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9 '알라딘'의 자스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2019. 5. 2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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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2D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볼거리와 흥겨움 선사
가득한 유쾌함 속 감동 한 스푼, 디즈니의 장기 살아나
불의한 자파에 당당히 맞서는 자스민의 기백 강조돼
23일 개봉하는 외화 '알라딘'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이 기사에는 외화 '알라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보았고, 하나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하지만 '실사 버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로 그 점이 양날의 검이 된다. 애니메이션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은 배가 된다.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이 손상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관객이 많기 때문이다.

내일(23일) 개봉하는 외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을 보러 가기 전 기자의 마음이 딱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원작만 하겠어?'란 생각이 앞섰다. 다 보고 나서의 감상은? '실사도 재미있네!'

솔직히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봤을 때 느낀 반갑고 정겨운 감정을 다 채울 순 없었다. 다만 27년 만에 다시 돌아온 2019년판 '알라딘'은 기존 애니메이션과 다르기에 매력적인 부분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실사화된 모습이 낯설어서 조금 벙쪄있는 상태였다. 원작보다 뮤지컬적인 요소를 강화해서, 틈만 나면 주인공들이 노래하는 것도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차차 익숙해진다.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다 알기에, 제작진이 어떤 부분을 변주했는지 알아채며 보는 것이 꽤 재미있다. 요즘 말로 '주접맨'에 가까운 지니(윌 스미스)의 호들갑과 흥겨움을 '캐릭터'가 아닌 '인간'이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는데, 윌 스미스는 그 예상을 비웃듯 100% 이상을 해 낸다. 지니가 나오면서 극이 활기를 띠고 물이 오른 데에는 윌 스미스 덕이 컸다.

푸르딩딩한 색채에 적응하기까지는 약간(개인적으로는 아주 약간이었다)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뿐이다. '알라딘'의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꼽힐 동굴 속 퍼포먼스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 왕자로 변신한 알라딘(메나 마수드)의 행차 때 나오는 '프린스 알리'(Prince Ali)에서 윌 스미스는 훌륭한 원맨쇼를 보여준다. 알라딘과 자스민의 커플 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는 여전히 감미롭다.

2019년판 '알라딘'은 현재의 감성을 적절히 섞어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절도 있으면서도 스웨그(swag)를 놓치지 않는 안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든지, OST에서 래핑을 선보인다든지. 극의 몰입을 깨지 않을 정도로 영리하게 선을 지켰다.

캐릭터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알라딘은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남에게 훔친 물건을 되팔아 근근이 사는 좀도둑으로서의 위치가 부각돼, 자스민(나오미 스콧)에게 자기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감정선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알라딘은 거리의 좀도둑이라는 자기 신분 때문에, 혹은 자파의 계략 때문에 자꾸만 위험을 마주하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자파를 도발해 자파 스스로 족쇄 찬 삶을 선택하게 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짜릿하다.

위부터 알라딘 역의 메나 마수드, 지니 역의 윌 스미스, 자파 역의 마르완 켄자리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니에게는 로맨스 설정이 추가됐다. 자스민의 시녀 달리아(나심 페드라드)에게 반해 깜찍한 연애를 한다. 알라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원숭이 아부는 원작보다 순하고 더 착실해진 모습이다. 반면, 자파(마르완 켄자리)의 앵무새 이아고(알란 터딕)는 교활한 면이 더해졌다. 양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센스 있고 멋지다. 후반부 무시무시하게 커진 이아고와의 추격전에서 대활약한다.

가장 반가운 변화를 보인 캐릭터는 자스민이다. 자스민은 원래도 가장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캐릭터였지만, 2019년판에서는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책을 많이 읽어 지혜로운 설정인 자스민은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 신경 쓰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의 삶을 누구보다 위한다. 아버지 술탄(나비드 네가반)을 제치고 새 술탄이 될 기회를 노리는 자파에게도 주눅 들지 않는다. 자파는 '침묵하고 화초처럼 살 것'을 종용하지만, 자스민은 반대의 길을 간다.

여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문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따진다. 왜 자신은 술탄이 될 수 없느냐고. 천 년 동안 여성 술탄이 하나도 없었다는 답을 듣긴 하지만.

자스민의 기백을 볼 수 있는 백미는 후반부에 등장한다. 램프를 뺏은 자파가 왕궁을 쥐락펴락할 때, 자스민은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르며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노래한다.

"절대 난 무너지지 않아 내 입을 막고 나를 막아보시지"/"나를 막을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절대로 침묵하지 않을 거야"/"입 다물고 살진 않겠어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내 목을 졸라도 내 숨을 끊지 못해"

2019년판 '알라딘'은 자스민이 여자라는 이유로 왕위 계승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와 단절한다. 술탄은 고난에 맞서고 기지를 발휘한 자스민에게 "네 용기와 힘을 봤단다. 네가 아그라바의 미래야. 이제 네가 술탄이다"라고 한다. 술탄 자스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스민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이야~ 눈이 정말 즐겁군요!"라며 빈틈을 마구 노출하는 앤더슨 왕자(빌리 매그너슨)를 명백히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점도 흥미롭다. 본인 의사와 무관한 정략결혼에 불만을 품은 자스민에게 달리아는 한 마디로 정점을 찍는다. "좀 멍청하긴 하지만 대화할 것도 아니고 결혼인데 뭐 어때요?"

처음으로 지니에게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 알라딘, 알라딘을 만나 만 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이 아니라 '친구'가 생긴 지니의 각별한 관계도 잘 나타나 있다. 이미 다 알지만 마지막 소원을 '지니의 자유'를 위해 쓰는 결말을 보면 눈물이 핑 돌 정도다. 시종일관 유쾌한 무드를 끌고 오다가 뭉클함으로 마무리하는 디즈니의 장기가 발현됐다.

풍성한 음악, 화려하고 환상적인 볼거리, 일당백을 해내는 윌 스미스의 연기, 메나 마수드와 나오미 스콧이 펼치는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가정에 달에 딱 맞는 전체관람가 '종합선물세트'가 완성됐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자파가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3일 개봉, 상영시간 127분 48초, 전체관람가, 어드벤처/가족/판타지.

2019년판 '알라딘'의 자스민은 똑똑하고 주체적인 면이 강조돼 한층 더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사진은 자스민 역을 맡은 나오미 스콧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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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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