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50주년]카레로 시작해 '갓뚜기'까지..'식품보국' 50년

박정규 2019. 5.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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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정규 기자 =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갓뚜기'라는 애칭이 더 자연스러워진 오뚜기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오뚜기의 창립기념일은 5월 5일이다.

1969년 서울 영등포 문래동 4가에서 풍림상사라는 이름으로 카레 배전기 1대를 지니고 시작된 오뚜기는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식품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제 국내 식품시장에서 일궈온 그간의 50년을 발판으로 글로벌시장을 넘보고 있다.

오뚜기는 요새 한창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국내 간편식 시장의 원조격인 회사다. 1969년 5월5일 즉석 분말카레 제품을 국내에 선보이며 첫 발을 뗀 풍국상사는 1971년 6월 풍림식품공업으로 법인 전환한 뒤 몇 차례 상호 변경을 거쳐 지금의 오뚜기가 됐다.

오뚜기의 초창기 행보는 늘 새로움으로 가득 찼다. 창립과 함께 내세운 제품인 카레에 이어 스프, 케첩, 마요네즈 제품 등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당시에는 낯설었던 외국 식품들을 국내에 소개해 이를 대중화시키는 역할에 충실했다.

다양한 '최초'의 기록도 이어졌다. 영업사원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진열을 돕고 소비자와 대면하는 루트세일(Route Sale)을 국내 처음으로 실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식판매 및 판매여사원 제도 도입, 차량광고와 제품박스를 활용한 광고 시행 등도 첫 번째 사례였다.

이는 국내 영업, 마케팅 역사에 빠지지 않는 사건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식판매 사원과 관련해서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원칙을 지킨다는 점에서 '갓뚜기'라는 표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품의 역사도 새로 썼다. 1981년에는 가정간편식(HMR) 제품의 효시로 회자되는 '3분요리'를 출시하면서 국민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1987년에는 라면시장에 출사표를 던져 대표 제품인 진라면 등을 내놨다. 이를 통해 1988년 매출 1000억원에 올라선 오뚜기는 '창업 이후 10년 안에 100억원 달성, 20년 안에 매출 1000억원'이라는 창업주의 목표를 실현했다.

오뚜기가 외국산 식품 출시에만 열을 올렸던 것은 아니다. 1977년 식초 출시와 1983년 참기름 출시에 이어 1986년에는 옛날당면을 시작으로 전통식품을 출시했다. 특히 옛날당면에 이어 출시한 국수, 미역, 물엿 등은 오뚜기의 전통식품 브랜드 '옛날' 브랜드를 확립하도록 이끈 제품이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다양한 제품 출시와 함께 삼남공장 준공(1992년), 중국풍림식품유한공사 설립(1994년), 오뚜기 뉴질랜드 출범(1995년) 등을 통해 사세를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1990년대부터는 이른바 '착한기업'을 표방한 각종 사업에도 나섰다. 오뚜기의 대표적 사회공헌 사업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지원사업'을 1992년 7월부터 시작했다. '어린이는 곧 나라의 희망이며, 미래사회의 주인공'이라는 함태호 명예회장의 지론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올해 4월 기준으로 오뚜기가 지원한 심장병 어린이는 5만1명에 달한다.

이 밖에 1996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스위트홈 오뚜기 가족요리 페스티발'과 함께 2012년부터 밀알재단 '굿윌스토어'를 통해 장애인에게 일감을 제공하는 사업, 카레의 효능과 효과를 학술적 근거로 입증하는 '카레 및 향신료 국제학술 심포지엄' 등을 진행하고 있다. 1996년 설립된 오뚜기함태호재단을 통해 다양한 학술진흥사업, 장학사업 등도 전개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첨단 식품 생산기지인 대풍공장 준공을 통해 가정간편식의 기반을 닦고 주식(主食)사업에 진출해 종합식품기업의 위상을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7년에는 염원하던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시련의 시간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수입개방화 조치에 따라 시장환경이 변하면서 다국적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 시기 오뚜기는 케첩과 마요네스의 품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으면서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지켜냈다.

1989년 일어났던 우지사건도 오뚜기에는 잊을 수 없는 시련이었다. 법정 공방 끝에 1995년 7월 서울고등법원은 '식품규격기준 상 안전성이 입증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997년 8월 대법원도 무죄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2010년 함영준 회장이 취임한 오뚜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오뚜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각종 신제품 등을 통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라면의 개념을 뛰어넘은 '쇠고기미역국라면' 등을 선보이면서 라면시장에서 점유율을 역대 최대인 28%대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오뚜기는 2조971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 같은 경영성과로 함 회장은 지난해 10월 산업통상부가 주최한 국가생산성대상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오뚜기는 고객의 사랑과 관심, 임직원들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열정이 모여 국내 최고의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며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내고 시대에 맞는 업무환경을 구축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pjk7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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