니얼 세대.. 입맛 때문이 아니다

조유진 기자 2019.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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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빠와 딸이 함께 먹어보니
①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비욘드미트, 콩고기로 만든 너비아니, 롯데푸드 ‘엔네이처 제로미트 까스’, ‘엔네이처 제로미트 너겟’. ② 그릴에 굽고 있는 비욘드미트. ③ 거의 패티로 사용된 비욘드미트. / 비욘드미트

비트로 만든 핏빛 육즙, 콩 뿌리에서 찾아낸 고기 풍미, 고기의 근 섬유와 비슷한 식물성 섬유질로 만든 쫄깃한 고기 질감…. 고기인 듯 고기 아닌 고기랄까. 분명히 고기 맛이 나는데 고기가 아니란다. 그런데 고기만큼 주목받는다.

최근 미국에서 인기 끄는 '대체 육류(meat substitute)' 얘기다. 대표적인 회사가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미국의 푸드테크(food-tech) 기업 '비욘드미트(Beyond Meat)'. 지난달 2일 업계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한 첫날 주가가 163% 상승했을 정도로 인기다. 지난 3월 한국에도 상륙했다. 판매처가 많지 않지만 채식주의자들 사이엔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비욘드미트 공식 수입 판매사인 동원F&B에 따르면 3월부터 지난 21일까지 1만2000팩이 팔렸다.

대체 육류의 인기는 밀레니얼 세대가 이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밀레니얼 세대가 비욘드미트처럼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에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는 장수와 건강이 관심사"라고 했다.

실제 맛은 어떻고, 세대별로 지갑을 열 용의는 달라질까. 1993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기자(26)와 1962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아버지(57)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몇몇 대체 육류 제품을 직접 먹어봤다. 둘 다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비트와 코코넛오일로 만들어낸 육즙

비욘드미트에서 나온 ‘비욘드버거’ / 비욘드미트

시식한 메뉴는 비욘드미트 제품 중 버거 패티와 스테이크에 쓰이는 '비욘드버거(패티 2개짜리 227g 팩 1만2900원)', 롯데푸드에서 밀단백질로 만든 '엔네이처 제로미트(500g 7980원)', 기존에 고기 대체재로 주로 활용됐던 콩고기(540g 1만3500원) 등이었다. 고기를 찍어 먹는 마요네즈 소스도 콩과 식초로 만든 제품으로 준비했다. 식료품 전자상거래업체 '마켓 컬리'와 동원F&B 공식 몰인 '동원몰'을 이용했다.

튀김이나 너비아니 같은 모양의 다른 대체 육류 제품과 달리 비욘드미트는 진짜 생고기를 갈아 빚은 것처럼 보였다. '빨간 무'라고 불리는 비트의 과즙을 넣어 붉은빛이 돌았다.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패티보다 두꺼웠다. 고기를 갈아 만든 햄버그스테이크와 비슷했다. 포장된 팩 뒷면을 봤다. 원산지는 미국. 적혀 있는 재료를 확인하니 완두콩 단백질, 감자 전분, 코코넛오일, 카놀라유 등 식물성 재료만 있었다.

비욘드미트는 3분이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다. 뒷면에 적혀 있는 조리방법대로 냉동된 패티를 해동해 달궈진 프라이팬에 3분간 양쪽 면을 구웠다. 구운 패티의 겉은 노릇해졌지만 속은 여전히 붉었다. 실제 핏물이 아님에도 더 구워야 할 것 같다고 느낄 때, 안내 사항이 보였다. "과하게 조리하지 마십시오. 조리 후 패티의 중심부는 적색 또는 분홍색입니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프라이팬에 올렸는데도 고기에서 기름이 나왔다. 기름의 정체는 육즙 효과를 내기 위해 쓴 코코넛 오일이었다.

