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쓰레기가 아닙니다. 유해 폐기물입니다.
하수구 구멍, 빗물받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여름철 폭우라도 쏟아지면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이 담배꽁초가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유해 폐기물이란 사실을, 그리고 가장 많이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길거리 담배꽁초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문진국(자유한국당) 의원 주최, 에코맘코리아 등의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다뤄진 내용과 더불어 담배의 환경 문제를 살펴본다.
연간 4조 개가 버려진다
화판에 촘촘히 담배꽁초로 채운 다음 필터 쪽은 고운 색깔로 물들이고, 반대쪽 타들어 간 쪽은 삐죽삐죽 나오도록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한 씨는 “연기와 함께 쾌락을 주지만 단 5분 만에 구겨지고 짓밟히는 담배꽁초의 ‘인스턴트 운명’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간 6조 개비의 담배가 생산돼 이 중 4조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지는 셈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34억7000만 갑, 약 700억 개비의 담배가 판매됐다.
3분의 2가 버려진다고 보면 국내에는 지난해 460억 개 이상의 담배꽁초가, 서울시에서만 연간 87억 개의 담배꽁초가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해양구조단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전국 32곳의 해변과 해저에서 수거한 쓰레기 중 21%를 담배꽁초가 차지했다.
플라스틱 봉지나 플라스틱병보다 담배꽁초가 훨씬 심각한 문제인 셈이다.
꽁초 하나만 물속에 들어가도
하천과 바다로 들어간 담배꽁초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호수와 해양 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다.
담배 필터는 흰 솜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져 있고, 가느다란 플라스틱 섬유를 포함하고 있다.
필터 하나에 1만2000개의 가는 섬유가 들어있다.
빨라야 18개월, 길면 분해되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담배 필터가 타르 등 담배 연기 속의 해로운 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우고 버려진 담배 필터에는 당연히 유해물질이 들어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담배 내 7000가지 화학물질이 필터를 통해 환경에 유출되는데, 그중 50가지는 발암물질”이라고 지적했다.
버려진 필터 하나에는 5~7㎎의 니코틴(전체 담배의 약 25%)이 들어있다.
담배에는 타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하기도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실험에서 물 1L에 담배꽁초 하나를 96시간 담가 유해물질이 녹아 나오도록 한 다음, 그 물속에 민물고기 또는 바닷물고기를 넣은 결과 반 이상이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담배꽁초가 지하수와 하천, 바다에 들어가면 담수·해양생물에 악영향을 준다.
담배꽁초는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유해 폐기물인 셈이다.
산업폐기물처럼 별도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해도 길거리에 함부로 내버려도 되는 쓰레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제조업체가 청소비 물어야"
폐기물 부담금은 1개비당 1.225원꼴이다.
생산자는 폐기물 부담금 납부로 담배꽁초 폐기물 처리 책임이 면제된다.
실제 담배꽁초 폐기물을 관리하는 것은 지자체이지만, 폐기물 부담금은 환경개선 특별회계로 편입돼 환경부 예산으로 사용된다.
홍수열 소장은 “담배꽁초 관리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생산자책임 재활용(EPR)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불법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신고포상금 제도, 즉 이른바 ‘꽁파라치’ 제도라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꽁파라치’가 있었던 2001년 전북 전주시의 장 모 씨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차량 운전자 2000여명을 촬영, 한 해 동안 860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포상금 연간 한도를 10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꽁파라치’는 사라졌다.
담배꽁초가 버려지는 양에 비해 무단 투기에 대한 지자체 단속은 미미하다.
서울시의 단속 건수를 보면 2017년 7만2453건에 29억6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고, 지난해에는 7만2190건에 29억1600만원을 부과했다.
선진국에서는 소각·매립에 그치지 않고 담배꽁초를 퇴비화하거나 재활용하기 위한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편,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담배업계에 담배 필터에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청소 비용 일부를 부담하도록 요구했다.
벨기에 지방정부도 지난해 11월 담배꽁초 청소 비용을 담배 제조업체가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독일 정부도 담배업체에 담배 쓰레기 청소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려는 EU 집행위원회의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간접흡연으로 89만 명 사망
직접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옆 사람이 피는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 즉 담배 연기로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은 건강에 피해를 준다.
야외에서도 흡연자에서 2.6m 떨어진 곳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70%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담배 연기에는 발암물질이 들어있고, 미세먼지 역시도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700만 명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한다.
