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 '야동' 선물한 게 미담? 정준영보다 낯뜨거운 예능
[오마이뉴스 이유정 기자]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시작된 사태로 가수 승리와 정준영을 포함한 남성 연예인들의 추악한 강간 문화가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이들은 뒤에서 성접대를 알선하거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하고 유포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월 '버닝썬 폭행 사건'을 발단으로 클럽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 유통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경찰과의 유착관계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클럽 '버닝썬'의 사내이사라고 밝힌 승리에게 이목이 쏠렸다. 승리는 당초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며 연관성을 부인했으나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2015년 중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성접대를 지시한 카카오톡 대화가 공개되자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사태의 파장이 점차 커지면서 승리와 정준영이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발언들도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 영상들은 포털사이트 동영상 재생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역주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해당 내용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될 수 있었던 맥락이다. 상당수 불법 촬영물이 '국내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에서,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를 남성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 정도로 취급하며 웃음거리로 소비해 왔다. 그러는 동안 '불법 촬영'이라는 심각한 성범죄와 여성의 도구화, 성적대상화 문제는 손쉽게 지워졌다.
예능 프로그램 속 승리와 정준영
▲ JTBC <아는 형님>에서 야동에 대해 애기하는 승리의 모습. |
ⓒ JTBC |
지난해 승리와 함께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출연한 아이콘은 빅뱅의 전 숙소로 이사했을 당시 남아있던 승리의 흔적을 묻는 퀴즈를 냈고, 그 답은 '야동이 담긴 외장하드'였다. 아이콘 멤버들은 "승리의 이상형을 다 알 수 있었다"며 "100개의 폴더가 배우별로 분류돼 있었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이수근은 "어쨌든 감사했을 거 아니야"라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포장했고, 아이콘은 "뜻밖의 선물이었다"고 수긍했다. 그렇게 '야동이 담긴 외장하드'는 순식간에 선배가 후배에게 물려준 '선물'이 되었다.
승리는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넷플릭스 시트콤 < YG전자 >에서도 계열사 소속 모델에게 '몸캠'(나체를 찍는 동영상)을 강요하는 역할을 연기했다. 모델이 이를 거부하자 "이 X끼가 배부른 소리한다", "높으신 분이다"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공개 당시에도 마약, 성 접대 등의 소재를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던 < YG전자 >는 실제 범죄에 연루된 이번 사건으로 콘텐츠 게재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 넷플릭스 코리아 측은 별다른 입장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16년 정준영과 지코가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에서는 이른바 '황금폰'이라 불리는 정준영 핸드폰에 대한 얘기가 등장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예인들의 연락처가 다수 저장돼 있다던 '황금폰'에 대해 지코는 "포켓몬 도감처럼 많은 분들이 있다"고 밝혔고, 정준영은 지코 또한 "자신의 집에 오면 폰을 정독한다"고 덧붙였다.
▲ MBC <라디오스타> 방송 중 정준영과 지코의 모습. |
ⓒ MBC |
'웃음'과 '범죄' 사이를 오가는 한국 예능
▲ KBS <안녕하세요> 중 인피니트 성종의 모습. |
ⓒ KBS |
다른 MC들이 "어딜 가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몰라요 몰라"라고 웃으면서 대답을 피했다. 신동엽은 "이야, 나중에 사석에서 한 번 이런저런 얘기 좀 나눠보자"며 은근히 그를 추켜세우기까지 한다. 해당 발언은 여성 출연자에게도 무례했을 뿐더러 술이나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만연한 현실에서 결코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그러나 발언은 편집되지 않았고 마치 가벼운 농담처럼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렇게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조명 받고 있다. 예능 제작진은 웃음을 빌미로 이들에게 판을 깔아 주었고 남성 연예인들은 부적절한 발언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동료 남성들의 동조하고 묵인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졌다.
선배가 후배에게 '야동'을 물려주고, 친구들과 '황금폰'을 돌려보며 예능에서 이를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는 풍경이 바로 지금의 사태의 원인이 아닐까. 약물 강간, 불법촬영, 불법유포로 이어지는 남성들의 은근하고 끈끈한 연대는 강력한 '강간 문화'가 되었고, 이 문화가 확산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한 모두가 공범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송 윤리보다 시청률에 급급했던 제작진과 이에 동조한 출연진, 그리고 무심결에 웃고 떠들었던 과거의 시청자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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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콘텐츠 리뷰 미디어 <치키>(http://cheeky.co.kr/2865)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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