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유총 3000명 단톡방에 '아이'와 '교육'은 없었다

송진식·이혜인 기자 입력 2019. 3. 12. 06:02 수정 2019. 3. 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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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회원 대화방 ‘3000톡’ 전문 입수
ㆍ법인 취소에 아랑곳 않고 강경론
ㆍ투쟁 주도 이덕선 “이사장 사퇴”

시민단체인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5일 한유총을 검찰 고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어린이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민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한유총의 개학연기 결정이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집단행동이라는 비난 여론이 컸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지난 4일 집단 개학연기에 나섰다가 하루도 안돼 철회한 이유는 저조한 참여로 인한 ‘동력 상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유총은 당시 “학부모와 아이의 불안감 가중”을 철회 이유로 든 바 있다.

한유총 내부에서는 집단 개학연기를 ‘성공한 투쟁’으로 평가하거나, 법인 취소 여부와 관계없이 강성 투쟁을 이어갈 분위기도 있어 제2의 개학연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11일 단독 입수한 한유총의 단체 대화방인 ‘3000톡’의 대화 내용을 통해 확인된다. 한유총이 개학연기를 철회한 이튿날인 5일 한 임원은 3000톡에 글을 올려 “(이덕선) 이사장이 혼자 싸웠더라면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며 “정부의 특별감사 협박, 행정조치, 형사처벌 등의 압력에 마지막으로 남은 회원들마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가슴 아픈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화 내용을 보면, 연기 철회 배경은 결국 내부 참여율 저조 문제였다. 실제 철회 선언 직후 3000톡에는 외부에서 해석하는 ‘백기 투항’의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한유총 회원 대부분은 “이사장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기며 지도부를 독려했다. 한유총이 지난달 24일 ‘유아교육 사망선고’ 집회를 시작으로 연기 투쟁에 나서고 이를 철회하기까지 3000톡에는 수많은 회원들의 대화가 오갔지만 그 어디에도 학부모의 불편과 아이들의 교육을 염려하는 말은 없었다.

한유총 회원들은 개학연기를 “한유총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 “굴하지 말고 더 뭉쳐야 한다” 등으로 평가했다. 한 회원은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로 모두 이동해 박힌 돌을 빼내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3000톡은 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산 지역 유치원에 대한 조사에 나선 이후로 급속히 회원들이 탈퇴하면서 현재 회원 수백명만 남아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11일 “개학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을 사임하되, 업무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오는 26일까지 이사장직을 유지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단톡방엔 “문통이 북한 다녀오더니 완전히 탁아소 정책 발상” 색깔론으로 도배

“주사파 언어, 이면 뜻 파악해야” “3법, 사유재산 정부 기부” 등 여론몰이까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회원들의 단체 대화방인 ‘3000톡’에서는 현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을 북한식·사회주의식이라고 매도하는 색깔론은 물론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정부의 사립유치원 개혁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덧씌워 여론몰이를 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였다.

많은 회원들은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확충 정책이 북한식·사회주의식이라고 공격하며 ‘탁아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문통(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다녀오더니 완전 북한식 탁아소 방법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발상” “유은혜 장관의 사립유치원 탄압의 내막은 ‘국가주도식의 탁아소를 만들겠다’는 전략” “모든 유치원이 국공립이 되면 그야말로 공산주의식 탁아소로 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들이 이어졌다.

지난달 한 회원은 “주사파들의 언어전술은 반드시 이면에 담긴 뜻을 파악해야 한다”며 “정부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정책기조에 북한을 추종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전원회의=북한의 전문용어, 공정경제 회복=계급혁명으로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재산 몰수해 사회주의 혁명 이룩. 강력한 적폐청산=우파 인사를 반동으로 몰아 숙청 감행”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으로 ‘박용진3법’이라고도 불림)에 대해서는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3법 발의되면 합법적인 죄인이 된다” “교육부의 속셈은 박3법으로 대형유치원 집어먹고(박3법으로 설립자 감옥 보냄), 중소형은 시행령으로 폐원” “3법은 사유재산 정부 기부” 등이라는 주장들이 대거 올라왔다.

‘유치원 3법’의 정확한 내용을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지는 회원들도 있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법 통과되면 다 죽으니 휴원 아닌 폐원 결의하자”는 답들뿐이었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 한유총에 집중된 ‘부패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 회원은 ‘국공립유치원 교사 인건비 공개해주세요, 국공립은 왜 원아모집 때 장애아·저소득층 1순위 선발 안 해요?’ 언론기사마다 달아야 하는 댓글 예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국공립유치원들의 문제점도 부각시켜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송진식·이혜인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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