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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컨셉으로, 기사 사진을 자연스레 찍으려 했더니, 옆자리 녀석이 브이를 했다. 그러면 티나잖아, 잘했어./사진=B 초등학교 미남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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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들과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들: "와아아, 누구에요?" "몇 살이에요?"
나: "저는 전학생이에요. 나이는 8살이에요(뻔뻔)."
아이들: "어? 근데 왜 이렇게 키가 커요?"
나: "그게…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요(팩트). 이렇게 커버렸어요."
아이들: "에이, 거짓말. 어른이잖아요. 몇 살이에요?" "왜 용준이 자리에 앉아 있어요?"
나: "8살 맞는데, 속상하네요."
아이들: "배는 왜 이렇게 나왔어요? (배 누르면서) 모찌떡 같아!"
나: "하하, 아하하…"
소란스런 아이들을 달랜 뒤, 수업을 들었다. 미술 시간이었다. 봄꽃들을 모아온 뒤 스케치북에 붙이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책상 위엔 흰 도화지가 놓여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 때리고 있자니, 한 남자 아이가 다가왔다. "이거 줄게!" 국화처럼 생긴 노란 봄꽃이었다. 또 다른 여자 아이는 "왜 아무 것도 안 그리고 있어요?" 하더니, 색연필을 가져왔다. 해맑은 동심(童心)에 맘이 따수워졌다. 초록 색연필로 산과 잔디를, 하늘을, 아내와 내 모습을 그렸다. 이 얼마 만인지. 그림 실력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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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 산 너머 있는 아내(왼편)에게, 꽃을 들고 달려간다는 컨셉이다. 1학년 친구에게 "와, 잘 그렸어" 하고 칭찬 받았다./사진=남형도 기자 |
'초등학교'에 갔었다. 그냥 간 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돼봤다. 국민학교(그땐 그리 불렀다)를 졸업한 지 24년 만이었다. 추억이 가물가물해질 만한 시간이다. 좋아하던 애와 짝하고 싶어 맘 졸였던, 괜시리 괴롭혔던 기억, 책가방을 놓고 학교에 갔다 혼났던 일(밥통은 챙겨감), '배워서 남주자'고 말하던 선생님. 똘똘이 안경을 쓰고, 부모님과 뻣뻣하게 서서 찍은, 졸업식 사진 한 장. 그렇게 초등학교 6년이 끝났었다.
그땐 어린이라 불렸었고, 나름대로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도. 근데 어린이란 이유로 그리 자유롭진 못했었다. 그걸 받아들이던 나도, '아직 어리니까'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었다. 그래서 주어진 공부를 하고, 학원을 가고, 말 잘 듣는 어린이였던 것 같다. 내 의지대로 하고 싶었던 게 많아서, 그저 빨리 크고 싶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에 간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른처럼 생긴 '어른이'가 되어, 혹은 '전학생'으로 빙의(憑依)해 어린이들 얘길 좀 듣고 싶어서. 많이 궁금했다. 어린이였을 땐, 이런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된 난, 아이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아이답게 잘 지내고 있는지도.
그래서 초등학교 두 곳을 가보기로 했다. 하나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A 초등학교, 또 다른 하나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B 초등학교다. 두 곳을 가본 이유는 학교 크기에 따라, 또 교육열과 사교육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지 느끼고 싶어서였다. 아무래도 기자가 간다는 게 학교 입장에선 부담스러웠을터. 그래서 섭외가 쉽잖았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특히 문선종 대리) 도움으로 어렵게 성사됐다. 지난달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체험했다.
등굣길 아침, 교실은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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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교실 맨 뒤에, 홀로 앉아 있는 남기자. 내게도 짝꿍을 달라./사진=A 초등학교 선생님 |
아침 8시, 등교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A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교정을 보니 반가웠다. 그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학교 다닐 땐 이리 빨리 가본 적이 없었다. 정말 등교 시간에 딱 맞춰 갔었다. 옷차림은 편안하게 했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놀려면 꽤 움직여야 할테니. 반팔티와 면바지, 운동화를 신었다. 집에 있던 초코파이 하나도 들고 갔다. 우량아 어른이에게 '간식'은 필수니까.
