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지 말고 뛰어다녀" CCTV는 요양사도 따라다녔다

2019. 5. 15.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1부 돌봄orz ②착취당하는 요양사들

요양보호사 대부분 50대 여성..자격증 따 취업해도 최저임금
부모 잃은 다음날도 누군가의 부모를 돌봐야했다
'파스 투혼' 버텨본들 근속수당 6만원은 꿈같은 얘기
식은 밥에 김치보다 목메게 하는 건 '보호자의 의심'
부천 ㅇ요양원에선 한달에 2번 자원봉사자들의 위문공연이 열린다. 요양보호사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들을 모두 거실로 옮긴 뒤 공연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 (왼쪽 사진) 요양보호사들은 잦은 허리 사용으로 대부분 복대를 차고 있고,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다. (오른쪽 사진) 권지담 기자,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제공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명이다. 노인 인구는 2025년 1000만명을 넘고, 2035년에는 1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추정 치매 환자 수는 75만명 정도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재가요양보호사들에게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는다. 2019년 3월 현재 15만6435명이 요양원을, 41만930명이 방문 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요양원은 이름처럼 노인들이 편하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일까? 국가가 자격증을 주는 요양보호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 현장에 뛰어들었다. 재가요양보호사 14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200여명을 설문했다. 요양원 현지조사 결과 800건, 정부가 고발한 장기요양기관 중 확정 판결이 난 30여건의 판결문도 최초로 분석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3부 8회에 걸쳐 ‘대한민국 노인요양 보고서’를 펼친다. 1부는 권지담 기자의 요양원에서의 한달 기록, 그리고 재가요양의 그림자다.

숟가락으로 최대한 크게 밥을 펐다. 조금이라도 더 먹고 가려고 억지로 밀어 넣었더니 밥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지담쌤, 얼른 먹어. 내가 병원차 오면 부를 테니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넣고 와.” 동료 요양보호사 권순옥(가명·59) 선생님이 창밖을 내다보며 손으로 밥 먹는 시늉을 한다. 고마워하며 밥을 한번 더 씹으려는 찰나, 순옥 선생님이 고개를 돌리더니 다급히 불렀다. “지담쌤~ 차 왔다!”

아귀찜 반찬을 욱여넣고 휴지로 입가의 벌건 양념을 닦으며 1층으로 내달렸다. 우물우물 밥알을 씹으며 김은희(가명·79) 할머니를 구급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이따 봐서 들를게요.” 요양원 원장은 병원에서 결제할 카드만 건네고 사라졌다. ㅇ요양원에서 일한 지 12일째 되는 2월9일 토요일이었다.

은희 할머니의 병원행은 이날 오전 갑자기 결정됐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발진이 심각해졌다고 보고받은 원장이 근처 ㄷ병원 구급차를 불렀다. 하필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자원봉사자 위문공연이 오전으로 당겨져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요양보호사들도 공연에 참여한다. 색소폰 공연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추고 손뼉 치면서 탬버린을 흔들어 흥을 돋우었다. 2시간 동안 몸을 흔들었더니 탈진 상태가 됐다. 원장은 그게 별일이냐는 듯 점심도 먹지 못한 기자를 은희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보냈다.

“저기, 윗옷 좀 올려봐요.” 의사의 지시에 움직인 사람은 간호사가 아닌 요양보호사, 기자였다. 맨손으로 할머니의 윗옷을 올리자 온몸을 덮고 있는 좁쌀 크기의 빨간 반점이 드러났다. “이거 때문에 온 건가요? 별로 안 간지러워 보이는데? 주사 놓고 약 드릴게요.” 팔짱을 끼고 앉아 은희 할머니를 살피던 의사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주사 놓게 옷 좀 내려주세요.” 장갑을 낀 간호사가 당연하다는 듯 기자에게 자기 일을 시켰다. 가려웠는지 은희 할머니가 몸을 벅벅 긁자, 하얀 각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앞치마엔 항상 위생 장갑을 두둑이 챙겨놔.” 선임 요양보호사들의 말을 내가 왜 흘려들었을까. 별수 없이 맨손으로 할머니의 옷을 벗겨야 했다.

할머니 옷을 추스르고 요양원에 돌아가려는데, 맞은편 침대에 노인과 함께 온 중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빠진 콧줄을 끼러 온 요양보호사였다. 3천원짜리 삼선 슬리퍼에 촌스러운 주황색 앞치마, 질끈 동여맨 머리까지…. 우리 둘은 똑 닮아 있었다.

