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이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다는 소식 때문에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100주년을 맞은 올해 3.1절을 앞두고 개봉한다. 감독은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 여성들과 연대하는 유관순의 모습, 열일곱 소녀였던 유관순의 감정과 심리 변화를 보여 줌으로써 교과서 속 위인으로만 남은 주인공에게 인간미를 입혔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상대는 늘 교과서 맨 앞 장에 등장하는 유관순 열사가 아닌가. 아무리 칸영화제와 봉준호 감독의 ‘최애 배우’ 고아성이라고 해도 말이다.
8호실 벽에 기댄 채 동료들과 함께 결의에 찬 눈빛을 쏘아 보내는 흑백 포스터 속의 고아성. 고문을 받은 유관순이 거의 먹지 못하는 신을 촬영할 당시엔 실제 10일간 금식했을 정도로, 극중엔 촬영 내내 고아성의 분투가 보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의 일대기가 아닌, 1919년 3.1 만세운동 1년 후의 형무소 생활을 다룬다.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그간 크게 조명되지 않았던 서대문여자형무소안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처음으로 조명한 영화이기도 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 이후, 고향 충청남도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은 부모를 잃은 채 오빠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갇힌다. 특유의 뚝심과 패기로 감옥 속에서도 열일곱 나이에 고문과 핍박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관순의 곁에는 8호실 동료들이 있었다.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일제의 경찰서 문 바로 앞에서 만세를 부른 기생 ‘김향화’ 역을 맡은 김새벽, 개성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역을 맡은 김예은, 다방 종업원 ‘이옥이’ 역을 맡은 정하담 등 연극과 독립영화계의 뮤즈들이 다수 출연한다. 특히 조선인이지만 서대문형무소 보안과 소속 헌병 보조원으로 일하던 니시다(정춘영) 역의 류경수는 일본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다가 냉철함 속에 흔들리는 니시다의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
고문으로 인한 방광과 자궁 파열로 출소 이틀 전 사망한 독립 열사 유관순. 관객은 속옷이나 양말도 없이 사계절을 한 벌 옷으로 버티고, 30명이 세 평 공간에서 지내며 발이 붓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동그랗게 걸어야만 했던 100년 전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된다. 특히 1919년 3.1운동 1년 후인 1920년 3월 1일에 1주년을 기념한 만세 운동이 ‘여옥사 8호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된다. 영화 ‘10억’(2009)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조민호 감독이 2006년 5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덕혜옹주’ 제작진과 만난 영화로, 감독이 7년 전에 우연히 방문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걸린 거대한 유관순 사진 속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보고 큰 울림을 느껴 만들었다.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전면적으로 다룬 적 없는 유관순이라는 인물에 인간미를 입혔다. 완성된 인간이자 절대 굴하지 않는 강렬한 삶의 의지를 지닌 인물이 아닌, 흔들리고 상처 입는, 발랄한 17세 감성을 지닌 소녀의 모습으로 ‘자유란 무엇인가?’를 묻는 헌병보조원 정춘영에게 관순은 말한다.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이라고.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유관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실제 유관순과 함께 8호실에 함께 갇혔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흑백 인물 사진이 등장하니, 너무 일찍 자리를 뜨지는 말자.
[글 최재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