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상 에세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종교개혁의 역사

2019. 5. 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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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종교개혁지 탐방(18)

파리의 3대 필수 관광지라 하면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을 꼽는다. 이 중에서 종교개혁 답사팀이 갈만한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다. 유럽의 다른 박물관들은 주로 과거에 쓰던 거대한 궁전 건물 실내를 개조해서 박물관으로 꾸며 예술품을 전시한다. 그러나 파리의 루브르는 궁전 지하를 파서 거대한 박물관 진입시설과 부대시설, 보관실 등을 입체적으로 조성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드농관, 쉴리관, 리슐리외관 총 3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농 남작은 나폴레옹의 해외 전쟁을 쫓아다니며 각 나라의 무수한 예술품을 모으고(정확히는 약탈) 분류하는 작업을 했던 인물로서, 루브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을 맡은 사람이다. 쉴리는 앙리 4세 때 활약했던 재상이며, 리슐리외는 루이 13세 때 권력을 누렸던 추기경이자 재상이다. 두 재상이 재위 기간에 루브르를 증축하는 사업을 지휘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에겐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악역으로 유명한 리슐리외가 이곳에 이름을 당당히 남겼다.

각 전시관별로 특징이 있다.

- 드농 전시관 : 13~18세기 이탈리아 회화, 18세기 말~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의 회화 위주
- 쉴리 전시관 : 중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유물 및 17~19세기 프랑스 회화
- 리슐리외 전시관 : 공예품, 궁정예술품, 루벤스의 작품들, 플랑드르, 네덜란드, 독일 등 북유럽 회화.

이 중에서 종교개혁과 관련된 곳은 어디일까. 안타깝게도(?) 세 곳 모두이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 이상,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15~17세기의 종교개혁과 직접 관련된 기간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작품들은 물론이고, 당대에 활동했던 예술가들과 플랑드르, 네덜란드, 독일 등의 작품도 종교개혁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시간이 너무 없다면 - 그런 일은 여행 중에 매우 흔하게 발생하니까 - 리슐리외 전시관에 집중하자. 이곳에는 이탈리아 화가 루벤스가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를 그려낸 커다란 그림들이 방 하나를 가득 메운 전시관이 있다. 마리 드 메디치는 바로 ‘앙리 4세’의 두 번째 아내이다. 앙리 4세가 암살당한 뒤, 마리 드 메디치는 아직 어린 루이 13세 뒤에서 섭정을 시작한다. 사실 프랑스는 앙리 4세 치하에서도 신구교의 갈등 구조가 여전했고, 가톨릭교도였던 마리 드 메디치가 사실은 남편의 암살을 지원했다는 설까지 돌았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섭정은 시작부터 불안했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가 따가웠던지, 마리 드 메디치는 이런 그림 연작을 통해 자신의 고상함과 품격을 과시하면서 프랑스 지배의 타당성을 선전(propaganda) 하였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비합리적이고 비합법적인 권력 행사를 미화하기 위해 선전과 선동 도구로 예술을 곧잘 사용하지 않던가.

이 그림들은 파란색을 잘 쓰는 전형적인 루벤스 화풍으로,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도 딱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기분이 들 것이다. 로마의 신들이 그녀의 성장을 돕는 장면, 앙리 4세와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 땅에 발을 내딛는 장면, 앙리 4세에게서 왕권을 상징하는 구슬을 이어받는 장면 등이 정말 눈부신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마리 드 메디치가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가 명백히 드러나 보인다. 그녀의 콤플렉스가 이 그림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그녀는 몰랐던 것일까. 루벤스는 이런 낯부끄러운 그림을 너무도 충실하게 잘 그려내고서 왕실과 귀족들과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고, 죽어서도 그 시신이 판테온에 묻힐 만큼 대접을 잘 받는다. 종교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던 시기에 평탄하기만 했던 루벤스의 삶. ‘플란다스의 개’ 등에서 접하면서 흠모했던 그 이름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나저나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그렇게 지독하게 당하고도 메디치 가문의 여인들을 두 번이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앙리 4세도 참 딱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 따위(?)보다는 정략적 이해관계와 정서를 고려해서 결혼해야 하는 권력자들의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들은 무엇으로 그들의 영혼을 돌보고 보호하는지, 무척 궁금하다.

루브르에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한없이 있다. 종교개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꼭 봐야 할 것들은 보고 나오자.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조각상도 여기 있다. 율리우스 2세의 무덤 장식으로 쓰기 위해 만들었는데, 무덤 장식 치고는 과하게 아름답다. 그 밖에도 차분한 맛이 참 아름다운 보티첼리의 작품들,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등도 감상하자. 언제 이러한 명작들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겠는가.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이곳에 있으니,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자. 수많은 관광객들로 2중, 3중 둘러싸여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어렵다. 그 밖에도 루브르에서 꼭 봐야 할 작품들과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가이드를 참조하자.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내에서 동선을 잘 짜보자.

[루브르 편 부록] 만약 파리에서 주일을 보내게 된다면?

