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보다 더 좋았다, 태교여행

이하늬 기자 2019. 5. 1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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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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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거주하는 김수정씨(32)는 임신 16주차에 괌으로 4박5일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김씨는 “배가 별로 나오지 않아 저가항공도 탈 만했고, 평소 좋아하는 스노클링과 수영도 실컷 했다”며 “임신 후반기에 접어드니까 몸이 무거워지면서 숨이 차서 여행은 꿈도 못꾸겠더라. 그때 여행 가길 잘했다”고 말했다.

여행에 익숙한 세대, 달라진 태교 문화

김씨는 신혼여행보다 태교여행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신혼여행은 결혼이라는 큰 행사를 치른 직후라 피곤했고 양가 식구들까지 신경써야 해 부담스러웠다. 반면 태교여행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여행은 오직 엄마를 위한 일정으로 짜여졌다. 김씨는 “언제 그렇게 속 편하게 여행을 가보겠나”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주변에 태교여행을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출산 후 24개월 된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그렇다. 아이와의 여행을 두고 김씨는 “준비물부터 다르다. 챙겨야 할 것들이 엄청나다”며 “여행이 아니라 ‘야외육아’ 수준이다. 남편은 군대 유격훈련보다 힘들다고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 또래의 ‘예비 엄마들’ 사이에서 태교여행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온라인 맘카페에는 태교여행 전에 준비해야 할 것, 주의사항, 여행지 추천, 여행 후기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현지 산부인과나 대형병원을 추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여행이 본격적인 태교상품으로 등장한 건 2010년대 초·중반 들어서다.

‘태교여행’ ‘베이비문’ 등의 용어가 생겨났고 임신한 연예인들의 여행 사진, 만삭 사진 등이 이슈가 됐다. 여행사와 호텔은 임신부에게 적절한 가벼운 운동이나 마사지, 태교에 좋은 음식, 산부인과 의사와 함께하는 여행 등의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이전에도 태교 시장은 존재했다. 태교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1980년대다. 태교음반과 문화센터의 태교수업 등이 대표적이다. 1986년에 첫 아이를 출산한 김영희씨(64)는 “태교에 좋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고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은 드문 일이었다. ‘절대적 안정’이 우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행에 익숙한 세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태교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2040세대에게 여행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들은 관광이 아닌 ‘쉬기 위한’ 여행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다. 여행의 개념이 이전보다 가벼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단기간의 여행이 정말 태교에 효과가 있을까. 일본 나가사키대 신경생리학과의 시노하라 카츠유키 박사는 “안정기에 접어들면 임신부의 몸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변화가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영향을 미친다. 특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태아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한 산부인과 의사도 “옥시토신은 태아의 뇌 발달과 움직임에 도움을 주고 산모와 태아 사이의 유대 형성에도 관여한다”며 “행복감이 중요하다. 여행이 엄마를 즐겁게 한다면 태교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태교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신 14∼28주 시기가 가장 적절

나아가 당사자들은 태교여행이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일종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임신 직후부터 출산 후 1년까지는 엄마의 몸상태, 그리고 육아 때문에 야외활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태교에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마에게는 당시 추억이 순간이지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태교여행 경험자들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제2삼분기(임신 14~28주)다. 이때를 안정기라고 하는데 임신 태반 구조가 완성되면서 호르몬 양이 안정을 찾고 입덧 증상이 가라앉아 임신 초기에 발생한 엄마의 신체적 부담이 줄어든다. 임신 말기에는 몸이 무겁고 조산 위험이 있다.

여행지로는 너무 멀지 않으며(4~5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 사람이 적고 휴양시설이 충분한 곳이 적절하다. 무엇보다 위생관리 확인이 필수다. 벌레와 물에 의한 감염 확률이 낮아야 하며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해외 여행지로는 괌이나 사이판, 마카오 등이,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전치태반, 천식, 임신성 고혈압, 정맥혈전색전증 등을 앓고 있거나 조산 위험성이 있는 임신부는 가급적 여행은 피하는 게 좋다. 또 빈혈이나 심장병, 호흡기질환, 질 출혈, 골절 등이 있는 고위험군 임신부의 경우 조산 위험이 크므로 해외보다는 가까운 국내 여행을 추천한다.

실제 ㄱ씨는 27주차에 동남아시아 국가로 태교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여행지에서 진통이 온 것이다. ㄱ씨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진통이 있는 상태에서 4~5시간 비행이 산모에게 위험할 것 같아 현지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아이는 곧장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의료시스템이 한국만큼 발달하지 못해 결국 사망했다.

따라서 태교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과 충분한 준비다. 여행을 앞두고 태아의 건강상태와 자궁수축, 자궁경부 등의 검진은 필수다. 또 현지 의사가 볼 수 있도록 차트를 복사하고 영어로 된 간단한 소견서를 챙기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 된다. 영문 소견서를 요구하는 항공사도 있다.

여행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필요하다.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숙소까지 교통편은 어떤지, 현지에서 감염 위험은 없는지, 가장 가까운 병원은 어디인지, 응급상황 발생시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등이다. 장시간 비행이나 멀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굴곡이 심한 자동차 여행은 추천하지 않는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보통 ‘안정기’라고 하면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사라져 아기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건 임신부의 상태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 작은 증상들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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