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신장애인 혼자는 은행거래 불가” 법정 선 우체국

허진무 기자

한정후견인 동행 규정에

장애인 18명 차별중지 소송

우체국 “금감원 기준” 주장

정작 금감원은 “기준 없어”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법원에서 ‘피한정후견인’ 결정을 받은 정신장애인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려면 한정후견인과 동행해야 할까.

장애인 18명이 우체국은행의 규정을 바꿔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차별행위중지 소송을 냈다. 우정사업본부는 금융감독원의 기준을 따른 규정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인 결과 그런 기준은 없었다.

이 소송의 피고인 우정사업본부(대한민국)는 “한정후견인의 동행을 요구하는 업무처리 절차는 금융감독원의 ‘성년후견인의 업무 가능 범위 명확화’ 기준에 따라 시중은행과 동일하게 규정된 것이다. 우체국은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업무의 경우 함께 금융기관에 방문해 전표에 이체·출금 동의 여부를 기재하고 서명·날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45민사부에 냈다.

다음달 재판부는 우정사업본부 측에 금감원의 기준 관련 문서를 달라고 의견 제출 요청을 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아무 의견도 제출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의 법률지원을 맡은 원곡법률사무소는 재판부에 사실조회신청서를 냈다.

재판부가 지난 14일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사실조회회신서에 따르면 우체국은행이 근거를 댄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장애인 금융 이용 간담회를 개최해 ‘금융업무 가능범위 명확화’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관련한 별도 기준은 없다”며 “은행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 은행법 및 관련 법규에서 규정하는 바는 없으며 해당 은행에 문의할 사항”이라고 했다.

피한정후견인이란 질병·장애·노령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가정법원이 심판한 사람을 말한다.

지난해 1월 대전가정법원 논산지원은 정신장애인의 은행 거래 때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거래금액 기준을 인출일 이전부터 30일을 합산해 1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으로 결정했다.

300만원 이상이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체국은행은 피한정후견인 결정을 받은 정신장애인에 대해 1원이라도 무조건 창구를 통해 거래하도록 하고 있다. 현금카드나 인터넷뱅킹도 이용할 수 없다. 인출일 이전부터 30일 합산한 금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한정후견인이 창구까지 동행해야 한다. 한정후견인이 서면동의서를 제출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한정후견인의 동행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법원 결정에는 대리 가능 규정이 없어 당초 피한정후견인은 혼자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우정사업본부가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동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은행거래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차별이라고 했다. 이들은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데 응급치료를 할 때도 의료비를 즉시 낼 수 없어 요양원 직원들이 대신 결제해주기도 했다. 외출을 하거나 간식을 사먹을 소액이 필요할 때도 우체국은행 창구까지 찾아가 돈을 인출했다.

장애인들은 인출일 이전부터 30일 합산한 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 우체국은행 창구 이외 현금자동지급기, 현금자동입출금기, 컴퓨터, 전화 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30일 합산 금액이 1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일 경우 한정후견인에게 받은 동의서가 있으면 혼자 은행거래를 할 수 있게 우체국은행 규정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Today`s HOT
폭풍우가 휩쓸고 간 휴스턴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조지아, 외국대리인법 반대 시위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광주, 울산 상대로 2-1 승리 미국 해군사관학교 팀워크! 헌던 탑 오르기 미국 UC 어바인 캠퍼스 반전 시위 이라크 밀 수확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