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만 있는 게 아닙니다..남성 피임법 속속 개발 중

서정원 2019. 3. 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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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통한 정자 이동 막아
원할 때 간단히 복원 가능

앞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피임약을 먹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간편한 피임법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르몬을 주사하지 않고 정자의 이동 통로를 막아 임신을 막는 기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중국 남창대학교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에이씨에스 나노(ACS Nano)'에 수컷 쥐를 대상으로 이 같은 피임법을 실험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는 남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피임법이 제한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콘돔은 임신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에 따르면 콘돔을 착용해도 피임에 실패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13%에 달한다. 또다른 선택지는 정관수술이다. 하지만 정관수술은 추후에 생식능력의 복원이 힘들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피임 가이드에 따르면 정관수술 후 3년에서 8년 사이 복원 성공률이 55% 이하다. 최악의 경우 3년만 지나도 생식 능력을 회복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절반 가까이 되는 셈이다. 또 복원을 하더라도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져 임신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도 포함됐다.

연구자들은 피임 가능한 기간이 콘돔보다는 길고 정관수술보다는 짧으면서도 원할 때면 언제든지 생식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연구진은 층층이 나눠진 '레이어드 칵테일(layered cocktail)'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평상시엔 밀도와 당분에 따라 층이 나눠져 있지만 열을 가하면 녹아서 하나로 섞이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진이 만든 피임용 칵테일은 3종의 물질로 구성됐다. 정액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막는 하이드로젤과, 추후 복원을 위해 하이드로젤을 녹이고 정액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에틸렌다이아민테트라아세트산(EDTA)이라는 물질이 첨가됐다. 그리고 이 둘 물질이 쉽게 섞일 수 있도록 근적외선을 받으면 열이 발생하는 금 나노분자를 각 물질 위에 쌓아올려 총 4개의 층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든 혼합 물질을 쥐의 정관에 주사한 결과 연구진은 피임 효과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관측했다. 주사 비율을 통해 피임 기간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대조를 위해 절반의 분량을 주사한 쥐들에게서는 한 달이 지나 임신 증상이 관측됐다. 복원 가능성도 입증됐다. 근적외선을 쪼여 생식능력을 회복시킨 쥐들은 채 한 달이 안 돼 새끼를 뱄다.

비슷한 방식을 통해 원숭이 실험까지 성공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비영리의료연구재단인 파르스무스재단에서 개발한 피임 물질 '바살젤'은 정관에 주입되면 반투과성 장벽을 형성한다. 이 벽은 정자의 이동을 막고 정액만 배출되도록 해 피임을 유도한다. 2016년 토끼에 대한 임상실험이 성공한 후 1년 만에 영장류에까지 효능이 입증됐다. 2017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의학저널 기초·임상남성병리학(Basic and Clinical Andrology)에 수컷 원숭이들에게 바살젤을 주사하고 암컷과 교미시킨 후 임신 여부를 관찰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수컷 원숭이 16마리에게 젤을 주사한 다음, 임신이 가능한 암컷 원숭이들과 최소 1주기의 번식기 동안 같이 살도록 했다. 그리고 그 중 7마리는 2년 동안 암컷과 동거시켰다. 이 기간 중 임신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젤 장벽을 녹이는 주사를 놓으면 다시 임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피임법의 개발이 피임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기훈 고려대 산부인과 교수는 "피임을 어느 쪽이 하는지는 기본적으로 상호 간에 결정할 사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두석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도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피임 방법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 중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피임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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