루브르 박물관 바로 근처에 마침 위그노들의 명맥이 이어지는 교회가 있다. 여행 중 파리에서 주일을 맞이한다면, 이곳 오라투아 드 루브르 개혁교회에서 예배드리면 어떨까. (파리 오라투아 드 루브르 개혁교회 / 홈페이지 주소: oratoiredulouvre.fr)

웅장한 석조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장식은 조촐한 교회가 나온다. 건물 중간 좌측에 높이 올려놓은 강대상을 바라보며 예배드리는 구조이다. 예배당 입구에 찬송가 책자가 비치되어 있으니 한 권씩 챙겨서 자리에 앉자. 예배당은 작지 않은 규모였는데,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지 필자가 갔을 때는 1층 회중석이 거의 다 찼다. 예배는 전체적으로 질서정연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 강대상 앞쪽은 예배당의 중앙부에 해당하는데, 이 자리에는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따로 떨어져 앉았다. 물론, 부모와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상당 수의 아이들이 이곳에 따로 앉았다.
▲ 따로 주보가 없고, 예배 순서는 찬송가 앞에 인쇄되어 붙어있었다. 오늘 몇 장을 부르는지는 예배당 기둥에 붙어 있는 목판에 숫자판을 꽂아둔다.

예배 순서지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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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u d’orgue (entree) 오르간 연주(시작)
(assis 앉아서) Salutation 인사
(debout 서서) << O Seigneur ta fidelite >> 오 주님, 당신의 신실하심.
(서서) Louange 찬양
(서서) Psaume indique(Psautier francais) 지시된 시편(프랑스 시편)
(앉아서) Volonte de Dieu 하나님의 뜻
(앉아서) << Seigneur en ta victoire >> 승리의 주님
(앉아서) Confession du peche 죄의 고백
(앉아서) << Mon Redempteur est vivant >> 나의 주님은 살아 계시다.
(앉아서) Annonce de la grace 은혜의 선언
(서서) << Je ne craindrai desormais >>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서서) Confession de foi 신앙고백
(서서) << Dans ma vie de chaque jour>> 각자의 삶에 다짐
(앉아서) Lecture de la Bible 성경 강해
(서서) Cantique ou Psaume indique 프랑스 시편이나 지시된 시편
(앉아서) Annonces 광고
(앉아서) Collecte (Eglise ou Entraide) 헌금 (연보)
(앉아서) Priere d’intercession 중보기도
(서서) Notre Pere 주기도문
(서서) Benediction 강복선언
(서서) << O Seigneur, tu nous a fait voir>> 오 주님, 우리를 지켜주소서
Jeu d’orgue (sortie) 오르간 연주(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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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았다 일어섰다 해야 하는 순서가 참 많았다. 이런 것이 다 신학적 의미가 있다. 몇몇 순서의 경우, 아까 중앙에 앉았던 그 아이들이 순서를 하나씩 맡기도 했다. 목사가 기본적으로 인도하되 아이의 이름을 호명하면 그 아이가 교독을 한다거나 회중 찬양의 일부분을 선창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청아하고 예뻤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훈련된 느낌이었고, 지목된 아이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뿌듯해하는 분위기였다.

시편 찬송을 부르는 순서에서는, 따로 안내가 없어도 사람들이 기둥에 걸린 팻말을 보고 알아서 해당 장을 펴서 불렀다.

▲ 시편 찬송가. 전 세계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예배 중 찬송가로 시편을 사용한다. 반면에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교회들은 자생적인 찬송가를 즐겨 부른다.

성경 강해가 시작되기 직전에, 중앙에 앉았던 아이들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별도의 방으로 이동했다. 어른들이 설교를 듣는 동안, 별도의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성경 교육 시간이 있는 듯했다.

헌금 순서 앞에 광고를 둔 순서는 스코틀랜드 교회와도 같았다. 이때의 헌금에는 연보(자선을 위한 모금)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연보할 것인지를 광고시간을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 강복선언 순서는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교회들은 이것을 “축도”라고 해서 마치 마무리 기도인 것처럼 모두가 눈을 감는데,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도 젊은 목사가 양손을 펴고 회중을 바라보며 축복하고, 그 모습을 회중이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강대상이 높이 들려 올려져 있기 때문에 회중을 향해 복을 선언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수많은 위그노의 희생과 피 위에 겨우 남겨진 프랑스 개혁교회에서 예배드렸다. 마치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 아이들이 빠져나갔던 예배당 앞쪽 출입문. 위에 적힌 문구에 코끝이 찡했다. “Jesus-Christ Notre Seigneur.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중앙 강대상 앞 편 아이들 앉아있던 자리 뒤에 몇 칸의 장의자가 놓여 있었다. 글자가 새겨져 있어 유심히 보니 항존직들의 좌석이었다. 직분의 중요성과 동등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좌석배치였다. Conseillers, Presbyteraux, Diacres. 얼마나 오래된 의자일까!
▲ 강대상 아래엔 또 다른 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생명의 떡이요(요한복음 6:3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성찬상이다.
▲ 예배당 입구 쪽 게시판에 공지사항들이 붙어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교리도 잘 가르치고 있었다.

#1. 게시물 위쪽 공지문 : 주일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4~7세는 성경에 눈뜨기 단계로, 예배드리는 중에 1시간 15분 동안 별도로 성경을 공부한다. 8~11세는 성경학교라는 이름으로 야유회와 함께 10시 30분부터 16시까지 공부한다. 12~15세는 교리공부를 한다. 공부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점심도 먹고 그렇겠지만 말이다.

#2. Le chœur d’Enfants 아이들의 합창대 연습 시간 공지문을 보니 8세부터 무려 16세까지다. 나중에 탐방코스로 소개할 “제네바 아카데미”의 초등부 연령과 똑같다. 신기하다.

#3. 가장 놀라운 공지사항이다. 연중 일정한 시간을 내서, 초보자(화), 기존 학습자(월), 고급반(수)을 대상으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단하다! 한국의 교회들도 이런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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