부천 ㅇ요양원 창고에 요양원 입소 노인들이 쓰는 기저귀와 욕창 매트 등이 쌓여 있다. 야근조 요양보호사들은 이곳에서 매일 저녁 네시간씩 쪽잠을 잤다. 권지담 기자

_________
“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요양보호사가 됐지만

“그동안 마트나 식당에서 일했는데 항상 무시당하는 ‘을’이었어요.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증이니까 남한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잖아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준비 학원에서 만난 박지숙(55·가명)씨는 ‘사람’으로 존중받기 위해 요양보호사에 도전한다고 했다. 교육원의 유일한 20대 수강생인 기자를 제치고 학원 모의고사에서 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정말 열심이었다. 요양보호사라는 ‘전문직’을 향한 지숙씨의 열망은 간절했다.

“요양보호사는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해서”(67살) “시어머니 모시고 있는데 어머님이 치매 초기라 도움이 될 것 같아서”(56살) “70대에도 일하고 싶어서”(50살). 수강생들이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정체성은 하나였다. ‘50대 이상의 여성’. 기자가 교육을 받은 경기도 부천의 ㅇ요양보호교육원 수강생의 평균 나이는 56살이었고, 40명 가운데 37명이 여성이었다. 보건복지부의 ‘요양보호사 자격증 발급 현황(3월 현재)’을 보면, 전국 요양보호사의 91.3%가 여성, 74.41%가 50대 이상이다. 교육원은 한국 요양보호사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교육 12일차. ‘이력서 쓰기’ 수업 시간에 수강생들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초등학교를 못 나왔는데 학력에 어떻게 써야 해요?” “경력란에 ‘돈가스’라고 쓰면 안 되고 ○○휴게음식점이라고 쓰세요.” “식당에서 전 부친 건 어떻게 써야 해?” 보험·화장품 방문판매, 식당, 제조업 생산라인, 마트 등 교육원에 오기 전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서비스 판매직을 중심으로 한 저임금 일자리에서 근무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와 13년간 공장에서 경리로 일한 신숙희(가명·50)씨는 ‘엘리트’로 꼽혔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 일하다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다는 신씨는, 지난 5년간 경기 부천의 테마파크에서 사탕을 팔았다고 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노년에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수강생들은 ‘나이 들어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국가가 발급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자격증을 따면 ‘전문직’이 되고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수강생들의 꿈은 요양원에 발을 디디는 순간 부서져 내렸다. 노인 돌봄과 빨래, 청소, 주방일 등 육체노동에 허덕였고, 치매 노인과 보호자들한테 치여 감정노동까지 감당해야 했다. ‘식당 아줌마’에서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지만, 그것이 존중받는 삶을 의미하진 않았다. 요양원 원장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것도 이전의 삶과 다를 게 없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가 162만명인데도 실제 시설 등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41만명뿐인 까닭이다.

_________
‘수액으로 버티는’ 중년 요양보호사들

“기저귀 교체가 가장 끔찍해.” 요양보호사들은 몸을 갈아 넣어 노동했다. 기자가 근무한 ㅇ요양원의 베테랑 요양보호사 강유진(가명) 선생님도 기저귀를 교체할 때면 매번 입에서 ‘악’ 소리가 난다고 했다. 기저귀 교체는 하루 두세번 이뤄진다. 가벼운 몸을 가진 아기들 기저귀와 노인들 기저귀 교체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수동적인 노인의 몸은 몸무게 이상의 무게를 요양보호사들에게 지웠다. 게다가 요양원은 노인들의 낙상을 우려해 침대를 낮게 설치한다.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들의 몸을 만질 때 더 많이 허리를 굽혀야 했다. 오랜 시간 허리를 숙이고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몸 전체에서 힘이 소진된다.

한 손으로 노인의 몸을 옆으로 돌린 다음, 다른 한 손으로 몸을 닦고 기저귀를 교체했다. 1명의 기저귀를 가는 데 최소 5분이 걸린다. 요양보호사 1명이 한번에 6명의 기저귀를 교체하면 30분. 이 작업을 하루 두번만 해도 꼬박 60분 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는 셈이다. 요양보호사들은 죄다 허리에 몰리는 힘을 분산해주는 복대를 차고 다녔다. “수시로 영양제를 맞아. 에너지를 다 쏟아서 그런지 탈진되더라고… 쉬는 날에는 병원 가는 게 일이야.” 유진 선생님은 수액으로 버틴다고 했다. 유진 선생님뿐 아니라 대부분의 요양보호사가 쉬는 날 부항을 뜨거나 찜질방에서 종일 몸을 지졌다. 50~60대 요양보호사들에게 휴무는 곧 병원 가는 날을 의미했다.

