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코리아' 꼭 뽑아야 하나..그것도 수영복 차림 심사하면서

미인대회, 성 상품화 논란 등으로 위축.."폐지해야" 49.4%

2018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88년도 미스코리아 진 김성령 심사위원장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사진=뉴시스

한때 '스타의 등용문'이자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인대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여성의 성(姓)을 상품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맞닥뜨리면서 그 규모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순왕후 선발대회, '시대착오적' 비판으로 취소…미스코리아도 지상파 중계 안 해

서울 종로구는 지난 19일과 20일에 열린 '2019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문화제'의 하나로 '정순왕후 선발대회'를 기획했다 취소했다. 정순왕후는 18세가 되던 1457년에 단종과 사별한 후 81세에 사망할 때까지 홀로 산 인물이다.

63년간 수절(守節)을 지킨 정순왕후의 절개를 기린다는 취지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와서다. 참가 대상자가 미성년자를 포함하는 만 15세~20세 여성이라는 점도 문제가 됐다. 종로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당초 취지가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인대회의 '원조격'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스코리아는 1957년 첫 대회가 열린 후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에는 창경궁과 경복궁에서 대회가 개최되며 국가적 행사로 인정받았고, 1989년 미스코리아 대회의 시청률은 54%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이 대회는 '성 상품화'와 '외모 지상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주관의 영역인 아름다움에 등급을 부여하고 여성의 미(美)에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2016년 대전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을 성 상품화시키는 미인대회를 반대한다"면서 "대전·충남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업무협약을 맺은 대전 중구청은 이를 당장 철회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미스코리아 대회는 폐지되지 않고 계속 열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2002년부터는 지상파에서 중계가 이뤄지지 않고 케이블 채널을 통해 전파를 타고 있다. 2004년에는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지만 2012년부터 다시 부활했다.

2018년 열린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영예의 우승을 차지한 니아 프랭클린(아래)이 우승자 발표 소식에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는 97년 역사상 처음으로 수영복 심사 없이 치러졌다./사진=뉴시스

◇미국, 미인대회 수영복 심사 폐지…해외에서도변화 움직임

미인대회를 둘러싼 변화의 바람이 비단 한국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1921년부터 대회를 개최한 미국의 '미스 아메리카'는 지난해 6월 수영복과 이브닝드레스 심사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회 역사상 9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회 측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미스 아메리카로서 활동과 견해를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레첸 칼슨 조직위원장은 "미스 아메리카는 더 이상 미녀 선발대회가 아니다"라며 "앞으로는 출전자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선 2016년에는 '미스 틴 USA'(Miss Teen USA)에서도 수영복 심사가 사라졌다. 이는 14~19세 여성이 참가하는 미인대회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인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미스틴 USA 측은 2016년 6월에 "페미니즘과 평등성의 가치가 계속 커지고 있는 사회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무대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회는 개인 심사 때 수영복 대신 활동하기 편한 운동복을 입도록 규정을 바꿨다.

◇여론조사 결과 '미인대회 폐지' 49.4%
이런 상황에서 미인대회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CBS 의뢰로 지난 26일 전국 19세 이상 505명을 대상으로 '미인 선발대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었다.

조사 결과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9.4%였고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3.8%로 나타났다.(응답률 5.1%·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 29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압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차범위를 넘는 수준이기에 (폐지 여론이)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춘 인식 변화라는 주장이 나온다. 여성 인권을 중시하는 '미투' 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과 페미니즘의 확산에 따른 영향이라는 것이다.

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성별에 따라 응답의 온도차가 느껴져 눈길을 끌었다. 여성은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8.4%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 23.6%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반면 남성은 '폐지해야 한다'(40.2%)와 '유지해야 한다'(44.2%)는 응답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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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길 인턴기자 psylee100@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