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兆 쓴 한앤컴퍼니, 롯데카드 품다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의 새 주인으로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와 JKL파트너스가 각각 선정됐다. 롯데그룹이 지주사 전환에 따른 후속 조치로 내놓은 금융계열사를 국내 PEF들이 싹쓸이했다.
롯데그룹과 매각주관사인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3일 한앤컴퍼니와 JKL파트너스를 각각 롯데카드와 롯데손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한앤컴퍼니는 롯데지주 등이 보유하고 있는 롯데카드 지분 98.7% 중 80.0%를 인수하기 위해 1조488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감한 베팅으로 경쟁 후보이던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 하나금융지주를 제쳤다는 평가다. 높은 가격 외에 롯데카드 기존 인력의 고용 승계와 롯데그룹의 이사회 참여 등을 받아들인 점도 선정 배경으로 꼽힌다. 롯데그룹은 롯데카드 2대 주주로 남아 한앤컴퍼니와 협업을 이어간다.

JKL파트너스는 롯데손보 지분 52.5%를 3900억원가량에 인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컴퍼니 깜짝승…'높은 가격·고용 승계' 앞세워 하나·우리 꺾었다

롯데카드 인수전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의 승리로 끝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결과다. 당초 시장에서는 인수 후보 중 유일한 전략적투자자(SI)였던 하나금융지주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국내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과 손잡으면서 MBK-우리은행 컨소시엄이 ‘대세’로 떠올랐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재무적투자자(FI) 단독으로 참여해 승리 가능성이 낮게 여겨졌던 한앤컴퍼니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롯데그룹, 고용보장과 협업 가능성에 점수

1.5兆 쓴 한앤컴퍼니, 롯데카드 품다
롯데그룹이 한앤컴퍼니를 롯데카드 인수자로 낙점한 건 가격, 고용 안정성, 롯데그룹과의 협업 등 중요 평가 요소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다. 당초 유력 인수후보로 꼽혔던 하나금융지주와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은 모두 자체 카드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겹치는 인력이 많은 만큼 장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금융지주사와의 시너지 효과 역시 예상보다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지주는 롯데카드를 인수한 뒤 하나카드와 분리해 경영할 계획이었고, 우리금융지주 역시 소수 지분 투자여서 당장 협업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구조였다. 오히려 리스, 할부금융 등 비카드 영업에서 금융지주 계열사들과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걸림돌이 많았다.

반면 한앤컴퍼니는 고용 보장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수 후 롯데그룹 유통계열사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이해상충 문제가 생길 우려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한앤컴퍼니가 지난해 인수한 중고차거래업체 SK엔카(현 케이카) 직영사업부나 렌터카업체 조이렌터카 등과 자동차 할부금융에서의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평가됐다.

한앤컴퍼니, “국내 금융사 저평가됐다”

한앤컴퍼니는 롯데카드 지분 100%의 가격을 1조8600억원으로 책정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로는 0.85배 수준이다. 한앤컴퍼니는 국내 카드사들의 가치가 카드수수료 규제 등의 여파로 실제보다 저평가됐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카드 사업의 실적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공격적인 베팅의 배경이 됐다.

IB업계 관계자는 “한앤컴퍼니는 국내 금융사들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꾸준히 투자 기회를 노려왔다”며 “신용카드 업황이 개선되면 비은행 비중을 높이려는 금융지주사에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5兆 쓴 한앤컴퍼니, 롯데카드 품다
빅데이터 등 신사업 육성

한앤컴퍼니는 롯데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롯데카드 가치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부터 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는 옴니채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옴니채널이 최종 결제 수단을 가진 롯데카드와 결합할 경우 미래형 유통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카드가 보유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사업 진출 역시 기업 가치를 키우는 주요 요소로 한앤컴퍼니는 보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이를 위해 ‘추가 인수(볼트온)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볼트온은 관련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한앤컴퍼니는 시멘트, 자동차부품, 해운회사 등을 인수할 때마다 볼트온 전략을 활용해왔다.

한앤컴퍼니는 모건스탠리 출신인 한상원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2011년 카메라모듈업체인 코웰이홀딩스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2012년과 2013년에 쌍용양회, 대한시멘트, 한남시멘트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주목받았다. 2015년에는 글로벌 2위 공조업체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를 한국타이어와 함께 3조9000억원에 사들여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밖에 호텔현대, SK해운, SK D&D 등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한앤컴퍼니는 롯데카드 인수전에서 국내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를 꺾으면서 PEF 시장에서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이동훈/김대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