‘기저귀 갈기, 목욕·침대 시트 갈기, 손발톱 깎기, 면도, 물통 채우기, 청소, 빨래, 점심 준비, 식사 도움, 양치 도움, 설거지, 빨래 널기, 간식 준비, 프로그램, 간식 도움, 일지 쓰기, 저녁 준비, 저녁 도움, 이동 변기·쓰레기통 비우기.’

하루 동안 요양보호사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진 것만 이 정도였다. 오전 11시∼11시30분, 오후 1시20분∼1시50분, 오후 4시∼4시30분 세번의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식사시간 30분을 빼면 궁둥이 한번 붙이지 못한다. 휴식시간에 쉰다 하더라도 눈은 노인들을 찍고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에 둬야 했다. “앉지 말고 뛰어다녀.” 노인들 옆에 잠시라도 앉을라치면 호통이 날아들었다. 시시티브이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요양보호사 감시용으로도 쓰였다. 출근길 헐렁했던 신발이 퇴근길엔 발이 들어가지 않아 꺾어 신어야 할 정도로 온몸이 퉁퉁 부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서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의 발은 퇴근 무렵이면 신발을 구겨 신어야 할 정도로 부어오른다. 기자의 발에도 동전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권지담 기자

‘주주야야휴휴’. 두번의 주간 근무와 두번의 야간 근무 뒤 이틀 휴식으로 이뤄진 근무일정 덕에 요양보호사들은 일주일 동안 낮밤을 건너뛰었다. 생체리듬은 무너졌다. 특히 야간 근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야간엔 요양보호사 2명이 27명의 노인을 돌봤는데, 불 꺼진 새벽 요양보호사 2명이 27명을 완벽하게 돌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밤 10시~새벽 2시, 새벽 2∼6시엔 요양보호사들도 1명씩 돌아가며 4시간씩 눈을 붙였다. 오후 6시면 요양원이 소등하는 탓에 일찍 잠이 든 노인들이 새벽 1~2시면 깨곤 했다. 깨어 있는 요양보호사 1명은 시시티브이로 노인들을 보고 있다가, 낙상 등이 일어나기 직전 달려가 사고를 예방하는 ‘초능력’을 발휘해야 했다.

따로 수면실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야간 근무자들은 욕실 맞은편 창고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낮엔 빨래를 말리고 기저귀 수레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사방엔 노인들의 기저귀와 공용 옷, 욕창 매트, 침대 시트 등이 쌓여 있다. 습하고 꿉꿉한 냄새가 났다. 낮시간 동안 더러워진 바닥을 닦고 좁은 공간에 누워 있자면, 사방에서 짐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으앗!”

안 쓰던 몸을 혹사한 탓일까. 요양원에서 일한 지 3주차 아침엔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첫주엔 발목이, 둘째주엔 허리가 아프더니 셋째주엔 목·어깨까지 온몸이 근육통으로 욱신거렸다. ‘오늘 내가 빠지면 2명이 근무해야 하는데….’ 게다가 이날은 노인들의 목욕이 예정된 목요일이었다. 목부터 어깨까지 동전파스 8개를 붙이고 출근했다. 목에 덕지덕지 붙은 파스를 보고 놀라거나 ‘아프냐’고 묻는 요양보호사는 아무도 없었다.

근육통과 담은 요양보호사들의 신체 일부였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70㎏이 넘는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다 허리를 삐끗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노인들 상당수가 발목과 무릎을 구부릴 수 없어 무게감은 엄청났다. 요양보호사 2명이 각각 노인의 겨드랑이를 어깨에 걸치고 양쪽에서 들어 올린 뒤 휠체어에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했다. 굳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주고 몸에 바람을 쐬어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요양원은 매일 오후 3시께 3~5명의 노인을 휠체어에 태워 거실에 ‘옮겨’ 놓았다. 한달에 두번 위문공연이 있는 날은 모든 노인을 거실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 ‘죽음의 날’로 불렸다. ‘오지 마라, 제발 취소돼라.’ 공연이 예정된 전날 밤, 기자는 침대에 누워 노인들에게 미안한 주문을 외웠다.

