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지윤, 긴잠 깨어나다.."춤으로 표현하는 위로"

이재훈 2019. 4. 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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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BAKI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현대무용 안무가 정지윤(48)은 서른 살이 된 2000년 이후 2년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예술전문사(석사) 1기로 입학한 그녀는 한 학기를 다니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공연 하루 전날이었다.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척추에 무리가 왔다. 한 학기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복학했지만 끊긴 리듬감은 쉽게 되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재학생들 중 연장자라는 이유로 안무를 맡게 됐고 '더 프라미스(The Promise)'를 선보였다. 호평을 들었다. 이후 한예종 출신들로 구성된 현대무용단 LDP의 객원 안무가 제의를 받았다. 2002년 LDP 제2회 정기공연을 통해 '더 데이(The Day)'를 선보이게 된 계기다. 그녀의 감각적인 안무는 단원들을 매료했고, LDP 2대 대표로 추대됐다.

LDP는 마니아층을 보유한 뜨거운 현대무용단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정지윤은 2002~2004년 대표를 지내며 이 단체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어느 예술단체나 그렇듯, 무용단도 초기에는 운영이 어렵다. 기획뿐 아니라 의전, 문서작업, 무용수 대타 등 온갖 것들을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서 작업을 하느라 PC방에서 7시간 꼼짝 않고 있다가 바지가 의자에 붙기도 했다.

댄서와 안무가뿐 아니라 기획자, 제작자, 강사 등 무용계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정지윤은 "LDP가 제게 자양분이 됐다"고 긍정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 토대를 쌓지 않았으면 지금의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죠"라며 웃었다.

JDT 정지윤댄스시어터 대표인 정지윤은 객원안무가 자격으로 15년 만에 LDP와 다시 작업한다. 5~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LDP 제19회 정기공연에서 신작 '사이(間)'를 선보인다.

LDP는 무용단이 창단한 2001년부터 꾸준히 소속 또는 객원 안무가의 작품을 500석 이상 대극장 규모로 공연해 왔다. 신창호, 차진엽, 김영진, 김동규, 이용우, 김판선, 김성훈, 이인수, 김재덕, 김보라 등 현대무용 스타들이 거쳐간 무대다.

'사이' 연습 ⓒBAKI

이번에는 정지윤의 '사이'와 함께 윤나라의 '낙 낙(Knock Knock)'이 오른다. 정지윤의 이번 신작은 '과정'에 집중한다. 무엇인가를 완성시켜가려는 과정들 속에 켜켜이 쌓여가는 '불완정성'을 톺아본다.

이사만 60번 넘게 다니는 등 불안정한 삶을 보낸 정지윤이 느낀 고립감 등이 스며들어 있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겪은 변곡점들도 녹아 들어간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대해 충분히 잘 몰라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LDP 대표를 맡으면서 버거운 상황들이 찾아왔던 것도 그런 것 같고요."

하지만 '사이'라는 순간들의 합이 결국 삶이라는 것을 깨달은 정지윤은 이번 작품이 일종의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당신만 힘든 것이 아니다', '괜찮다'는 소리를 몸짓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정지윤은 몸짓으로 풀리지 않을 때는 움직임을 멈추고 상상을 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이런 상상을 통해 어릴 때와 대학 졸업 작업 때 몸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순간의 감흥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것이 그녀의 몸짓과 안무의 특징이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마치 들판을 휘젓는 야생마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5년 전 찾아온 긴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지금 다시 '잠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2000년대 중반 한국 현대무용의 산실로 통한 LIG아트홀의 기획팀장을 지내고, 2010년대 초까지 정아트비전 대표로 영아티스트클럽을 기획하고 제작한 그녀는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었다.

"제가 해왔던 프로젝트들이 정리되면서 긴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졌죠."

해결 방안은 그녀가 춤을 추는 방식과 같다. "주어진 것에 충실하며 자신의 내재된 힘을 믿는 것"이다. 이번 신작 '사이'가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는 이유다. "모든 문이 닫힌 것처럼 보여도 예기치 않은 순간 한쪽에서 문이 열리더라고요. 이 사이 속 불안정함에 휘둘리기보다 유연해지고 싶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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