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니 '무주택 자격' 박탈..날벼락 맞은 서민들

김용운 입력 2019. 6. 26. 04:30 수정 2019. 6. 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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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소유여부 판단기준 [그래픽=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울 도봉구 쌍문동 전용면적 41㎡ 규모의 소형 아파트에 자가로 거주 중인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민영아파트 청약을 위해 청약가점을 계산하다가 충격에 빠졌다. 올해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오르며 1억3000만원을 넘겨 청약가점상 ‘무주택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서른 살 전에 청약통장에 가입해 가입기간, 무주택 자격 등을 합하면 가점이 40점대 중반으로 민영아파트 당첨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제 무주택 자격이 사라져 서울에 있는 신규 분양아파트 청약 당첨권에서 멀어지게 됐다. 한 번에 공시가가 10%나 올랐다는 사실도 이씨를 화나게 했지만, 무주택 조건이 집값이나 물가 등의 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채 몇년 째 그대로라는 사실이 이씨를 더 분노케 했다.

◇공시가 1.3억 넘어 ‘무주택자격’ 박탈자 수두룩

정부가 공시가를 현실화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몇 년간 서울 등 수도권 일대 공시가를 가파르게 올렸지만, 정작 공시가와 연동한 주택관련 제도는 손을 보지 않아 서민들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고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현재 민영주택 청약에서 전용면적 60㎡ 이하, 수도권 기준 공시가 1억3000만원 이하(비수도권 8000만원 이하) 주택 소유자는 ‘소형·저가주택 소유자’로 분류돼 무주택 세대로 인정받는다. 무주택 기간은 84점 만점인 청약가점에서 최대 32점을 받는다. 이는 2015년 조정된 것으로, 이후 집값 시세와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올랐지만 이 기준은 여전히 제자리다.

정부가 소형 ·저가주택 소유자를 청약제도 상 무주택자로 인정한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청약가점 항목 중 무주택 기간과 관련해선 ‘전용면적 60㎡ 이하이면서 주택 공시가 5000만원 이하인 주택’을 소형·저가주택으로 정의한 뒤 소형·저가주택 1호만을 소유한 경우 무주택자로 인정하고 청약 가점을 배점했다.

소형·저가주택 기준은 2013년 2월 공시가 7000만원 이하 주택으로 달라졌고, 2015년 3월 9·1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다시 조정됐다. 지역별 주택가격 편차가 나는 만큼 주택면적은 전용 60㎡ 이하로 유지하되 가격 변동률 등을 감안해 수도권은 1억3000만원 이하로, 비수도권은 8000만원 이하로 변경했다. 당시 정부는 “주택가격 상승률을 반영하고 주택교체 수요지원을 위해 기준을 완화했다”고 개선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매년 공시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는 2015년 평균 2.4% 상승한 이후 2016년 6.20%, 2017년 8.12%, 2018년 10.19% 각각 올랐다. 올해는 사상 최대폭인 14.2% 뛰었다. 2014년 서울에서 공시가 1억원이던 전용 60㎡ 아파트는 평균 공시가 상승률을 대입했을 때 현재 1억4890억원이 되는 것으로, 이 아파트 세대주는 더 이상 무주택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소형·저가주택 기준 바꿔야” 청원 쇄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무주택자 소형·저가주택 기준’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이 24일 현재 15개 가량 올라와 있다. 청원 대부분이 ‘소형·저가주택 해당 요건’ 중에 공시가 기준을 시대 변화에 맞게 변경해 달라는 내용이다. 무주택 가점 덕에 청약에 희망을 걸고 있다가 공시가 상승으로 의도치 않게 무주택 기준에서 벗어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소형·저가주택 기준’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현재 7~8억원으로 2015년 4억원대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무주택으로 간주하는 서민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기준이 여전히 공시가 1억3000만원(시세 2억원 초반)이라는 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김병기 리얼하우스 분양평가 팀장은 “청약 가점이 1순위 아파트 청약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무주택 청약 가점 여부는 서민 실수요자들에 무척 중요한 문제”라며 “공시가를 기준으로 한 소형·저가주택 요건 개선을 고려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주택기금과 관계자는 “법률상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은 3년마다 한 번씩 검토해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며 “최근 검토시기였던 지난 2017년에는 소형·저가주택 기준에서 공시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형·저가주택의 공시가 기준을 산정한 원칙이 있는 만큼 이를 적용해 공시가 범위를 바꿀 수도 있다”며 “내년에 다시 검토 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민원이 계속 발생하는 문제라면 이를 충분히 반영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김용운 (luc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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