중년의 요양보호사들은 사고로 다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요양원은 병원비를 주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침대에서 떨어진 노인을 옮기다 허리를 다친 요양보호사 양희숙(가명) 선생님은 병원조차 곧장 가지 못했다. 원장은 잠시 뒤 한의원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줬지만 치료비를 주진 않았다. 일주일 넘는 기간의 병원비는 희숙 선생님 몫이었다. “비용 청구? 안 했지. 아프다고 하면 좋아하겠어? 솔직히 병원비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날 사고 때문인지도 헷갈려. 팔이랑 허리랑 안 아픈 데가 없거든.” 요양보호사들은 반복되는 부당한 처분에 체념하고 스스로 그 상황을 합리화했다.

_________
모친상에도 못 쉬는 요양보호사들

무리한 노동은 요양보호사 부족에서 비롯한다. 노인복지법은 요양원 입소자 2.5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두게 되어 있다. 현실과 법은 격차가 컸다. 기자가 근무한 ㅇ요양원은 낮시간에 27명의 노인을 3~4명이 돌봤는데, 근무자가 3명인 날은 2명이 2층의 18명을, 1명이 3층의 9명을 돌봤다. 요양보호사 1명이 7~9명의 노인을 맡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주야 교대 근무자와 연차 사용자 등을 고려하면 요양보호사는 더 부족해진다.

1월29일 기자의 요양원 출근 첫날 만난 희숙 선생님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웠고, 오른쪽 팔뚝에는 동전파스 10여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희숙 선생님은 그때 5일 동안 67시간 근무 중이라고 했다. 하루 평균 13.4시간이다.

희숙 선생님의 ‘근무 폭탄’은 친정엄마의 장례에서 비롯했다. 희숙 선생님은 24시간 온종일 근무하고 이틀을 쉬는 ‘퐁당당’ 근무자였다. 24시간 근무날인 1월20일 저녁 7시께 ‘엄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근무 대타를 구하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내려갔지만 엄마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런데 엄마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것보다 희숙 선생님을 힘들게 한 건 살인적인 추가 근무였다.

“경조사 휴가는 따로 없어요. 대신 근무자는 구해볼 텐데 빠진 시간은 채워야 해요.” 원장은 희숙 선생님이 1월20일 채우지 못한 근무 13시간30분과 23일 근무 24시간을 1월 안에 채우라고 지시했다. 이 추가 근무가 24시간 ‘퐁당당’ 근무와 맞물려 폭탄이 됐다. 1월25일 9.5시간, 26일 24시간, 27일 9.5시간, 29일 24시간, 30일 7.5시간 등 6일간 74.5시간이 배정됐다. 그런 폭탄 근무를 나흘째 이어가던 29일, 희숙 선생님이 당장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 건 당연했다. “전에도 나 근무 날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위급했던 적이 있거든. 그저 오늘 밤만 넘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지.” 아침 회의 시간 기자를 처음 본 자리에서 희숙 선생님은 후두둑 눈물을 쏟았다.

요양보호사 상당수가 경조사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결혼식은 그렇다 쳐. 딸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슬퍼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날 출근하라고 하더라고. 울 시간, 슬퍼할 시간이 어딨어!” 따뜻한 얼굴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라고 권하던 순옥 선생님은 2017년 8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를 참을 수 없다며 얼굴을 붉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일장을 치러야 했지만, 요양원은 연차를 하루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순옥 선생님은 3일장을 마친 뒤 요양원에 출근해 연속 48시간을 근무했다. 꼬박 5일 밤을 새운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누군가의 부모를 돌봐야 했다. “보통 회사도 부모가 죽으면 5일은 쉬어. 근데 3일도 못 쉰대. 게다가 부모랑 시부모 4명 가운데 1명에 대해서만 유급휴가를 준다는 거야. 이게 말이 되냐고.”

경조사만이 아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정해진 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주주야야휴휴 시스템에서 요양원은 ‘휴휴’ 뒤 연차를 하루 붙여 ‘휴휴휴’ 3일을 이어 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휴휴휴는 1년에 딱 두번 특별히 허락해준대. 그런데 그것도 눈치 보여서 쓰기 힘들지.” 순옥 선생님은 하루라도 쉴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다른 요양원 이야기를 했다. “옆 요양원은 만 65살 이상만 뽑잖아. 연차를 하루도 안 주는데, 만 65살 노인들이라 갈 데가 없어서 그냥 일한대.” 요양보호사들은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불행을 위무했다.

