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전' 김성규, 그의 연기는 살아있다 [인터뷰]

한예지 기자 2019. 5. 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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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김성규 인터뷰 /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함부로 달뜨지 않는다. 제법 이름을 알리는 배우 반열에 오르고, 꽤 폼나는 수식어가 따라붙어도 김성규는 여전히 김성규다. 엄하게 자신을 다잡고, 연기를 고민하고,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나간다.

영화 '범죄도시'의 악랄한 조선족 조폭 장첸파의 막내 양태는 형들 따라 온갖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며 낄낄대고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론 행여 장첸의 심기를 거스를까 시종일관 눈치를 살피며 겁에 질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속 허름한 인상의 하층민 외양과는 달리 조선의 총잡이로 제가 뿌린 좀비의 씨앗을 처리하는 미스터리한 영신은 숱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배우 김성규는 이처럼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비중에 상관없이 '살아있는' 연기란 느낌을 전해준다.

그의 첫 주연작 '악인전'(감독 이원태·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길고 지저분한 장발에 마르고 왜소한 체구, 평범한 얼굴과 차분한 목소리에도 지문이 다 뜯긴 손으로 제 눈에 뜨인 이는 성별, 나이, 덩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무자비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K. 그 평범한 외양과 지독한 살인 행위의 격차는 엄청난 괴리와 이질감을 더하며 절로 공포를 유발했다. 이원태 감독은 김성규가 독하게 살을 빼 너무 미안할 정도였다는데, 김성규는 그리 대단할게 아니라는 듯 "외양적으로 아우라가 있어야 해서 의도적으로 뺐다"며 "요즘은 조금 쪘다"고 심심한 답변이다.

여느 관람평에는 연쇄살인마 K의 눈빛 연기가 영화 '추격자' 속 하정우 못지않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인데도 그는 "아마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대치가 없는 상태에서 더 칭찬을 해주시는 게 아닐까"라며 저를 낮춘다. 그러면서도 개봉 당일 관객의 반응을 많이 찾아봤다며 "제가 이렇게 휴대폰을 오래 잡고 있을 줄 몰랐다"고 웃어 보였다.

원래의 김성규라면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이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여러모로 부담이 된 탓일 테다. 그는 "제 역할이 워낙 세다 보니까 비호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세한 전사나 동기가 그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의문점이 드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걱정했던 지점이 있기에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봐주셨을까 궁금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 초청에 할리우드 리메이크 소식부터 해외 104개국 선판매 소식까지 쏟아지니, 국내 관객들의 높아진 기대치에 실제 어떤 평가를 했을지 내심 궁금하고 염려됐던 모양이다. '악인전'은 개봉 첫날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몰아내고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에 김성규는 "저희는 헐크만큼 엄청난 마동석 선배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은근한 너스레를 떨었지만 "처음보단 긴장이 풀리고 한시름 놓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그에게 '악인전'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조폭 보스 마동석, 미친개 형사 김무열. 이 만만치 않은 이들이 맹렬히 쫓는 연쇄살인마 K. 그가 영화에서 가져야 할 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자칫 제가 어긋나거나, 부족하면 악인전의 구도가 뒤틀려버린다. 심지어 제가 느끼기에도 K는 너무 어려웠다. '왜 그러는 걸까. 왜 이런 말을 할까. 왜 이렇게 무자비한 범행을 저지를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짚이는 인물보단 상상할 여지가 많은 인물이었기에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는 전사를 많이 고민했다"는 그는 보편적인 연쇄살인마의 틀에서 벗어난 K에 집중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도 서슴없이 범행을 저지르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K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의 의미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공허하고 껍데기만 남은 K를 담백하게 그리려 했다는 김성규다. 이토록 치열한 고민과 탐구 끝에 완성된 K인 만큼, 김성규는 K의 사소한 행동 습관까지도 만들어냈다. 지문도 없는 K가 계속해서 손 껍질을 뜯는 습관적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음침한 분위기를 각인시킨다.

사진=영화 악인전 스틸


김성규도 저 스스로 K를 연기하며 문득 섬뜩하단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았다. 특히 취조 장면에서 뻔뻔하게 내뱉는 그의 말들이 가장 무서웠다고. 김성규는 K에 대해 "자신만의 잘못된 신념을 갖고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물"이라고 정의하며 극 중 모든 인물이 자신을 쫓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두고도 "저로선 신기한 경험이고 묘한 쾌감이 있었지만, K입장에선 이를 즐기면서 가지고 놀았을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역할이 역할인지라, 촬영장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고. 그는 "제가 아직 촬영장서 웃으며 있다가 바로 연기에 몰입하는 스킬이 안 돼 혼자 고민하고 K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며 "혼자서 오버하는 걸 수도 있지만 촬영 당시 회식자리에서도 혼자 안 보이게 사라지곤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전작 '범죄도시'에 이어 '악인전'에서도 마동석의 표적이 된 김성규다. 이에 그는 '범죄도시'에서 유독 끈끈했던 장첸파 멤버, 윤계상 진선규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고. 워낙 좋아하는 형들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에 뿌듯하고 힘이 났단 김성규다. 또 마동석 역시 자신을 믿어줬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특히 전작에선 형사였지만, 조폭 보스로 변신한 마동석의 비주얼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김성규는 "정말 부러웠다. 저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서 뭔가를 깔끔하게 입어본 적이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법정 신에서 마동석 선배의 문신한 몸이 드러나는데 그때 뭐랄까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비유하자면 저는 야생 동물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엄청난 포스를,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찰진 비유를 했다.

김성규를 모르는 이는 있어도, 그의 연기를 한 번이라도 접한 이들은 '메소드 연기' '옴므파탈'이란 극찬을 하기 일쑤다. 함께 일한 동료 배우들도 입을 모아 감탄하곤 한다. 그럼에도 김성규는 "제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이 다 세고 임팩트 있는 역할이라 그런 것 같다. 신인인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감사하고 신기하다"고 자신을 낮췄다. 늘 강한 역할들을 해서 일상을 사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있다. 제가 그런 모습을 연기할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단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언젠가 제게 그런 역할이 주어졌을 때 잘 소화하고 싶다고. 묵묵히 제게 주어진 때를 기다리고,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김성규다.

'악인전' 이후 사람들이 그를 보며 배역과 착각해 겁을 내면 어떡하느냐는 우스갯소리에 "많이 웃고 다닐 거다. 무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호소하는 모습이 꽤 순수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 김성규는 앞으로도 다른 생각 않고 연기에 대해 진중한 자세를 갖출 거란다. 주어진 기회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이유가 있을 거란 믿음을 놓치지 않으며, 그리고 조금은 더 연기를 즐기며 하려 한다는 착실한 그의 답변은 그 자체로 믿음을 준다.

악인전 김성규 인터뷰 /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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