3층 계단을 올라, 기나긴 복도를 지나 교실을 찾았다. 도착하니 파란 팻말에, 5학년 6반이라 적혀 있었다. 담임 선생님 이름과 학생 수도. 남학생 14명, 여학생 14명해서 총 28명. 아이들 숫자도 그새 많이 줄었다. 학교 다닐 땐 한 40여명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좌측, 우측 통행을 하도록 그어진 복도의 노란선과 한 켠에 가지런히 쌓인 신발 주머니를 보니 반가웠다.
교실에 들어가니 급훈이 보였다. '대접 받고 싶은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였다. 급훈다운 말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일찌감치 출근해 있었다. 아이들 개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맘이 느껴졌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책·걸상이 하나씩만 놓여 있었다. 짝꿍이 없어서 아쉬웠다. '왕따' 모드였지만, 괜찮았다.
8시30분이 넘어가자, 아이들이 한두명씩 보였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면서, 나를 한 번씩 힐끔거렸다. '저 사람은 누구지?', '왜 저기 앉아있지?' 이런 표정이었다. 이에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안녕!" 하면서 인사를 했다. 9시가 다 돼오자 교실이 삽시간에 꽉 찼다. 이제야 오랜만에 학교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이 자리에서, 칠판이 있는 교단을 바라봤었다. 딴청을 피우고, 졸고, 몰래 키득거리다 혼나고.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엔 늘 시끌벅적 했었다. 반 아이들이 다 모였으니, 곧 그럴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교실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다들 책상에 책 같은 걸 꺼내서, 연필로 쓱쓱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조금 낯설었다. 교실 앞쪽에 앉은 한 남자 아이에게 "아침부터 뭘 그리 열심히 해?"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눈길도 안 주고는, "학원 숙제가 많아서요"하며 바삐 써 내려갔다. 또 다른 아이에게도 "뭐 하고 있니?" 물었더니 "학원 숙제요"라고 했다. 자리로 돌아온 '어른이'는, 할 게 없어 멀뚱멀뚱 창 밖을 봤다. 운동장에도 아이들이 없었다.
쉬는 시간 종 '땡' 치니…그제서야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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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안~밥!" 파란 옷 입은, 때리는 아이가 찰지는 손맛이 인간문화재 수준이었다. /사진=남형도 기자 |
'딩동댕동.' "와아아아."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책상·걸상이 온통 들썩거렸다. 조용했던 교실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길로 교실 앞뒤로, 복도로 뛰쳐나갔다. 오랜만에 모범생인 척하느라 좀이 쑤셨던 나도 따라나섰다. 자그마한 녀석들 사이로 나도 멤버였던 것처럼 큰 몸을 스리슬쩍 끼워넣었다. '좋아, 자연스러웠다.'
대여섯 남짓한 남자 애들이 노는 데엔 별다른 게 필요 없었다. 책상 하나와 바둑돌 여러 개, 그거면 충분했다. 뭘 하나 봤더니 '알까기'였다. 바둑돌을 하나 공수해, 책상에 놓고 튕기기 시작했다. "아, 난 공격하지마!", "아, 안돼안돼안돼". 공격에 부처님의 자비 따윈 없었다. 빠르게 날아간 검은 바둑돌은, 다른 흰 바둑돌을 쳐서 날려 보냈다. 몇 차례는 욕심이 과했는지, 내 돌도 함께 날아갔다. "예~~" 하며 놀리는 웃음이 곳곳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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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껴줘" 알까기하며 노는 아이들./사진=A 초교 선생님 |
여자 애들은 곳곳서 쭈그리고 앉았다. 뭐 하나 봤더니 '공기 놀이'였다. 다들 기억하는가. 동그란 공기 다섯개를 땅에 내려놓고, 다시 집고, 마지막에 다섯 개를 손등에 올린 뒤 잡으면 1년이 올라가는 그 놀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나도 한땐 공기 놀이를 꽤 잘했었다. "누가 제일 잘해?"하고 물으니 "얘에요!" 하고 손가락이 한 명을 가리켰다. 아이는 이를 증명하듯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손눌림을 보여줬다. "나도 옛날에 잘했어!"하고 껴보다가, "그럼 보여달라"는 말에 조용히 자릴 떴다.
