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채로, 통째로"..기이한 먹방, 나만 불편한가요?

박가영 기자 2019. 4.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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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더 많이, 더 자극적으로 먹는 먹방.."위험수위 넘나든다" 지적

[편집자주] 출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잠들기 전 눌러본 SNS에서…. 당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상 속 불편한 이야기들, 프로불편러 박기자가 매주 일요일 전해드립니다. 

산낙지 먹방, 통돼지 먹방 화면 캡처/사진=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통삼겹살 먹을 때마다 아쉬웠어요.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지? 이걸 통이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오늘 준비했습니다. 돼지 100kg짜리 한 마리!"(먹방 유튜버 엠브로 '유튜브 최초 돼지 100kg 한 마리 통 먹방!' 영상 중)

'먹방'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먹방 콘텐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더 특이한' 음식을 '더 많이' 먹는 방송이 유행하면서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경쟁 흐름으로 인해 먹방이 '기이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초대형 문어에 생(生)간 먹방까지…자극 좇는 '푸드 포르노'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먹방은 대개 진행자 1명이 출연, 음식을 먹으며 시청자와 소통한다. 음식과 카메라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먹방'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다른 콘텐츠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편.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치열한 먹방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크리에이터들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음식의 '맛'보다 '자극'에 초점을 맞춘 먹방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한 번에 10인분 이상의 양을 먹는가 하면 생간, 돼지머리 등 생소한 음식을 먹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내놓는다.

최근 한 유튜버는 살아있는 개불을 소재로 한 먹방 콘텐츠를 업로드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유튜버 '쏘영 Ssoyoung'은 이달 초 '개불 리얼사운드 먹방 ASMR' 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에는 쏘영이 살아있는 개불을 힘껏 잡아당겨 죽인 후 먹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개불에서 빨간 액체가 흘러나오자 "빨간 국물이 나온다. 피인가?"라며 손목을 핥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쏘영은 산 낙지, 생간, 돼지머리 등을 통째로 먹는 다소 '엽기적인' 먹방을 수차례 선보였다.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드리겠다는 마음이 앞서 다소 무리한 소재와 과장된 설명으로 구독자 여러분을 불편하게 했다"면서 "쓴소리를 귀담아 듣고 자중하는 의미에서 해당 영상은 내리도록 하겠다"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현재 해당 영상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생고기 먹방/사진=유튜브 검색화면 캡처


이처럼 최근 음식을 손질하지 않은 채 통째로 먹는 방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생고기, 회를 썰지 않고 먹는 것은 물론 100kg 돼지를 통째로 뜯어 먹는 먹방까지 등장했다. 대형문어를 통째로 삶아먹는 유튜버 엠브로의 '초대왕문어 크라켄 40kg 한마리 통 먹방'은 조회수가 188만을 넘어섰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 같은 먹방이 "기괴하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요즘 유행하는 먹방들을 보면 비위 상한다. 무슨 원시시대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먹는 건 맛있어서가 아니라 진짜 어그로(aggro: 관심 끌기)용이다"라고 비판했다.

직장인 이모씨(39)는 "통돼지 먹방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완전 무시된 날것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야만적이고 인간답지 못한 행동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며 먹방엔 '푸드 포르노'(food porn)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푸드 포르노는 1984년 영국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의 '여성의 욕망'이란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용어다. 음식이나 이를 먹는 장면을 보며 식욕의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뜻이다. 포르노가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듯, 먹방이 인간의 식욕과 정신을 자극하고 있다.

직장인 권은정씨(27)는 "많이 먹는 방송, 매운 음식 챌린지에 생고기 먹방까지. 이제 다음엔 뭘 먹을지 감도 안 잡힌다. 먹방이 기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먹밥 빨리 먹다 목숨 잃은 日 먹방 유튜버…"부정적으로 변질되기 전에 막아야"
'많이' 먹는 방송은 먹방계의 흥행 보증수표다. 대식가로 유명한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의 경우 유튜버 구독자 수가 320여만명에 이른다. 먹방 신인 '쯔양'의 경우 초밥 240개, 소 곱창 23인분 등 먹방으로 유명세를 타 5개월 만에 구독자 수 70만명을 돌파했다.

'빨리' 먹방에서 빠지면 서운한 흥행 요소. 유튜브엔 '햄버거 10개 빨리 먹기' '10초 안에 짜장면 먹기' 등 빨리 먹기 콘텐츠가 넘친다.

초밥 240개 먹기에 성공한 먹방 유튜버 '쯔양'/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많이, 빨리 먹는 방송의 높은 인기만큼 먹방 제작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한 먹방은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일본에선 주먹밥 한입에 먹기에 도전하던 유튜버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8일 한 여성 유튜버는 '단숨에 먹기'라는 제목으로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찰밥 대자 주먹밥을 먹다가 질식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이 유튜버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대학생 서모씨(23)는 "일본 유튜버 사망 사고는 남일이 아니다. 요즘 유튜버들 별거 다 먹는다.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음식도 너무 많이 먹는다. 뭐든 적당히 해야한다. 돋보이려고 하다가 진짜 큰일난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먹방을 '불매'하는 시청자도 늘었다. 과도한 콘텐츠를 아예 시청하지 않는 것이다. 누리꾼 B씨는 "먹방이 비정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많이 먹거나 매운 걸 먹는 것을 보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너무 이해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먹방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적절한 수위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먹방'의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쓴 'mukbang'은 해외에서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직장인 고광오씨(32)는 "먹방은 한국 고유의 콘텐츠다. 부정적으로 변질되기 전에 규제해야 한다. 규제가 어렵다면 제작자들 스스로 경쟁심보다 경각심을 갖고 먹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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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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