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화가 백현진 "내 그림은 붓으로 부르는 노동요"

이은주 2019. 3.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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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
서울 PKM갤러리서 개인전 열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붓질을 할 때 마음이 맑아진다“고 말하는 백현진은 ’요즘엔 화면을 덜 채우는 것, 패턴에서 계속 벗어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패턴 같은 패턴 013’(2018).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리듬이 깃든 작품들이다. [사진 PKM갤러리]
뮤지션, 배우, 그래픽 디자이너, 영화감독, 화가, 행위예술가….

이 사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활동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음악가인가 했더니,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감독인가 했더니 영화 ‘북촌방향’ ‘경주’에서 배우로 열연했다. 영화로도 모자라 최근엔 TV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붓을 들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인디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 백현진(47) 얘기다.

빙고(2018~2019). [사진 PKM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세상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노랫말을 중얼거리던 백현진이 아니었다. 마치 ‘수행하듯이’ 그려온 신작 페인팅 65점을 펼쳐놓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단조롭게 ‘노동요’를 읊조리는 작가가 그곳에 있었다. 전시 제목은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 듯한 낱말들이 조합된 제목처럼, 이미지와 직관, 그리고 리듬의 힘으로 완성한 작품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백현진 작가
“글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 머리에서 영상이 먼저 그려져요. 언젠가부터 강북 골목길에 무심히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가 눈에 띄었죠. 흙먼지가 부는 공터, 아지랑이, 물결 등의 내 머릿속 이미지가 모여 제목이 됐습니다.” 그의 설명이다. 이어 “적막함을 유지하며 일하길 좋아한다”는 그는 “그런 점에서 저의 노동요는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게 아니라 적막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페인팅은 그렇게 ‘적막한 아침’에 완성한 작품들이다. “청년 때 밝은 것이 싫었다”는 그는 “지금은 아침형 인간이 됐다. 여기 작품들은 오전 7~8시부터 정오 전에 작업한 것”이라며 웃었다.

‘소리’( 2018). [사진 PKM갤러리]
정사각형(93X93㎝)의 리넨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들의 제목도 별나다. ‘잘못된 제목’이라는 제목부터 ‘간신히’‘빙고’‘지워진 것’‘쓸쓸한 정전기’‘화곡시장 정물’ 등은 그가 중얼거리는 노래 제목 같다. 각 캔버스는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헤쳐 모여’가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아예 12점이 모여 한 점을 이룬 작품도 있다. 조금씩 다른 패턴을 반복적으로 그린 ‘패턴 같은 패턴’ 연작이다. “패턴 같으면서도, 패턴에서 계속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는 그는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백현진은 여전히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됐고, 지난해 말엔 폴란드 바르샤바에 초청돼 음악 공연을 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실험과 놀이는 계속 진화 중이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로 젊은 친구들이에요. 20대의 저를 닮은 청년, 분노에 가득 차 있고 예술에 자기를 던져보려고 하는 어떤 청년이 제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하죠. 제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에요.” 전시는 31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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