여기에는 간접흡연 사망자 89만 명이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만 간접흡연으로 연간 7000명 이상이 폐암으로 숨진다.
간접흡연은 당뇨병, 우울증이나 치매 위험도 높인다.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된 비흡연자는 심장병 사망 위험이 2배,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은 50% 증가한다.
실내에서 아빠가 담배를 1갑 피우면 태아는 1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다.
흡연하는 엄마를 둔 아이의 체내 니코틴 농도는 10배나 되고, 아기 소변에서도 니코틴 성분이 대량 검출된다.
아이들은 기관지염, 천식 등 질병을 앓게 된다.
간접흡연에 노출된 어린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등의 증상이 심해지고, 철자법·수학계산 등의 학습 능력이 저하된다.
어릴 적에 간접흡연에 노출이 되면 동맥이 손상되고, 성장 후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16년 호주 멜버른 대학은 1389명을 5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어린 시절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40대 중반에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나타날 위험이 2.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3차 흡연도, 층간 흡연도 심각
이런 상황은 직접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과 구별해 ‘3차 흡연’이라고 한다.
특히, 임신한 여성이 집·자동차·호텔 방 등 흡연이 있었던 공간에서 3차 흡연에 노출되면 태아의 폐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4년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동물 실험 결과, 제3 흡연 노출이 간과 폐에 상당한 손상을 입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빠가 베란다와 아파트 통로 등 실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에도 아이의 모발 속 니코틴 농도는 비흡연 가정보다 2배 수준으로 조사됐다.
아파트 통로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다른 집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도는 물론 화장실에서도 환풍구를 통해 아래, 윗집으로 담배 냄새가 내려가거나 올라간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1월에서 2014년 10월 사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공동주택 간접흡연 피해 신고가 1025건이나 됐다.
지난해 2월부터는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돼 층간 흡연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피해자가 아파트 관리 주체(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층간 흡연을 신고하면, 관리 주체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가해자'에게 간접흡연이나 금연 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3월 아파트 단지에서 ‘간접흡연 피해방지 위원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한 ‘공동주택 간접흡연 피해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법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세대 안까지 들어가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가해자가 파악됐더라도 강제 조항이 없어 실효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배는 비윤리적 생산품"
다른 차량 운전자가 운행 중 창밖으로 버린 담배꽁초 불똥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적재함에 실려 있던 주방용품이 모두 불에 타면서 트럭 운전자는 1500만원 상당의 피해를 보았지만, 가해자는 잡히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전체 화재 5921건의 22.2%인 1300건이 담뱃불 때문에 일어났다. ‘부주의’ 58.7% 다음으로 많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는 매년 전국에서 6000건 이상 발생한다.
WHO 담배규제기본협약 사무국(FCTC)은 보고서를 통해 “매년 생산되는 6조 개비의 담배가 곡물을 대량 재배하는 것보다 지구에 더 나쁜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흡연의 지구 환경 발자국 평가(An assessment of tobacco’s global environmental footprint)’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25개국에서 3240만t의 담뱃잎을 수확해서 648만t의 말린 잎을 만들고, 약 500개의 공장에서 6조 개비의 담배를 생산한다.
짐바브웨에서는 1㏊ 농지에서 감자 19t을 생산할 수 있지만, 담배는 고작 1t만 생산할 수 있다.
WHO가 담배를 ‘비윤리적 생산품’이라고 못 박는 것도 단지 쓰레기가 아니라 유해물질, 유해 폐기물이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 볼모' 벼랑끝 전술..한유총, 이번엔 안 통한다
- 호랑이 육포 먹던 권옥연 눈썰미가 박수근 살렸다
- "北이슈, 악재 수습할 한방" 민주당 지지율 방어막 위기
- '흙수저vs금수저'..총리 출신 황교안·이회창의 다른 길
- "美와 대화해야 하나..김정은 생각 달라지는 느낌"
- JP찾아가 설득..年 1000억 전지훈련 낙원 일군 두 남자
- "벼슬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름난 사람만 알아줘"
- 싱글족 72가구 함께 산다..90년생 건축가의 공유주택
- 트럼프 방식으론 시진핑 못 이기는 이유 3가지
- 27시간만에 나타난 김정은, 굳은 얼굴로 먼산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