노는 모습을 보니 영락 없이 '아이'였다. 학원 숙제에 고개를 파묻고 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삼촌 미소가 지어졌다. 어찌나 밝고, 신나 보이고, 해맑은지. 어른이가 오래 짓지 못했던 웃음을, 여기서 한꺼번에 봤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오랜만에 오길 잘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수업 시작 종이 쳤다. 1분만 더 놀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쉬웠다.
체육 시간인데…운동장에 못 나가고(feat.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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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을 말아서 던져 맞추는 놀이. 3모둠에 껴서 활약 중인 어른이. 다들 날 스카웃 하려고 난리였다. 뿌듯. 오른편에 앉아 있는 아이는 다크 템플러처럼 숨어 있다./사진=A 초교 선생님 |
기다리던 체육 시간이 됐다. 국민학교 다닐 때도 가장 좋아했었다. 체육을 시작하기 전부터 운동장에 뛰쳐 나갔었다. 특히 피구와 축구를 좋아했었다. 발에 불이 나도록 뛰다보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러면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식수대에 가서, 수도꼭지에 입을 넣고, 콸콸콸 쏟아지는 물을 마셨다. 진정 꿀맛이었다.
그런 신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미세먼지였다. "선생님, 오늘 미세먼지 괜찮아요?" 아이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오늘 미세먼지가 나빠서 운동장에 못 나갈 것 같네요"라 답했다. "아~" 하며 실망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칠판 위쪽 잘 보이는 자리에 '미세먼지 알림판'이란 게 붙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드넓은 운동장은 고사하고, 창문도 꼭꼭 닫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좁다란 교실에, 숨도 맘껏 못 쉬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미안했다. 흙먼지를 알아야 할 나이에, 다른 먼지를 먼저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걸 두려워했다.
별 수 없이 실내 체육을 했다. '유니폼 던지기' 놀이를 한다고 했다. 룰은 간단했다. 한 학급에 총 일곱 모둠인데, 한 모둠(4명)만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유니폼을 던져 맞추는 거였다. 맞으면 책상 위에 앉아 있어야 했다. 일종의 '아웃'이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아이들을 아웃시킨 모둠이 우승이었다. 상품은 '카라멜'이었다. 아이들 눈이 번뜩였다.
게임이 시작됐다. 대충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정말 열심이었다. 유니폼을 맞지 않으려 부지런히 뛰어 다녔다. 더 빨리 움직여야 했지만, 교실이 좁아 맘껏 다니지 못했다. 어른이가 함부로 움직이다간, 아이들이 넘어져 다칠 것 같아서. 쥐며느리처럼 한 켠에 숨어 있다가, 통통 거리며 뛰어 다녔다. 나이는 세 배 많은데,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못했다. 그래도 애들은 피하겠다며 내 뒤로 숨었다. 일종의 방패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앞에서 든든히 막아주고 싶었으나, 내가 먼저 피했다(미안).
땀을 한껏 흘리고 나니, 진정 초딩이 된 것 같았다. 그 순간 만큼은 나도 열두살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무 근심 없이 놀아본 게 얼마 만인지. 잊고 있던 5학년 때 내 모습을 찾은 느낌이랄까.
더워도 문을 열 순 없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에어컨을 켰다가, 냄새 때문에 그냥 껐다. 체육 시간에 진을 다 빼고도, 애들은 쉬는 시간에 또 놀았다. 노는 게 그리 좋은지, 지치지도 않는지.
"학교에서 많이 놀아야 해요, 더 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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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학원 숙제./사진=남형도 기자 |
학교서 맘껏 놀고픈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미주알 고주알 그에 대한 얘길 털어놨다. 그리고 좀 놀랐다.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학원 가는 게 힘들다고 했다. 한 아이는 "집에 가면 잠깐 쉬다가, 바로 학원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몇 시에 오냐 물었더니, 밤 9시란다. 그럼 학원을 몇 개 가는 거냐 했더니 하루 평균 3~4개라 했다. 또 다른 아이는 아예 집에도 못 가고 바로 학원에 간단다. 저녁을 먹냐 그랬더니, "못 먹고 학원 먼저 간다"고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저녁 8시30분쯤 돼야 집에 온다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 배고프단다. 쇠도 씹어먹을 나이니. 더 물어볼 것 없이 일상이 다들 비슷했다. "학원 안 가는 친구, 손 들어보라" 했더니 한 두명 남짓이었다.
