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 입은 손님 기다렸던 시인..한복 사진 첫 공개

이정희 2019. 2. 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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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264.

일제의 감옥에 갇힌 이육사 시인의 수인번호입니다.

그는 수감생활 이후에, 필명으로 '이육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일제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이 이번에 새롭게 찾아낸 시인의 20대 모습인데, 지금까지 공개된 사진 가운데 가장 젊은 시절의 사진입니다.

당차면서도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눈빛이 인상적이죠?

저항 시인이자 가장 비타협적인 실천가였던, 이육사의 젊은 시절을 이정희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리포트 ▶

곱게 가르마를 탄 머리,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강렬한 의지의 눈빛.

부인이 지어준 하얀 한복을 입고 있는 청년 이육사입니다.

옆에는 동생 이원일 그리고 절친했던 벗 조규인이 다정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있는 육사 선생의 모습은 처음입니다.

[이옥비 여사(79살)/이육사 선생 외동딸] "우리 아버지가 양복만 입고 다니셨잖아요. 그런데 '(한복을 입고 나가니) 정말 보기 좋다고. 육사는 이제 한복을 많이 입으라'고 그랬대요."

독립을 위한 이론과 실제를 배우기 위해 의열단 조선혁명 군사간부학교로 떠난 1932년, 그러니까 28살 전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부터 5년 뒤, 선생은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노래한 최고의 저항시 광야를 발표합니다.

함께 발견된 또 한 장의 사진에는 선생이 일제에 붙잡혀 옥사하기 3년 전인 1941년 4월 29일 생일 아침, 친구 조규인에게 전한다는 자필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위발/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언제 잡혀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내(육사)가 (사진을) 남기려고…"

이육사문학관은 조규인 씨 가족이 기증한 이 사진들을 다음 주부터 공개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이정희입니다.

이정희 기자 (leejh@andong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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