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최우식, 제대로 배운 연기 '맛' [인터뷰]

한예지 기자 2019. 6. 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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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소년미를 간직한 앳된 얼굴이 한편으론 영악한 듯 귀여운 구석이 있다가 또 한편으론 섬찟하게 번뜩이고, 그러면서도 또 가엾은 연민이 일게 한다. 영화 '기생충' 속 배우 최우식이다.

영화 '옥자'로 봉준호 감독과 짧은 인연을 맺은 최우식이 연달아 차기작 '기생충' 대본을 받았을 때, 어안이 벙벙하고 기쁘면서도 잔뜩 긴장을 했더란다. 어떤 역할인지 배역 이름도 모른 채 대본을 봐서 처음엔 정신이 없었다. 그 상태로도 시나리오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후 제 역할이 기우란 걸 알고 다시 대본을 읽을 때. 최우식은 감정적으로 동요가 크게 일어난 탓에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단다. "상상도 못 했던 감정선이었다"며 손을 들어 그래프를 휙휙 그려 보인다. 이렇게 감정이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왔다 갔다 하더라고. 엄청난 여운이 남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며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 놀이기구 타듯 다양하게 놀 수 있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최우식이다. 솔직하게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를 겪고 이를 제법 즐길 줄 아는 배포가 있다.

물론 그가 맡은 기우 캐릭터는 결코 만만치 않다. 대책 없이 무사 태평한 아버지, 괄괄한 어머니, 누나 같은 동생. 이 전원 백수 가족의 구성원이자 장남으로서,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부잣집에 첫 발을 들여 사건의 포문을 열고 종국에 제가 벌인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최우식은 이를 마치 옆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처럼 그리려 했다. 그게 어렵기도 했다. 도드라지게 튀지 않으면서 동글동글한 캐릭터를 만드는 일. 제가 여태껏 맡아온 다른 역할들과는 접근 방법이 달랐다. 하지만 기우가 평범해 보일수록 공감대가 커질 거란 생각을 했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악한, 그래서 더 사실적인 인물이 기우였다. 최우식은 제 모습이 많이 투영됐다며 "제가 아직 연기의 깊이나 경험이 많지 않아 역할을 맡을 때마다 제 단면을 넣는 것 같다. 제 모습을 다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위치는 아닌 것 같다"고 자평했다. 기우의 어리바리한 모습도 저랑 닮았단다. 다만 기세를 외치는 기우와는 달리 제겐 기세가 없다고 너스레다.

그가 캐릭터를 해석하길, 기우는 때론 기우 같지 않은 언행을 한다. 이는 과외 면접을 주선해준 친구 민혁을 보고 따라하 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둘은 친구지만 그들의 위치는 다르다. 매순간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민혁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계획하며 행동했을 거라는 최우식의 설명이 무릎을 치게 한다. 어색하기 짝이 없던 기우의 첫 키스 신도, 폭우가 쏟아지는 계단을 내려가다 뜬금없이 "민혁이라면 어땠을까"라고 중얼대며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은 그래서였다.

최우식 인터뷰 /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기우의 삶의 터전이 되는 반지하 집은 너무도 명백히 계층 구분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보는 이들에겐 암울한 장소였건만, 최우식은 오히려 "실제 재개발 지역 철거 주택에서 모든 소품들을 가져와 재건축한 세트였다. 냄새와 촉감, 이런 오감들이 다 살아 있었고 연기할 때도 자연스러움이 남달랐다"고 했다. 또한 "집도 중요하지만 그 집에서 누구랑 사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반지하 살이는 환경이 열악할지라도, 그 속에 있는 가족들은 끈끈하고 사랑이 넘쳤다고. 전원 백수 가족은 얼핏 보면 피자 박스 접기로 근근이 살아가는 대책 없고 무능하고 게으른 이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최우식은 "재능이 많고 능력이 있는데 기회가 안 온 사람들"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오히려 힘든 환경 속에 더 똘똘 뭉치는 가족이 있어 보기 좋았다고.

집안엔 온갖 디테일한 설정이 담겨있다. 찌든 기름때부터 먼지 가득한 창문에 반지하 냄새까지 풍기는 듯한 사실적인 장소다. 게다가 방 두 칸짜리 반지하에서 기우는 방이 없어 거실 소파 살이다. 최우식은 웃으며 "안방 말고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미술도구가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제 방이 아니더라. 감독님이 와이파이 잡는 소파를 가리키며 '거기가 네 침대야'라고 하셨다. 그래서 소파 옆에 책장을 봤는데 제 물건들이 있는 거다"라고 디테일한 설정을 귀띔했다. 이어 "기우는 방이 없어서 쭈그러져서 자긴 하는데 그것도 되게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공짜로 소독하자며 소독차 연기가 반지하 창문을 타고 들어와 연기가 자욱해진 신을 찍을 때도 그렇게 재밌었단다. 연기 때문에 콜록대긴 했어도 자유로운 대사들로 이들 네 식구가 채워나간 신이었기 때문. 최우식은 연기하는 '맛'을 제대로 맛본 듯했다.

봉준호 감독과 다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최우식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인물의 동작, 표정, 미술, 소품 등 영화의 모든 것이 완벽히 머릿속에 있지만, 배우들에 디렉션을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배우가 가진 아이디어와 궁금증에 살을 붙여 더욱 디테일하게 신을 만들어나갔다. 모든 배우들이 비중과 분량을 떠나 모두가 돋보이는 것도 그렇다. 배우들이 돌, 계단 등 영화 속 모든 상징적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과정들이 절로 생겨났다. 최우식은 "감독님은 우리에게 아직까지 확실히 답을 안 주신다. 그러시고 다른 데서 다 얘기하고 계시더라"고 귀엽게 볼멘소리지만, 볼 때마다 감상이 다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는 작품이라 정말 좋다며 여전한 설렘과 흥분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기우 필수템 돌. 이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제게 돌은 책임감이라 여겨졌다.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교 역의 조여정은 요행을 바랐던 기우 가족의 모습을 빗댄 게 아니겠나 해석했다. 이처럼 다양한 감상이 오가는 현장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기우가 체육관에서 아버지 기택에게 했던 말도 제가 시작한 일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 부자는 아마 인생을 살며 그런 대화를 한 번도 안 나눠봤을 거라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기우 인생에서도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이라 생각해 연기하면서도 가슴이 많이 무거웠단다.

이처럼 최우식을 많은 감상에 젖어들게 한 '기생충'이다. 그는 "제 인생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다. 제겐 시작부터 끝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행복이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영화 속 대사에 빗대어 "저희 아버지 말로는 계획은 무계획이 최고라고 하신다"고 유쾌하게 답하는 그였다.

'기생충'은 최우식에 또 다른 깨달음을 줬다. 결과나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이 재미있는 작품,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변화다. 무엇보다 좋은 영향력을 받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최우식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다.

최우식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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