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정권 2인자 내세우고도.. 이스탄불시장 재선거 패배
심각한 경제난에 민심 등돌려
23일(현지 시각)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 시장직을 놓고 치러진 재선거에서도 야당 후보가 에르도안 정권의 2인자를 누르고 승리했다. 지난 3월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0.2%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 정권은 "투표함을 부실하게 관리했다"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재선거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재선거에서는 9%포인트 차로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에르도안이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야당인 공화인민당의 에크렘 이마모을루(49) 후보가 54%를 얻어 45%를 얻은 집권 정의개발당의 비날리 이을드름(63) 후보를 꺾었다. 터키를 철권 통치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25년간 여당 차지였던 이스탄불의 시장직을 야권에 넘겨주게 됐다.
터키인 8000만명 중 1500만명이 살고 있는 이스탄불은 경제·문화 중심지로, 에르도안 자신이 1994년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운 곳이다. 에르도안은 평소 "이스탄불에서 이기면 터키에서 이긴 것이고, 이스탄불에서 지면 터키에서 진 것"이라고 말해왔다.
에르도안이 내세운 이을드름 후보는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에르도안 정권의 2인자다. 반면 두 번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단숨에 에르도안을 견제할 대항마로 떠오른 이마모을루는 이스탄불 서부 베일리크뒤주 구청장을 지낸 신예 정치인이다.
에르도안에게 터키인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경제난으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6개월 사이에만 터키 물가는 20% 올랐다. 달러 대비 리라화(貨) 가치는 5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고, 13%에 달하는 실업률은 최근 10년 사이 최고치다.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는데도 에르도안은 재선거라는 무리수를 쓰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번 재선거를 앞두고 투표를 하기 위해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시민들로 공항·버스터미널·항구가 붐볐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지난달 재선거 일정이 확정되자 재선거와 일정이 겹친 이스탄불 출발 여행 상품 예약의 90%가 취소됐다고 터키여행협회가 밝혔다. 에르도안을 심판하겠다는 시민들이 넘쳐난 것이다. 재선거 투표율은 84%에 달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이스탄불 시내에는 환호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에르도안의 여당이 지난 3월 수도 앙카라 시장 선거에서도 패배한 것을 상기시키며 "선거마다 불패 신화를 써왔던 에르도안의 시대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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