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스트리트 패션, 세상의 중심에 서다

2019. 5. 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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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정해진 시간에 신상품 공개하는 드롭 방식
슈프림뿐만 아니라 고급 브랜드들도 도입
루이비통, 버질 아블로 영입으로 깜짝 변신
스트리트 패션 강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듯
몽클레르가 다양한 디자이너와 손잡고 ‘몽클레르 지니어스’ 라인을 선보였다. 사진은 후지와라 히로시가 디자인해 선보인 옷. 사진 업체 누리집 갈무리.

스트리트 브랜드가 이끄는 흐름이 패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이별을 고하는 게, 패션트렌드이긴 하지만, 스트리트 패션의 강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듯싶다. 다종다양한 이유로, 아직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올해 마흔 중반에 닿았다. 정장을 갑옷처럼 걸치고, 일터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트리트 브랜드에서 출시한 티셔츠, 스웨트셔츠, 조거 팬츠, 배기 팬츠에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탈리안 클래식과 아메리칸 클래식에 열광하며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그 예를 거스르지 않을 법한 스타일을 추종하곤 했다. 하지만 세상, 아니 트렌드가 달라졌다.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의 중심부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단순한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패션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그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며, 스트리트 패션은 자유분방하게 순항 중이다.

루이비통이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를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한 뒤 선보인 ‘스테이플스 에디션’. 사진 업체 누리집 갈무리.

패션계에서 서브 컬처, 스케이트보드 문화, 각종 한정판 운동화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다종다양한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기존 명품 또는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하고, 그 결과물을 반복해 노출하고 있다. 스트리트 브랜드의 대표주자 슈프림과 확고한 고급 브랜드 루이비통이 협업을 했을 때, 판매 시작 전부터 매장 앞에 노숙하는 대기자들이 차고 넘쳤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에 이렇게 몇 날 며칠을 줄 서서 대기하는 광경은 익숙지 않았다. 루이비통이란 브랜드의 힘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광란’의 결정적인 원인은 슈프림 때문이란 판단이 적확할 듯싶다. 개인적 견해이지만, 누구도 강하게 부정하지 못할 테다.

영향력 있는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드롭’이란 방식으로 자신들의 신제품을 공개하고 판매한다. 매주 목요일, 슈프림 매장엔 새로운 상품들이 보기 좋게 낙하한다. ‘드롭 데이’라고 불리는 날이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슈프림 매장 앞에 줄을 선다(몇 년 전 이야기다. 주변 상점에 방해되자 매장 입장 방식을 바꿨다. 현재는 매주 목요일 11시, 슈프림 매장 앞에 줄 서는 장관이 펼쳐지진 않는다). 결국 다 팔리고, 재입고 되는 제품은 거의 없다. 슈프림의 박스 로고 티셔츠는 구매가 불가능할 정도다.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내 사라진다. 뭔가 아주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박스 로고 아이템들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웃돈 주고, 재판매자들에게 사는 방법이 남아있긴 하지만.

매튜 윌리엄스가 참여한 디올 맨의 2019년 여름 콜렉션. 사진 업체 누리집 갈무리.

이런 슈프림의 방식을 영국의 슈프림이라 불리는 팔라스도 비슷하게 적용하고 있다. 작년 일본 도쿄에 팔라스 매장이 문을 열었다. 도쿄에 들렀을 때 당연한 듯 팔라스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남아있는 아이템은 있었지만, 내가 사고 싶어하던 아이템들은 이미 판매 완료. 품절이었다. 빈손으로 매장을 나서야 했다. 드롭 데이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매장에 진입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한 ‘구매’를 노력 없이 이루려 했던 내 잘못이었다.

스트리트 브랜드의 드롭 방식은 판매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아주 적절한 방법이다. 이 특별한 방식의 장점을 누리는 건 이젠 그들만은 아니다. 고급 브랜드인 버버리도 드롭 시스템을 도입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신제품을 발매하는 방식으로 판매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쉽다. 또한 품절이란 메시지가 뜨면, 사람들은 갖고 싶어 몸서리친다. 기존 고급 브랜드들은 시즌제를 적용해, 패션쇼에서 옷을 보여주고, 해당 시즌이 되면 매장 또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버버리는 디지털의 중요성에 대해 목놓아 외쳤던, 전 최고경영자 앤젤라 아렌트가 버버리를 떠나 애플로 간 뒤(현재는 애플 수석부사장에서 물러났다)에도 디지털에 대한 높은 집중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버버리는 인스타그램에서 드롭 시스템을 차용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최근 소비의 중심인 젊은 층, 밀레니얼 세대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매튜 윌리엄스가 참여한 디올 맨의 2019년 여름 콜렉션. 사진 업체 누리집 갈무리.

