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이 3일 서울 성수동에 첫 매장을 열면서 커피업계 고급화 경쟁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은 최고급 원두, 드립 커피, 하나의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싱글 오리진 등을 내세워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3일 찾아간 국내 첫 블루보틀 매장은 새벽 5시부터 긴 대기행렬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 블루보틀을 찾은 손님 중에는 자칭 커피 애호가라는 50대 남성부터 20대 초반의 대학생, 반차를 내고 온 30대 직장인, 블로거와 인플루언서(SNS 유명인)까지 다양했다. 오전 8시부터 3시간을 기다려 11시30분쯤 커피를 주문했다는 디자이너 김모(26)씨는 "커피를 좋아하는 데다가 평소 브랜드에 관심이 많아 회사에 반차를 내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3일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 매장에서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블루보틀 성수점은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통유리로 구성, 외부에서도 누구나 블루보틀의 로스터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테이블 22여개와 안락한 느낌을 주는 호두나무 의자로 꾸며진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계산대 옆에서는 숙련된 바리스타들이 직접 커피콩을 저울에 달고 갈아서 핸드 드립 방식으로 한 잔씩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카페는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는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머그잔, 에코백 등 블루보틀이 한국 개점을 기념해 준비한 2~3만원대 기획상품(MD)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매장 안내 직원은 "시간당 80~90명씩 입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루보틀 대표 음료인 ‘뉴올리언스’의 가격은 5800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4.35달러(약 5070원), 일본 540엔(약 5630원)보다 비싸다. 싱글 오리진 드립 커피는 6300원으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의 원두 음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메리카노(5000원) 기준으로만 보면 국내 커피전문점 가운데 가격대가 가장 높은 편이다.

◇블루보틀 진출로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 가열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은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부상을 의미한다. 커피 전문점이 대중화되면서 커피 취향도 고급화, 세분화되는 추세다. 스페셜티 커피란 생산지와 품종, 건조 과정 등 까다로운 기준으로 선정한 원두로 만든 커피로,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가 세운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 중 80점 이상을 받은 원두를 뜻한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니지만 커피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도 새로운 맛과 경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편이라 커피업계 입장에서는 뛰어난 ‘테스트 베드’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스페셜티 커피는 아직 시장 규모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작지만, 커피 애호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커피 전문점 시장 규모는 48억달러(약 5조2440억원)으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한국인의 인당 커피 전문점 소비액은 연 92.3달러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유로모니터는 한국 커피 전문점 시장이 2023년까지 56억달러(약 6조167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희은 유로모니터 유통 부문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한국의 커피 시장은 스타벅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이디야커피, 빽다방 등을 중심으로 가성비를 내세운 커피 전문점이 인기를 끌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가 개별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를 수 있는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블루보틀은 한국의 스폐셜티 커피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한국 진출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지난해 국내 매출 1조5000억원을 돌파한 스타벅스는 최근 리저브 매장을 내세워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2016년 첫선을 보인 리저브 매장은 현재 47개로 늘었다. 리저브 바는 숙련된 바리스타가 30여 가지 원두를 전용 추출 기기로 볶아내 제공하는 매장이다. 리저브 원두 음료는 누적 판매량 200만잔을 돌파하며 매년 30%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토종 커피 전문점들도 투썸플레이스도 한남동에 에스프레소 특화 매장 ‘TSP737’을 열고 커피 애호가 공략에 나섰다. 유럽의 카페를 표방한 이곳에서는 16종의 에스프레소를 맛 볼 수 있다. 엔제리너스는 최근 롯데백화점 본점에 프리미엄 스페셜티 매장을 열고 세계 상위 7%의 원두로 만든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한다. 이디야도 최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이디야커피랩에서 ‘원두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작했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커피앳웍스도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국내 1:1 맞춤형 원두 로스팅 서비스인 ‘커스텀 로스팅 서비스’를 동부이촌점에 선보이는 등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동서식품도 지난해 서울 이태원에 스페셜티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맥심 플랜트’에서 원두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희은 연구원은 "다만 스타벅스 리저브, 할리스 스페셜티 커피 등 기존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경쟁업체들이 점점 더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블루보틀이 초반의 폭발적인 관심을 어떻게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