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 15억개1조어치 팔았다..불황에 매운맛 전성시대

곽재민 2019. 5. 8.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한 소비자가 매운 라면을 먹고 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강렬한 맛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중앙포토]

#. 직장인 이해(26)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을 찾는다. 그는 “매운 음식을 먹은 다음 날이면 항상 속이 아파 고생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또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며 “최근 마라탕을 자주 먹는데 한국 음식에서 맛볼 수 없는 특유의 알싸한 맛 때문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 전업주부인 김민경(43)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운 음식을 찾는 가족 때문에 걱정이 많다. 김씨는 “아이들이 SNS에 올라오는 매운 음식 콘텐트를 보거나 공부에 스트레스는 받을 때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찾는다”라며 “매운맛 라면이나 가정간편식을 항상 구비해 놓는다”고 말했다.

매운맛 전성시대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강렬한 맛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다. 매운 중국음식 마라탕이 젊은이 사이에서 대세음식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매운맛 과자, 청양고추를 넣은 라면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닌 통증으로 두뇌와 감정을 자극해 감성을 활성화하거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운맛이 인기를 끌면서 외식업계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얼얼한 매운맛이 특징인 중국 음식 마라탕과 마라샹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검색하면 10만 건 넘게 검색될 만큼 트렌디한 매운맛으로 주목받고 있다.

식품업계도 잇따라 매운맛 제품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청양고추, 레드페퍼, 와사비와 같은 다양한 매운맛을 활용한 ‘신(辛) 마케팅’ 전략이다.

오리온이 출시한 감자엔소스닷 청양데리야끼소스맛 제품.

오리온은 이달 초 ‘감자엔소스닷청양데리야끼소스맛’ 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달큰한 데리야끼소스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청양고추의 매콤함을 더했다. 1인 가구 증가와 경기 침체 여파로 집에서 혼술을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안주형 과자로 개발된 제품이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 시제품을 맛본 소비자에게 “맵단짠(맵고 달고 짠) 3박자의 환상적인 맥주 짝꿍” “청양고추의 개운한 매콤함이 계속 끌린다”와 같은 호평을 받았다.

오리온의 이영균 상무는 “알싸하고 매콤한 맛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맛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소한 스트레스 해소용이나 혼술족 안주로 인기를 끌면서 불황기에 새로운 맛 트렌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양 핵불닭볶음면

삼양식품은 기존 불닭볶음면보다 더 매운 ‘핵불닭볶음면’을 지난해 말부터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스코빌 지수(SHU) 1만2000의 ‘핵불닭볶음면 미니’를 출시했다.

스코빌 지수는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의 농도를 계량화해 표시한 수치다. 삼양식품의 불닭 브랜드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282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첫 출시 이후 15억개 이상 판매됐다. 이 제품은 올 상반기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뚜기가 최근 출시한 '와사비 진짜쫄면'.

오뚜기는진짜쫄면의 후속 제품으로 ‘와사비 진짜쫄면’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콤한 쫄면에 고추냉이(와사비)를 첨가해 먹는 트렌드에 착안한 제품이다.

빙그레도 대표 스낵 브랜드인 꽃게랑에 매운맛을 더한 ‘꽃게랑 청양고추’를 선보였다. 출시 전 시행한 소비자 조사에서 새로운 매운맛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것에서 출발한 제품이다.

빙그레의 '꽃게랑 청양고추'.

간편식도 매운맛이 대세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해 말 ‘CU마라탕면’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입소문을 타고 출시 4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30만 개를 넘어섰다. 육두구, 화자오, 후추, 정향, 팔각 등이 들어가 마라는 저릴 마(麻), 매울 라(辣)를 써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하다는 뜻이 있다.
CU마라탕면

매운맛 열풍에 대해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매운맛은 불경기의 아이콘”이라며 “경제 불황 시기에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자는 매운맛을 더 찾는다. 관련 업계는 매운맛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은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윤영호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캡사이신은 뇌를 자극해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을 분비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매운 음식은 위 점막을 손상해 위궤양이나 위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곽재민ㆍ최연수 기자 jmkwa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