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인터뷰] "하면 된다" 곱씹은 한선태, 역사적 1이닝 뒷이야기

배영은 입력 2019. 6. 26. 06:00 수정 2019. 6. 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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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배영은]
‘비선출’ 투수 한선태(LG)의 모자 챙 안에 적힌 일본어 글귀. ‘하면 된다’ 라는 뜻이다. 한선태는 일본 독립리그 시절부터 긴장하거나 위기에 몰릴 때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잠실=배영은 기자
초구 폭투에 이은 선두 타자 안타. 그 뒤로 연이어 손을 떠난 볼 세 개. 꿈만 같던 기회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위기.

LG 한선태(25)는 그 순간 모자를 벗어 챙 안쪽을 들여다 봤다. 일본어로 직접 적어 넣은 '하면 된다(やればできる)'라는 글귀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독립리그에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워가던 시절, 긴장할 때마다 수십 번은 더 봐왔던 문장이다.

한선태는 "당시 코치님께서 나처럼 제구가 잘 안 되는 선수들에게 '모자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문구, 가장 좋아하는 문구를 써놓아라'는 조언을 해주셨다"며 "일본에 있을 때라 일본어로 그 문장을 써놓았는데, 한국에 온 지금도 그때 잘 된 기억을 이어가고 싶어서 그대로 적었다"고 귀띔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다. 한선태는 고교 시절까지 야구부 소속 선수로 뛴 적이 없다. 야구 선수가 아닌, 그냥 야구를 좋아하는 고교생이었다. 성인이 된 뒤에야 사회인 리그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현역으로 군 복무도 했다. 하지만 한 번 야구를 알고 나니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열정을 버리기 어려웠다. 모두가 허황된 일이라 믿고 꿈조차 꾸지 않을 때, 그는 무모하고 기약 없는 도전을 택했다. 전역 후 2017년 독립야구단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다.

쉽지 않았다. 그는 "독립야구단은 한 달에 90만원씩 회비를 내야 운영이 된다. 다들 KBO 리그에선 뛸 수 없을 거라고 하니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무작정 돈을 펑펑 쓰기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고 했다. 미래를 알 수 없었기에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이때 함께 야구하던 동료들이 그를 붙잡았다. "지금 이렇게 포기했다가 나중에 후회가 돼 다시 도전한다면, 그땐 지금보다 더 큰 돈이 들 것"이라며 "지금 후회 없이 해봐라. 나중에 프로에서 벌 돈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포기하지 않은 건 옳은 선택이었다. 파주 챌린저스에서 기본을 다진 한선태는 지난해 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뛰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처음으로 많은 팬의 박수도 받아봤다. 그는 "일본에서 내 등장곡으로 '핸드 클랩(Hand Clap)'을 썼다. 팬들이 '한선태'라는 이름도 외쳐줬다"고 떠올렸다. 물론 그땐 그 장면이 1년 뒤 잠실구장에서 재연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LG는 그런 그를 올 시즌 신인 2차드래프트 10라운드(전체 95순위)에 지명하는 파격적 선택을 했다. 비 선수 출신(비선출) 최초로 프로 지명을 받은 인물이 탄생했다. 그 순간부터 한선태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새로운 길이 생겼다. 올 시즌 2군 19경기에 출전해 평균자책점 0.36으로 승승장구했다. 호투가 계속되자 류중일 LG 감독도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선출'이라는 꼬리표에 따라 붙은 편견만 지운다면, 충분히 기회를 줄 만한 선수라고 여겼다.

그렇게 마침내 '그 날'이 왔다. 한선태는 지난 25일 잠실 SK전에 앞서 정식 선수로 계약서를 썼다. 곧바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더 빨리 잠실구장 마운드에 오르는 꿈을 이뤘다. 바로 이날 팀이 3-7로 뒤진 8회초 LG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KBO 리그 38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 선수 출신이 프로야구 경기에 출전하는 순간이었다.

한선태는 "경기 중반부터 형들이 '만약 점수 차가 더 벌어지면 나갈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그러다 정말로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풀어야 하지?'였다. 얼마나 빨리 풀어야 하는지 몰라 2군에서의 루틴대로 했다"고 고백했다.

마침내 LG의 7회말 공격이 끝났다. 1루 쪽 불펜 문이 열렸고, 유니폼 뒤에 40번을 새긴 한선태가 빠르게 마운드로 달려갔다. 동시에 LG 관중석에서 응원과 호기심을 함께 담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한선태는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내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며 "일본에서 경기에 나올 때의 기억이 나서 '잘 던져보자' 했는데,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딱 끝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야심 차게 던진 초구는 포수 뒤로 빠지는 폭투가 됐다. 프로 첫 상대 타자 이재원은 한선태의 3구째 직구를 받아 쳐 우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무사 1루서 SK 안상현과 맞섰지만, 볼 3개를 연거푸 던져 스리볼에 몰렸다. 야구장을 달아 오르게 했던 기대감은 서서히 실망감으로 식어 내리는 듯했다.

바로 그때 한선태는 모자를 벗었다.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는 "밸런스가 진짜 안 맞는 걸 느꼈다. 포수 (유)강남이 형이 계속 파이팅을 외쳐줘서 '일단 한가운데만 보고 던지자'고 생각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볼카운트 3-1. 한선태는 다시 '스트라이크를 던진 바로 이 밸런스로 또 던져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번엔 파울. 풀카운트가 됐다. 바로 이때 흐름을 뒤바꾸는 반전이 일어났다. 안상현이 때린 6구째 직구는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이어졌다.

한선태는 다음 타자 김성현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다시 출루를 허용했다. 하지만 SK 리드오프 고종욱을 5구 만에 1루수 땅볼로 유도하면서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1이닝 1피안타 1사구 무실점. KBO 리그에 그렇게 새롭고 의미 있는 발자취 하나가 새겨졌다. LG 외국인 타자 토미 조셉은 직접 잡아낸 그 공을 고이 챙겨 한선태에게 건넸다.

데뷔전 기념구를 손에 꼭 쥔 그는 감격의 눈물 대신 환한 미소로 꿈을 이룬 자의 환희를 표현했다. "마운드를 내려오니 최일언 투수코치님이 '잘 이겨냈다'고 말해 주셨다. 변화구를 던질 때 확실히 티가 나는 부분을 수정해 보자는 조언도 하셨다"며 "1이닝만 던져서 아쉬웠지만, 코치님이 '다음에 더 던지자'고 하셔서 감사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많이 배웠다"고 단단한 소감을 털어놨다.

잠실=배영은 기자 사진=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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