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마흔 살이 되어도 '에이핑크 정은지'

이종길 2019. 5. 30. 15: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크린 데뷔작 '0.0MHz'에서 소심하고 겁 많은 캐릭터 맡아
엑소시스트 등 영화 보며 준비.. 머리귀신과 생사를 건 혈투
'아이돌 출신' 편견 "내 새끼 기죽지 말라" 팬 응원에 힘 불끈
영화 ‘0.0MHz’는 정은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흉풍이 가득한 우하리의 한 폐가.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학생 다섯 명이 찾아간다. 반쯤 허물어진 황량스러운 집안에서 귀신을 부르는 주파수를 찾는다. 무당의 딸인 소희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직감한다. 예견대로 친구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그녀는 외면하지 않는다. 놀라운 뱃심과 담력으로 귀신에 맞선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호통부터 친다. “이것이 어디서 장난질이여?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잉.”


배우 정은지는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연기한 통통 튀는 여고생도 구수한 경상도 시골말 때문에 유명해졌다. 억센 억양과 생동감 넘치는 얼굴로 정감과 감칠맛을 부여했다. 부산시 해운대구 출신이라서 표현하기가 수월했다. 실제 성격 또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에 가깝다. 늘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환담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 매번 건강하고 발랄한 연기를 보여줬다.


스크린 데뷔작인 ‘0.0MHz’에서는 다르다. 소회는 사회성이 부족해보일 만큼 소심하고 겁약하다. 동아리 친구들이 귀신을 부를 때도 옹졸하게 웅크리고 있다. 딴기적은 목소리는 친구들이 위험에 처하면서 조금씩 커진다. 급기야 굿판을 벌이고 머리귀신과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인다. 정은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색깔의 캐릭터라서 집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제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연기했어요. 처음에는 민망하더라고요. 집안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크게 질렀거든요. 소음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봐 나중에는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살다보니 이렇게 소리소리 질러가며 발악도 해보네요(웃음).”


정은지

-드라마에서 보여준 배역들과 상반된 성격이라서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맞아요. 새로운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컸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리둥절했어요. 원작인 동명 웹툰을 읽고 있었거든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무서웠어요. 귀신이 보여서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죠.”


-많은 준비가 필요했겠군요.

“유튜브를 통해 많은 영상을 확인했어요. 대부분 무서운 내용이었죠. 너무 많이 봐서 한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점점 신경이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소희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 같더라고요. 보고 싶지 않은 귀신을 매일 보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어요. 이해할수록 측윽한 배역이에요.”


-영화 초중반까지 비중이 크지 않아요. 대사도 많지 않고요.

“무표정으로 배역의 변화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선까지 표현이 가능한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죠. 특히 초중반 신들이 그랬어요. 소희에게 초점이 맞춰지지 않다보니 촬영장에서 민망하더라고요. 무언가 활약하는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어요.”


-배우들이 다 같이 모여 리딩할 때부터 곤혹스러웠겠어요.

“리딩을 다섯 번 했는데, 늘 중반까지는 구경만 했어요. 가끔 대학교 교수 배역 등의 대사를 읽어주기도 했고(웃음). 열심히 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니까 자극이 되더라고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 굿을 하는 신에서 힘을 많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무래도(웃음). 혼령이 몸에 빙의해 나타나는 신이라서 마음껏 연기했죠. 준비를 많이 했어요. ‘엑소시스트’ 부류의 영화들을 꼬박 챙겨봤죠. 너무 많이 봤는지 나중에는 꿈속에서 굿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요. 유치하게 보여지면 안 된다는 불안이요.”


-영화에서 마음껏 소리를 질러서 스트레스가 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자기 최면에 걸린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몸에 쌓인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웃음). 집으로 돌아가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죠. 아침에 일어나니까 개운하더라고요. 몸살이 씻은 듯이 나은 것처럼.”


-드라마에는 자주 나왔지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제대로 파악할 겨를이 없었어요. 촬영이 한 달 만에 끝났거든요. 정신없이 연기하다보니 마지막 촬영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어려운 표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함축해서 묘사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더 많이 경험해야 나아질 것 같아요.”


-언론시사회장 입구에 이례적으로 화환이 놓여 있었어요. 팬들이 보낸 건가요.

“네. ‘내 새끼, 기죽지 말라’고 응원해주셨어요. 보고 있으니까 힘이 나더라고요. 어떤 팬은 전날 홍콩에서 열린 에이핑크 콘서트에서 만나고, 그날 또 뵈었어요.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니까 오히려 ‘힘내라’며 격려해주시더라고요. 너무나 고마운 일이죠.”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 때문에 팬들이 많이 걱정하나봐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죠. 아이돌 출신 배우와 관련한 기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안타까운 댓글이 많아요. 그런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배우 정은지’로 불려야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 언니를 지금도 ‘SES 바다’라고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마흔 살이 되어도 ‘에이핑크 정은지’로 불릴 거에요. 저는 그게 좋아요. 다만 저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겠죠?(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