집에 가서도 잘 못 쉰다. 여러 아이들 얘길 들어보니, "학원 숙제가 많다"고 했다. 평균 2~3시간씩은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밤 11~12시가 훌쩍 된단다. 늦게 잔다는 아이는 "새벽 1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어른이인 나보다 조금 잔다"고 애써 쓴 웃음을 지었다. 주말에는 쉬냐고 했더니 역시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다. 학원에 간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혹은, 주말엔 주말 숙제를 많이 내줘서 하느라 바쁘다고.
'전학생'이 교실에 온 기념으로, 어른들에게 하고픈 얘기가 있음 전해주겠다 했다. 그랬더니,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요약하면 참 단순했다. "더 놀고 싶어요!", "학원 가기 싫어요." 어린이들은 한창 노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말이 왜 그리 먹먹해졌는지. 적어도 국민학교 다닐 땐, 이 정도는 아녔다.
선생님은 "요즘 학교 숙제도 잘 안 내준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학교에 와서라도 맘껏 놀았으면 해서"라 했다. 그 말처럼 애들은 학교서 분초를 다투며 열심히 놀았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을 먹은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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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운동장이 한적하다. /사진=남형도 기자 |
그리고 방과 후엔 학원에 간단다. 먼 미래의 교육 과정까지 배운단다. 초등학교 5학년이, 고등학교 수학까지도 습득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A 초등학교 운동장은 한적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휴전선 근처 B 초등학교, 운동장이 '바글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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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가 됐는데도 바글바글 뛰노는 아이들이 많은 B 초등학교 운동장. 선생님과 '놀이 체육'을 아예 한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
A 초등학교서 무거운 맘을 안고 돌아온 다음날, B 초등학교를 찾았다. 경기도 파주 휴전선 부근에 있는, 전교생이 55명 남짓한 작은 학교였다. 다른 환경에 사는 아이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미 그 무게를 느꼈었다. 그래서 좀 달랐으면 하는 맘이 컸다.
학교에 들어서니 놀이터서 뛰노는 아이 두 명이 보였다. 어쩐지 반가워서, "얘들아, 몇 학년이니?" 하고 물었다. 그네를 신나게 타던 아이들은 "2학년이요"하고 답했다. 그러더니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길래, "아니야, 전학생이야"라고 또 몹쓸 거짓말을 했다. 날 쏘아 보는 강렬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후다닥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 아이들은 집과 거리가 좀 있어서, 셔틀버스를 나눠 타고 온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얘길 나눴다. 선생님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사교육을 거의 안 한다"고 했다. 학원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다닐 여건도 마땅찮다는 것. 그래서 맘껏 놀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정말 잘 논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얘길 나누다 운동장을 봤다. 전교생 55명이 다 쏟아져 나온듯 바글바글했다. 크고 작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 시끌벅적 웃으며 뛰어 놀았다. 아이들 이마엔 개운한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교장 선생님은 "아침하고 방과 후엔 놀이 체육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를 개발 중이란다.
아침 9시가 다 되도록 뛰논 뒤에야 아이들은 학교로 들어왔다. 이번엔 6학년 교실로 들어가 기다렸다. 뜀박질을 막 끝낸 아이들이, 헉헉 거리며 하나 둘씩 들어왔다. 다 모이니 8명쯤 됐다. 몇몇은 얼굴이 상기돼 있었고, 또 몇몇은 평소 어찌나 잘 노는지 얼굴이 까맣게 탔다.
