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하청업체 입 막는 '합의서'

석민수 입력 2019. 3. 22. 21:45 수정 2019. 3. 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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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기업이 이렇게 '갑질'을 하고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바로 '합의서' 때문입니다.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야 돈을 지급해준다는 건데,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서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석민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진중공업이 한 하청업체와 대금을 정산하면서 쓴 서류입니다.

민·형사상 제소 등 일체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 일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지만 하청업체는 합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합의서를 작성한 하청업체가 한두 곳이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하청업체 사장/음성변조 : "그 이제 (합의서에) 도장 안 찍으면 못 준다. 이런 식으로 해서 반 협박적으로 해가지고…."]

한 번 작성된 합의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나 민사소송에 나설 때 두고두고 발목을 잡습니다.

이미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정위의 제재를 이끌어내거나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박건호/대우조선해양 하도급 피해자 : "민사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가면 (보상받기까지) 한 10년은 걸려요. 그 사이 우리 생활은 너무나도 피폐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고, 어려움이 계속되는데…."]

문제는 이런 잘못된 정산 방식이 사실상 관행이었다는 점입니다.

공정위 조사 결과 지난 4년 동안 대우조선해양 한 군데서만 계약서 없이 작업을 한 뒤 합의서를 작성한 경우가 천8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김남주/변호사 : "급여 줄 돈이 없으니까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서를 쓰고. 계약서를 쓰면서 정산 합의서를 작성하는 건데요. 이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거부할 자율성이 없죠."]

이 같은 비자발적인 합의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물론 그 직원들까지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석민수입니다.

석민수 기자 (m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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