몽클레르도 역시 드롭 시스템을 기반으로 브랜드 구조를 재편했다. 패션계에서 뜨거운 지지를 받는 디자이너들과 주기적인 협업을 통해 제품을 출시한다. 이렇게 이벤트와 결합한 판매 시스템으로 새로운 유통체계를 확립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몽클레르의 주가가 2013년 상장 이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고공비행하고 있다는 건, 새로운 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셀린느도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을 영입한 후, 그의 첫 컬렉션을 정식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액세서리 일부를 드롭 방식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패션 산업의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즌제로 옷을 선보이는 전통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디지털 세상은 좀 더 지속적이어야 하고, 호흡은 짧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고급 브랜드의 컬렉션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고, 고객들은 빠르고 다양하게 제공되는 브랜드의 판매 방식에 열렬히 반응한다. 그런 이유로 고급 브랜드 중 일부는 잰걸음으로 스트리트 브랜드의 성공을 이끌었던 드롭 시스템을 차용해, 패션 산업의 변화에 걸맞은 보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리 도른힐 드윗이 참여한 2019년 겐조 봄여름 컬렉션. 사진 업체 누리집 갈무리.

스트리트 패션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들이 명품 브랜드에 영입되고 있는 것 또한 스트리트 패션의 강세를 보여준다. 루이비통은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인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를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깜짝 영입했다. 디올 맨은 2019년 컬렉션을 준비하며, 디자이너 킴 존스를 영입했다. 킴 존스는 첫 컬렉션을 준비하며, 스트리트 감성을 지닌 알릭스의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에게 디올 맨에 기여해달라는 의뢰를 청했다. 결국 매튜 윌리엄스는 디올 맨을 위해 자신의 상징적인 롤로코스터 버클 등을 디자인해 킴 존스의 인상적인 데뷔에 일조했다. 칼리 도른힐 드윗은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오프화이트의 협업자로,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했다. 특히 2016년 카니예 웨스트의 ‘세인트 파블로 투어’의 머천다이징 디자인을 맡았던 게 인상적이었다. 스트리트 감성이 짙은 그는 이번 봄·여름 시즌에 겐조 컬렉션에 일조했다. 그는 키 프린트(컬렉션의 중심 또는 주요 문양) 중 하나인 장미 문양을 데님 재킷 위에 아로새겨 놓았다.

스포츠 브랜드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량만을 출시해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높이 내걸고, 추첨 방식과 선착순 방식으로 매출 증대에 나서고 있다. 나이키와 버질 아블로가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나이키와 피어오브갓의 제리 로렌조와의 협업, 아디다스와 카니예 웨스트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이지 시리즈 등 다양한 협업의 결과물들은 경쟁적으로 신속하게 품절되고 있다. 재판매 또한 마니아들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차고 넘치는 협업에 가끔은 지칠 법도 하지만,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건, 빠른 품절(솔드 아웃)을 받아들여야 하는, 구매하지 못한 자들의 푸념이 에스엔에스에서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는 슈프림의 신제품 판매일인 드롭 데이에 제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의 동영상도 올라와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스트리트 브랜드가 추구하는 브랜드 운영 방식과 판매 전략이 전방위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스트리트 성향이 강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수적인 고급 브랜드들이 스트리트 패션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스트리트 패션의 강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브랜드들이 대부분 판매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적절한 증거다. 최근 힙합 아티스트들의 팬덤이 놀라울 정도다. 그들은 대부분 스트리트 브랜드와 스트리트 성향이 녹아든 고급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 스타일리시하며, 파급력이 막강한 그들이다. 아무래도 스트리트 브랜드의 강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듯 보인다.

성범수 트렌드 매거진 <인디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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