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도 "노조 요구 무리 아니다".. 기아차, 통상임금 1兆 추가 부담
기아차 "판결 유감" 재계도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에 등장하는 법률 용어다. '각종 수당 지급 때 통상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휴일·연장 근로수당이나 퇴직금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통상임금이 늘거나 줄면 수당과 퇴직금도 덩달아 증감하기 때문에 노사(勞使) 모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에는 기본급과 직책·직급 수당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금액이 큰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법 규정은 없었다. 국내 노사는 관행적으로 임금 협상을 할 때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왔다. 고용노동부의 1988년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안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는 행정해석이 그 주요 근거였다. 어쨌든 '상여금 제외'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었기 때문에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소송은 끊이지 않았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2011년과 2014년 이 회사 노조원 2만7000명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며 소송을 냈다. 사측은 "그렇게 하면 최대 3조원가량의 추가 인건비가 든다. 큰 부담이 된다"고 맞섰다.
항소심 결과는 노조의 완승(完勝)이었다. 사측이 노조에 3125억원(원금 기준)의 수당을 추가 지급하라고 했다. 1심과 거의 같은 결과다. 기아차는 "법원 판결 취지대로 2008년부터 현재까지의 인상분을 합치면 추가 인건비는 1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이었던 신의칙(信義則) 위반 부분에서 법원이 노조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위반했느냐에 따라 인건비를 추가로 주느냐, 마느냐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기아차 측은 "노조의 요구가 관철돼 수조원의 추가 인건비가 나갈 경우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노조의 요구는 관행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관철하려는 것으로 이는 사측과의 신의(信義)를 저버리는 행동(신의칙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신의칙은 대법원에 의해 통상임금 재판의 주요 판단 기준으로 부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기존 정부 해석과 상반되는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당시 일정 조건을 갖춘 모든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통상임금으로 정의하면서 정기 상여금도 이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통상임금 인상에 따른 추가 인건비 지급이 기업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줄 경우 신의칙에 반하기 때문에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제한을 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노조의 요구는 기아차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신의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아차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약 1조75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남겼다. 회사의 우발 채무를 모두 변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추가 인건비 지급으로) 경영난이 초래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기아차는 2017년 1심 판결이 나왔을 때 이미 추가 인건비 1조원을 충당금으로 반영해 놓은 상황이다.
최근 대법원 판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법원은 지난 14일 이런 추가 수당 지급으로 인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상임금 인상에 따른 수당을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노조 측은 이날 판결 직후 "전체적으로 선방했다. 사측은 더는 (추가 수당 등의) 지급을 거부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기아차 측은 "노조의 신의칙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감"이라고 했다. 재계는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심히 유감스럽고 승복하기 어렵다"며 "1980년대 정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임금 협상을 하고 신뢰를 쌓아 왔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이번 판결이 인건비 추가 부담에 따른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신의칙(信義則)
신의 성실 원칙의 줄임말. 사회 구성원이 계약 등 법률관계를 맺을 때는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한쪽의 권리 남용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구체적 법률 규정이 없는 경우(법의 흠결)에 한정해 보충적으로 적용한다. 재판에선 판사의 재량이 큰 영역에 속한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옳이, 前남편 연인에 제기한 상간소송서 패소…항소도 포기
- 휴가 중 비행기에서 CPR로 환자 살린 교도관에 '감사 편지'
- 與 “영수회담 확정 환영… 일방적인 요구는 안돼”
- 거제 바지선 화재로 11명 중경상.. 도장 작업 중 발화
- 민희진이 자정에 올린 뉴진스 신곡 뮤비 500만뷰 터졌다
- “아파트 창문 셌어요”..멍때리기 우승자들의 비결은?
- 올트먼·젠슨황·나델라...美 AI 안전 논의한다
- ‘고속도로 달리는 택시기사 폭행’... 檢, 카이스트 교수 기소
- ‘암 진단’ 英국왕, 내주 대외공무 복귀… 6월엔 일왕부부 초청
- 의사 출신 안철수 “2000명 고집이 의료 망쳐…1년 유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