요양보호사들의 경조사 휴가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아래 ‘장기요양급여 제공 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 방법 등에 관한 고시’로 규정돼 있다. 고시 제12조 ‘근무인원수 산정 방법’을 보면 △본인·배우자의 부모 또는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5일 △조부모 또는 외조부모가 사망할 경우 2일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2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강제사항이 아닌 탓에 대부분 요양기관은 휴가를 자체적으로 결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다. “요양보호사가 경조사로 빠진 시간을 정부가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준다고 해도, 요양기관 입장에선 빠진 자리를 누군가로 채워야 하는 ‘업무 공백’으로 여겨서 휴가를 주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_________
밥도 안 주면서 해고까지…서러운 중년 여성들

“적정 수준의 임금과 근무 조건하에서 돌봄 노동자는 강한 애정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2017년 권현정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가 발표한 논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요양보호사의 근로조건이 서비스 질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연구’를 보면, 돌봄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요양보호사의 노동 조건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장기요양서비스가 도입된 2008년 1700곳에 그쳤던 노인요양시설은 2019년 5338곳(입소율 85.7%)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숫자만 늘었을 뿐, 기관의 운영은 관리되지 않았다. 장기요양기관들은 이윤을 맞추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을 쥐어짰다. 입소자를 늘리려 낮은 가격을 내세웠고, 가격이 낮아진 만큼 요양보호사들의 인건비를 깎았다. 실제 기자가 ㅇ요양원에서 하루에 8시간씩 한달 152시간을 일하고 받은 월급은 145만원이었다. 기본급 126만9200원에 3일치 주휴수당 20만400원을 더한 146만9600원에서 고용보험과 소득세 등 1만8390원을 뺀 금액이다. 기본급은 일한 시간에 시급을 곱해 계산하는데, 적용되는 시급은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이다. 20대 기자에게 요양보호사들이 “왜 요양원에서 일해? 다른 아르바이트도 많은데…”라고 입을 모아 말한 이유가 여기 있다. 편의점에서 일하나 요양원에서 일하나 1시간 시급은 최저시급으로 같았다.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식사는 따로 제공되지 않았다. 요양원은 요양보호사들에게 노인들 배식 뒤 남은 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하라고 했다. 요양보호사 밥 먹자고 노인들 배식량을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낌없이 듬뿍 담아요.” 사회복지사의 말에 따라 노인들 밥에 수북이 반찬을 올리고 나면, 요양보호사들의 몫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점심에 조금 여유가 있으면 급히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두부라도 한모 넣거나 라면이라도 사 오고 싶었지만, 사회복지사 허락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었다.

‘밥과 배추김치, 물김치, 파김치, 김.’

오전 9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살인적인 오전 노동을 마친 요양보호사들의 점심 반찬은 단출했다. 요양보호사들은 반찬을 직접 싸 왔다. 점심 반찬은 한달에 한두번 주방 당번이 만들어 오는 게 암묵적 규칙이다. 퇴근길 피로에 찌든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따로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김치류를 싸 왔다. “어머, 애기 쌤(나이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기자를 부르는 호칭)이 계란말이를 싸 왔네. 오늘은 진수성찬이야.” 기자가 당번이었던 날 반찬통을 열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기자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한 일은 퇴근길에 달걀 10알을 집으로 사 간 것뿐이었다. 기자 대신 엄마가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달걀을 말았다. ‘진수성찬’은 또 다른 중년 여성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은 근무 경력이 늘어날수록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는 ‘사람’이 아닌 ‘비용’이었다. “곧 2명이 요양원을 나갈 거예요. 우선 사람들에겐 임시로 한달만 일한다고 소개하고 2명이 나가면 정식으로 일하자고.” 입소 첫날 사회복지사는 자기소개 때 이렇게 입을 맞추자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곧 나갈 2명은 자발적 퇴사가 아닌 해고였다. 해고자는 순옥 선생님과 이미희(가명) 선생님으로, 요양원에서 각각 2년5개월과 4년을 근무한 고참들이었다. “돈 때문이지 뭐. 1년, 2년 올라갈수록 줘야 하는 퇴직금이 커지니까 부담스러워서 자른 것 같아.” 원장은 ‘요양원 공사 때문에 노인들을 다른 요양원을 보내야 해 요양보호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댔지만 원장의 설명과 달리 기자가 일하는 동안에도 신입 요양보호사들은 계속 충원됐다. 5년 동안 요양원에서 근무한 사회복지사는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11개월이 되면 요양보호사를 자르거나, 3년 이상 되면 퇴직금이 누적되니까 자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5개월만 더 일하면 근속수당 받을 수 있는데 아까워죽겠어.” 2년5개월을 일한 순옥 선생님은 해고보다 근속수당을 못 받는 데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 일자리는 곧 구할 수 있겠지만, 근속수당 6만원을 더 받으려면 다시 36개월을 한곳에서 일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 11조 4항에 따르면, 요양보호사가 한 기관에 오래 근무했을 경우 △36개월 이상 60개월 미만은 6만원 △60개월 이상 84개월 미만은 8만원 △84개월 이상은 10만원의 장기근속 수당을 매달 받을 수 있다.

