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만 따지면 독(毒)" 첫 특례시 도입 '갑론을박'
광역시급 행정·재정적 특례
청주·전주 "행정수요 등 다양한 기준 필요"
"광역시 없는 충북, 전북 역차별"
특례시 권한 등 논란 해소할 대안으로 부상
정부가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대도시에 '특례시'라는 행정명칭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기준과 권한 등에 대한 엇갈린 이해관계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10만 명 기초 자치단체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오는 3월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라는 행정명칭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광역시에 버금가는 인구 수에도 불구하고 일반 도시와 같은 대우를 받아 국비 혜택과 공모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일부 대도시의 불만에 따른 후속 조치다.
특례시는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광역시와 일반시의 중간 형태의 도시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인구 100만 명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경기 수원과 용인, 고양, 경남 창원 등 4곳이 해당된다.
◇ 광역시 아닌 광역시
특례시의 지위는 현행대로 도 단위 광역단체 산하 지자체로 유지되지만 법적으로는 다양한 행.재정적 특례를 부여받게 된다.
부시장은 2명까지 둘 수 있는 등 조직도 확대된다.
자체적인 도시계획 수립과 개발 사업, 지방연구원 자체 설립도 가능해 각종 사업의 속도가 붙게 된다.
도시 브랜드 가치 향상에 따른 기업 투자와 국제대회 유치 등에도 유리하다.
특히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추가 증세 없이 재원도 늘어 도시 인프라 확충 등의 공공서비스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마디로 광역시는 아니지만 광역시 수준의 행정서비스를 받는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들어 지역 불균형을 개선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 "인구만 따진 특례시 오히려 독(毒)"
'잘사는 곳은 계속 잘 살고, 못사는 곳은 계속 못산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들은 정부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와 충북 청주시, 전북 전주시 등은 최근 정부에 특례시 지정의 다양한 기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구를 절대 기준으로 삼으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본래 취지에 역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최근 개최된 국가비전회의 세미나에서 "현행 정부안대로라면 가뜩이나 각종 인프라와 인구가 편중된 수도권과 경남권의 인구과밀만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구 100만 명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시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특례시 지정기준에 주간 인구, 사업체 수, 법정 민원 수 등의 행정수요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인구 96만 명인 경기 성남시는 '행정수요자 100만 명 이상'을 특례시 지정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성남의 예산규모는 수원, 용인, 고양보다 많다.
인구 85만 명인 청주의 사업체(5만 9천여곳)는 용인(4만 8천여곳)보다 많고, 고양(6만 3천여곳)과 비슷하다.
특히 청주의 연간 처리 법정민원은 고양(135만 7천여건)보다 많은 148만 4천여건에 달하고 있다.
인구 66만 명 가량인 전주의 의사 결정 공공기관은 260개로 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최근 통신사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 실제 유동인구는 100만 명을 뛰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만 특례시를 지정하는 것은 지역 특수성을 모르는 것"이라며 "인구가 1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특례시 지위를 통해 기구 조직뿐만 아니라 자치권 강화, 상생협력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배려를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 "광역시 없는 거점도시 역차별"
충북 청주시와 전북 전주시는 '인구 50만 명 이상 도청 소재지'를 특례시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랜 기간 정부 예산 배분 등에서 차별을 받아온 만큼 지역 성장의 거점으로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광역시가 없는 전북과 충북, 강원은 1980년대 광역시가 출범한 이후 차별을 겪어왔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7년 기준으로 전북과 충북의 세입은 각각 18조 원과 15조 원인 반면 광역시를 보유한 경남권과 경북권은 각각 53조 원과 43조 원으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전주시의 한 관계자는 "1980년대 전남.광주와 전북의 정부예산 격차는 500억 원에 불과했지만 35년이 지난 현재 3조원 이상의 격차가 나고 있다"며 "광주.전남과 함께 '호남권'으로 묶여 정부 예산배분 등에서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자치단체들의 요구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지난해 12월 정부안에 맞서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담겼다.
◇ 갈길 먼 특례시…지정 다각화가 해법
결국 특례시 결정은 국회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하지만 지정 조건 뿐만 아니라 특례시에 부여되는 권한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여전히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특례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주 재원을 대폭 늘려 줘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광역시 수준의 재정 상황까지 만들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특례시가 농촌지역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례시 지정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충청북도의 한 관계자는 "충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주시가 광역시로 승격돼 독립되면 충북도의 광역기능은 사라질 것"이라며 "인구 빨대 효과 등으로 인해 농촌지역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특례시가 오히려 불합리한 행정구조를 개선하고 다양한 갈등과 혼란을 막을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행정특례 등을 적극 발굴해 특례시에 부여할 계획이지만 재정특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정특례는 자칫 지역 간 불균형을 가속화 시킬 수 있는 데다 이견도 더욱 첨예해 아직까지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우선 특례시라는 명칭만 부여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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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CBS 박현호 기자] ckatnf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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