히틀러에게 "평화 지켜줬으면"…학원서 배운 게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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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글쓰기 수업 시간. 건의하는 글쓰기를 하는데, '위층 아주머니'에게 층간 소음을 줄여줄 것을 건의하는 글을 써봤다./사진=남형도 기자 |
6학년 수업을 들었다. 1교시는 국어 수업이었다. 심지어 '글쓰기' 수업이었다. '이건 내 전문 분야니, 맘껏 활약해보자'고 맘 먹었다. 선생님이 교과서 읽을 사람을 찾는데, 한 아이가 "전학생이 읽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내 얘기였다. 딴청을 피우고 있으니, 선생님이 "전학생이 그럼 한 번 읽어볼까요?"하며 날 지목했다. 긴장이 됐지만 또박또박 읽었다. 박수를 받았다. 이게 뭐라고 뿌듯했다.
'건의하는 글쓰기'를 하라고 했다. 인사말과 자기소개, 문제상황, 해결방안, 기대효과 등을 넣으라 했다. 그러니 바로 떠오르는 대상이 있었다. 층간소음 유발자인 '윗집 아주머니'였다. 그리고 평소 참았던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썼다. 연필심이 가루가 될 뻔했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문을 여닫는 끼이익 소리가 귀신 비명소리 같다. 기름 좀 칠해달라', '쿵쿵거리고 끄는 소리에 잠을 깬다', '슬리퍼를 신어달라' 등.
스스로 잘 썼다며, 대견하다며 다 쓰고 놀았다. 그러다 아이들 발표를 듣고는 숙연해졌다. 생각이 참으로 깊었다. 한 아이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건의하는 글을 썼다. "당신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죽고 고통 받았다", "부디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 "그러면 세계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라고.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재활용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동네 주민들에게 건의하는 글을 썼다. 쓰레기를 잘 분리해서 버려달라고. 그러면 지구가 덜 고통스러워 할 거라고.
대견한 맘에 아이들에게 "학원을 얼마나 다니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한 아이가 8명 중 1명 정도 밖에 안됐다. 다니는 아이도 하루 1시간30분 정도만 학원에 가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학원서 배울 수 없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깨쳤다. 그건 사교육으로 얻은 생각이 아녔다. 히틀러에게 편지를 쓴 아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란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릇된 역사는 현재를 헤쳐가는 법을 알려주기에, 좋은 책이라고 했다. 또 다른 아이도 환경 관련 책에서 봤다고 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렇게 훌륭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젠가 배울 지식을 미리 배우는 게 아닌, 살아 있는 교육이었다.
"너 그렇게 하면 안돼"…놀면서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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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사진=남형도 기자 |
두 학교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이 맘껏 잘 노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또한 중요한 배움이라 했다.
B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겐 B 초등학교는 유토피아(이상적인 공간)에 가깝다"며 "다른 학교에도 많이 있어 봤지만, 여기 아이들은 자기들 만의 질서가 잘 잡혀 있다"고 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함께 놀면서 자연스레 배운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땐 몰랐던 것들이 아이들과 놀면서 새삼 보였다. '놀이'가 알려주는 가르침이랄까. 두 초등학교서 모두 느꼈다.
'알까기'를 할 땐, 누군가 떨어뜨린 바둑돌을 다른 아이가 주워주곤 했다. 그리고 '마피아 게임'을 할 때, 산만하게 방해하는 아이 하나가 있으니 "그렇게 하면 안돼"하며 다른 아이들이 서로 제재를 했다. '인디안밥'을 하며 친구들 등을 때릴 땐 웃으면서도, "야, 그렇게 세게 하면 어떡해"하고 누군가 얘기하기도 했다.
A 초등학교 실내 체육 시간, '유니폼 던지기' 놀이를 할 때, 다른 편을 맞추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유니폼을 든 채로 두 발자국 이상 발을 뗄 수 없게 룰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근처 다른 아이에게 패스를 해야 했다. 이 또한 중요한 협업이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애써 혼자 유니폼을 말아 던지려 했다. 그러다 두 발자국을 넘어 반칙을 했다. 친구에게 건네면, 더 많은 아이들을 아웃시킬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패스할 생각을 못했다. 아마 혼자 공부하는 게 익숙한 탓일까.
이를 지켜본 선생님은 그런 얘길 했다. "친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으면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져 걱정이라고. 길게 보면, 정작 더 중요한 교육인데, 이를 잊고 사는 건 아닐지.