“요즘은 1년 되기 전에 자르고 또 뽑고, 또 뽑고 그게 추세라고 하더라.” ㅇ요양원에 근무하기 전 닷새 동안 근무한 ㅊ요양원은 3년 이상 근무자가 1명도 없었다. 대부분 근속 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요양원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부천의 ㄱ요양원 관계자는 “여기는 한두 사람 빼고 모두 7~8개월밖에 안 됐다”며 “오래된 분들은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안주한다. 그래서 전부 새롭게 뽑았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기도 했다. 앞서 권현정 교수의 논문을 보면, 요양보호사들의 1년간 이직률은 33.31%다. 기자가 한달간 일하며 느낀 훌륭한 요양보호사의 조건은 나이도 체력도 아니었다. 강한 비위와 오랜 세월 단련한 인내심이었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그 ‘오랜 세월과 인내심’은 곧 퇴직 사유가 됐다.

부천 ㅇ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3층에 입소한 노인들의 밥을 2층에서 실어 날랐다. 반찬과 국이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손목에 많은 힘을 줘야 한다. 권지담 기자

_________
“감금하고 때린다면서요?” 보호자들의 의심

“얼마 전에 텔레비전 보니까, 요양원에서 노인들 감금하고 때리고 욕하고 그런다면서요?”

설 연휴 요양원을 방문한 박경자(가명·83) 할머니의 딸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아이고~ 무슨 소리세요. 그러면 우리 죽어요. 아침마다 어르신들 최고로 모시라고 얼마나 교육받는데요. 말도 안 돼요.” 요양보호사 권민지(가명) 선생님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요? 잘 좀 부탁드려요.” 경자 할머니의 딸은 민지 선생님의 반응을 살핀 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의심을 모두 거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말조차 하지 않았다.

민지 선생님은 경자 할머니 딸이 떠난 뒤 씩씩대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게 할 소리야? 우리가 얼마나 어르신들을 챙기는데, 여기 맡겨놓으면서 의심을 왜 해? 기분 나쁘게. 이런 말 들으면 진짜 일하기 싫어.” 요양원의 온갖 궂은일에 앞장서는 민지 선생님이지만, 보호자들의 의심 앞에선 인내심이 바닥난 듯 상실감을 보였다.

감정노동은 육체노동보다 배로 요양보호사들을 힘들게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원장에게 고용됐지만, 매일 돌보는 노인들과 보호자들의 요구도 챙겨야 했다. 특히 보호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요양보호사들을 의심하면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았다.

“케겔 운동(항문 수축 운동)을 시켜주래. 요실금·변실금이 있으니까.” “케겔 운동? 여기가 무슨 병원인 줄 아나. 그런 거 하고 싶으면 개인 요양보호사를 둬야지. 아들이 집에서 케어를 하든가.”

업무 인수인계가 이뤄지는 오전 8시30분께. 사무실에 모인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들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입소한 지 얼마 안 된 박원태(가명·79)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간호사를 붙잡고 이것저것 요구한 게 사달이었다. “케겔 운동은 나도 못 해, 나도! 심지어 이마의 미간도 펴달래. 우리가 그분만 볼 순 없잖아.” 간호사는 씩씩대며 말을 이어갔다. 보호자들 입장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운동도 시켜주고 애정으로 정성껏 돌봐주기를 바라지만, 밥을 먹이고 기저귀만 갈기에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보호자들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요양보호사가 져야 했다.

