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뷔페 간 이주노동자에 "한시간 내 고기 다 먹고 나가"라는 주인..혐오의 민낯

2019. 2. 20. 15: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 출범식 열려
이주노동자·여성단체 "혐오·차별 뿌리 뽑아 달라"
혐오, 차별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특별추진위원회가 20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전체회의에서 최영애 인권위원장(앞줄 오른쪽 셋째)과 공동추진위원장에 선출된 정강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앞줄 오른쪽 둘째)를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

24년 전 한국에 온 미얀마 출신 인권활동가 소모뚜(44)씨는 친구 ㄱ씨가 한국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에 관해 얘기하며 분노했다. 농·축산업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에 기뻐하며 한국에 온 ㄱ씨가 한 일은 돼지 도축업이었다. 살생이 금기된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온 ㄱ씨는 매일 괴롭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을 얼마 하지도 못하고 도망쳐 나와 미등록 체류 신분이 됐다. ㄱ씨는 최근 출·입국법 위반으로 한국에서 추방됐다. 이처럼 사업주의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는 이주노동자를 미등록 체류자, 이른바 ‘불법 체류자’로 만드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소모뚜씨는 주장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또 하나의 인권 침해다. 소모뚜씨는 “이주노동자들은 냉·난방이 안 되고, 비가 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성폭력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며 “화장실이 없어 논·밭에서 볼일을 해결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면서도 노동부의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관련 업무지침’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급여의 일부를 숙식비 명목으로 떼인다고 한다.

이 밖에도 “외국인이니까 안 판다”며 “나가라”고 말하는 편의점 사장, “한 시간 안에 다 먹고 나가라”는 고기 뷔페 주인,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애 취급하는 공무원 등등. 소모뚜씨가 한국에서 경험한 이주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끝이 없었다.

#2.

지난 1월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특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불법·비동의 촬영물 유포로 인한 피해로 죽음에 이른 피해자를 기리는 ‘이름 없는 추모제’였다.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온라인 추모 페이지에는 현재 “나는 너희의 포르노가 아니다” “내가 사는 집에서조차 불안함을 느끼는 여성들의 두려움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여성의 삶이 투쟁이 아닌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등과 같은 추모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김여진 한사성 사무국장은 “우리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존재했지만 부를 수 없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불법 촬영 피해 사실을 말함과 동시에 포르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라야 하는’ 비극적인 현실에 김 사무국장은 분노했다.

사이버 성폭력 때문에 한사성에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자 가운데 여성은 94%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힌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가부장제 하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을 숭배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백래시(backlash: 반발·반격)’를 통해 여성혐오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는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보적인 움직임에 대한 백래시로서 여성혐오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 공격에 노출돼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추진위)’ 출범식을 열었다. 최영애 위원장과 정강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가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고,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박찬운 한양대 교수,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 학계·여성계·종교계·성소수자 등 위원 25명이 1년 동안 추진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들은 “혐오와 차별을 넘어 누구나 존엄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에 함께 할 것”이라며 ‘혐오의 시대’와 결별을 선언했다.

추진위는 혐오·차별 문제에 대한 범정부 대응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강문민서 인권위 혐오차별기획단장은 “2014년 총리 주도로 7개 중앙 부처가 혐오표현 반대 정책 선언을 한 ‘노르웨이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관계 부처와 협업해 혐오·차별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추진위는 “혐오발화자 심층 조사, 혐오·차별 문제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 혐오·차별 예방 및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제작 등 혐오·차별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추진위 내 분과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출범식 뒤 이어진 혐오·차별 사례 발표에 나선 이들은 “혐오·차별 문제를 뿌리 뽑아 달라”고 입을 모았다. 소모뚜씨는 “한국에 온 지 24년이 됐는데, 처음 왔을 때도, 10년 전에도, 농성장에서도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개선이 없다”며 “추진위가 저희 목소리를 귀에 담아 개선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여진 한사성 사무국장은 “여성혐오 가해자의 행위를 심층 분석하고, 이들을 재사회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힘써 달라”며 “여성혐오 문제가 인권·기본권과 직결된 문제임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