잘 노는 아이들이 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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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
아이들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는 건 과열된 '교육열'이다.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고 있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자료에 따르면, 한국 아이들의 주당 공부 시간은 평균 60시간으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들 중 가장 긴 편이란다.
이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중 24.2%가 '자유로운 휴식 및 노는 시간'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 반면, 공부 시간이 있는 아동은 무려 87.7%나 됐다. 운동 시간이 아예 없는 아동도 전체 중 50.2%로 있다고 답한 아동(49.8%)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이들이 느끼는 '행복감(感)'을 조사한 결과, 자유로운 휴식 및 노는 시간이 많을 수록, 운동 시간이 많을 수록, 행복하다고 답한 아이들이 많았다.
공부에 치우치다 보니, 수면·학습·운동 등 생활 영역별 권장시간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가 적었다. 수면 시간은 22.7%, 학습 시간은 30.3%, 미디어 시간은 37.8%로 전체 3분의 1 이상의 아동들이 불균형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학자 데이비드 엘카인드는 "지나치게 빡빡한 계획표, 과도한 학교 시험 등 여러 면에서 아이들을 말 그대로 들볶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만성 스트레스를 불러 막연한 불안감, 학습된 무기력 등을 심어준단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좋은 해독제는 '놀이'라고 강조했다.
잘 알고 있다. 부모 맘은 조바심이 난단 걸.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모들이 다 이렇게 말했다. "사교육을 그렇게 시키고 싶진 않은데, 뒤쳐질까봐 두렵다"고. 혹은 "우리 아이만 안 시켰다가,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갈까봐 걱정된다"고. 누가 먼저 시작한 지도 모르는 교육 경쟁에 그리 내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숨 가쁘게 쫓아가고 있었다.
그랬다. 지금과 같은 교육 환경에선, 엄마나 아빠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단 생각. 그러니 '왜 아이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탓할 수만은 없다. 부모들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살아가기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그래서 조금이나마 고생을 덜 하는 길이, 공부라 믿을 것이다.
실제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소신껏 중학교 때까지 놀게끔 했는데, 아이가 수업에 뒤쳐진다며 이제와 원망한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결국 남들처럼 내달리지 않으면,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내몰고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을 보며, B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이렇게 말했다. "결국 대학 입시 위주로 모든 게 짜여져 있는, 교육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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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 덩그러니, 운동장서 뛰논다는 뜻이다./사진=남형도 기자 |
에필로그(epilogue). 오랜만에 초등학교에 가니, 켜켜이 묵혀뒀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너무 예전 일이라 대부분 뿌연 안개처럼 가물가물했다. 그 와중에 기억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도덕 교과서나, 국어 문학 같은 건 아녔다. 이따금씩 100점 맞았던 일도 아녔다. 물론 별로 그랬던 적도 없지만.
말뚝박기를 하다 "야, 왜 이리 치사하게 하냐"며 친구와 다퉜던 기억. 급식 빨리 먹겠다며 냅다 뛰어다녔던 것. 운동장서 축구를 하다, 축구공에 중요 부위를 맞고 아파했던 일. 놀이터서 두꺼비집을 만들거나, 와리가리(테니스공 던지는 놀이)를 하며 신나했거나, 피구공에 불꽃 마크를 그려 넣고 '피구왕 통키'를 흉내낸다며 웃었었던. 어설프게 종이를 말고 테이프를 붙여 공을 만들고, 복도서 뛰어 다니다 선생님에게 혼났던, 그런 '추억'들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인지, 어른들은 까먹고 있다. 우리도 한땐 아이였었고, 공부만 내몰리는 환경이 싫었고, 정말 원 없이 놀고 싶었다는 것을. 같은 맘으로, 아이들이 우릴 물끄러미 보고 있다.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건 오롯이 어른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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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보다, 너희들과 시소를 타는 게 더 좋아. 정말 행복했다./사진=남형도 기자 |
B 초등학교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과 시소를 신나게 탔다. 엉덩이가 부서져라 놀았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조차 까먹었다. 그만큼 행복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기자님, 선생님들 지금 협의회 하시는데 보실래요?" 일순간 아이들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아뇨, 그냥 애들이랑 더 놀고 싶어요." "와아"하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