요양소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사고도 모두 요양보호사들의 책임이었다. “흡인(가래 제거)이나 인슐린 주사 등은 간호사 업무니까 요양보호사들이 하면 안 돼요.” 자격증을 딸 때 교육원 강사는 요양보호사의 업무를 철저히 구분해 가르쳤다. 교과서 ‘요양보호서비스의 기본원칙’에는 “맥박, 호흡, 체온, 혈압 측정, 흡인, 위관영양, 관장, 도뇨, 욕창 관리 및 투약 등을 포함하는 모든 의료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의료 행위는 간호사의 몫이고, 요양보호사는 노인들의 상태를 보고 간호사에게 전달하는 ‘관찰자’로서의 구실만 하라는 취지다.

현장은 강사의 가르침과 달랐다. 기자는 강사가 현실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가르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ㅇ요양원에 간호사는 상주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겨우 1명뿐이라 쉬는 날이나 퇴근한 뒤 모든 의료 행위는 요양보호사의 몫이었다. 간호사 휴무 날은 요양보호사들이 대충 전날 기록을 참고해 맥박과 호흡, 체온, 혈압 등을 일지에 허위로 기재했다.

“처음에 흡인을 하라는데 거품까지 나오니까 무서워서 못 하겠더라고. 우물쭈물했더니 하기 싫으면 그만두래.” 지금은 2시간에 한번씩 하루 열번 태연히 흡인하는 순옥 선생님이 말했다. 기자도 근무 첫날 흡인과 인슐린 주사 놓는 법을 배웠다. “잘못해서 피 올라오면 선생님이 책임져야 해요.” 간호사의 한마디에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했다. “원장 아침조회 기가 차지 않아? 사고 났을 때 우리 뭐 하고 있었냐고 하데. 앞으론 요양보호사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아니 선생님들이 잠시 쉴 수도 있지, 그거 쉬었다고 책임? 원칙대로 할 거면 그럼 따져보자고. 너희들이 휴게시간을 제대로 줬냐. 우리한테 시키면 안 되는 흡인 같은 것도 막 시키지 않냐.” 요양보호사들은 ‘책임’이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의 많은 곳이 그렇듯,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원칙은 현실 밑바닥까지 적용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의지만 밑바닥까지 내려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할 가짜 배설 일지와 진짜 배설 일지를 작성하는 것도, 소변줄을 찬 노인의 소변 주머니를 갈아주고 그 양을 기록하는 것도 모두 요양보호사의 몫이었다. 권지담 기자

_________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중년 여성들

과거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시절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 간 권력 위계에서 가장 취약한 며느리의 몫이었다. 2019년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선 저임금의 여성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겠다며 ‘돌봄의 공공화’를 외치고 사적 영역의 돌봄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였지만,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인색하고 보상은 한없이 낮다. 돌봄 노동에 ‘공공’이라는 외피를 덧씌웠지만, 한국 사회의 돌봄은 여전히 권력의 최하층에 있는 중년 여성들의 노동력 착취로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한달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기자가 요양원을 그만둘 무렵, 퇴직금 등의 이유로 ‘해고가 예정됐던’ 순옥 선생님도 함께 요양원에서 해고됐다. 해고 2주 뒤 부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순옥 선생님의 얼굴은, 그럼에도 한결 밝았다. 기자 앞에는 주황색 앞치마 대신 흰색 니트와 검정 코트를 걸친, 맨 얼굴이 아닌 곱게 화장한 순옥 선생님이 있었다. “쉬면서 수요일에 노래교실도 가고, 라인댄스도 배우고 좀 쉬니까 좋네. 실업급여 신청했는데 오늘 문자가 왔어.” 활짝 웃는 순옥 선생님에게 늘 함께했던 파스 냄새도 나지 않았다.

“젊어서 30대에 애 키워놓고 회사도 다니고 식당도 다녔어. 화장품 공장이었는데 케이스도 만들고 내용물도 만들고 포장도 하고 그랬지. 나이 먹으면 요양보호사 해야겠다 싶어서 공장 6시에 끝나면 야간에 학원 가서 공부했어. 두달 공부하고 토·일 실습하고. 초기에 따놓길 잘했지.” 순옥 선생님은 잠시 쉬다 다시 일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우리 나이 되면 이제 회사는 못 들어가잖아?”

그렇게 만나고 한달 정도 지난 4월 중순 무렵, 순옥 선생님이 또 다른 요양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사라졌던 순옥 선생님의 파스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끝이 시큰해졌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