고기 완자 vs 스펀지 씹는 느낌

기자(왼쪽)와 아버지가 대체 육류를 맛보고 있다. /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진짜 고기 맛이 난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비욘드미트를 조금 잘라 맛본 아버지가 말했다. 고기 완자 같다고도 했다. "보드라워서 어르신들도 먹기 좋겠다. 영양가도 높을 거고, 씹고 소화하기에 부담이 없네." 아버지는 20대까지 '네발 달린 짐승 고기'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났을 정도로 적색육(赤色肉)을 즐기지 않는 편. 대체 육류에 후한 점수를 줬다.

기자의 코엔 굽기 전부터 고기에서 나는 가공육 특유의 향이 역하게 느껴졌다. 맛은 고기를 갈아 만든 패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고기만큼 조직이 치밀하지 못해 건두부나 스펀지를 씹는 질감이 느껴졌다.

롯데푸드의 '엔네이처 제로미트'에 대해 아버지는 "닭 가슴살로 만든 동그랑땡이랑 똑같다"고 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만든 너깃과 식감은 차이가 없었다. 진짜 고기의 맛에 비해 얕은맛이 났지만 머스타드나 케첩을 찍어 먹으니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콩 고기도 불고기 양념 덕에 입맛에 맞았다.

"우리가 먹은 이 한 덩어리(113.5g)가 6450원이에요." "뭐?" 가격을 말하니 아버지 눈이 커졌다. "비싸다. 삼겹살이 100g 2500원 정도인데…." 100g 기준으로 대체 육류가 삼겹살보다 2.27배 비쌌다.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1만2900원인 비욘드미트 한 팩이 7.99달러(약 9200원)에 팔리고 있다.

맛에는 합격점을 줬다가 가격 앞에 주춤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비싸도 의미가 있잖아요. 요새 공장식 도축이랑 동물 복지 때문에 말 많으니까." 기자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채식주의자는 몰라도 난 그 돈 주고는 안 사먹을 것 같다. 이거 먹느니 햄버거 세트 하나 먹는 게 낫지 않으냐?" 패스트푸드를 즐기지 않는 아버지가 말했다.

반면 기자는 '진짜 고기'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대체 육류를 사 먹을 의향이 생겼다. 지난가을 식용 동물 농장을 취재해 쓴 르포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나서 한 달 가까이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 뒤로도 고기로 배를 채울 때면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에 식물성 고기에 관심이 갔다. 맛까지 그 정도면 먹을 만했다.

채식 이유? 2030 '윤리', 5060 '건강'

국내에도 채식주의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아무튼, 주말'이 18~19일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20~60대 5040명을 대상으로 대체 육류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완전 채식주의자'(1.9%)와 '완전 채식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다'(9.3%)를 합쳐 응답자의 11.2%가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답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샐러드나 야채를 자주 먹는다'는 응답도 40.6%였다. 채식주의자에는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뿐 아니라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pesco), 달걀까지 먹는 오보(ovo), 유제품은 먹는 락토(lacto) 등이 있다. 과일 열매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도 있다.

대체 육류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대체 육류가 맛이 없어도 환경친화적이고 윤리적이면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57.6%)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높았다. '채식 음식이 고기와 같은 맛을 낸다면 비싸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9%만이 '비싸도 먹는다'고 답했다. '가격이 같으면 먹는다'는 응답이 42.0%, '싸면 먹는다'는 응답이 45.3%였다. 맛에는 관대했지만 가격에는 예민했다.

기자와 아버지의 견해차는 설문에도 드러났다. 채식하는 이유에서 '동물권 등 윤리적 이유'라는 응답은 20대 13.5%, 30대 11.8%, 50대 5.4%, 60대 5.3%로 2030이 5060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환경 보호'를 채식의 이유로 택한 비율도 세대별 차이가 있었다. 20대(9.3%)와 30대(9.7%)가 50대(5.6%)와 60대(7.2%)에 비해 많았다. 세대가 높아질수록 건강상 채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20대는 응답자의 37.7%가, 50대는 61.8%가 '건강 증진'을 채식의 이유로 골랐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풍요 속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먹고사는 게 급급했던 5060세대는 환경이나 동물 권익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착한'이란 말이 들어간 소비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본인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이준영 교수는 "사회적 정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에겐 윤리적 소비가 '쿨' 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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