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도미노'가 온다

2019. 2. 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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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쓰레기 종량제봉투 사업자 피해 호소, 대구에선 전 지회장 단식 천막농성,
서울에선 구속된 지부장 탄원서에 회원 도장 도용

고엽제전우회는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생산해 지자체에 공급한다. 연합뉴스

공공기관 사업을 주무르는 연 1천억원대 매출의 부패한 중견 그룹, 관제데모에 앞장섰던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한겨레21>은 올 1월부터 탐사기획 보도를 통해, 전우회의 숨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폭력적으로 수의계약 사업을 따낸 생생한 현장을 고발했다. 외부 사업체의 시설과 이름만 빌려 불법적으로 사업을 벌였고, 20년 권력을 독점한 일부 전우회 간부들은 막대한 수익을 은밀하게 독식하고 있었다.

전우회의 사업 비리가 끝없이 터져나온다. 주택 사업과 4대강 준설토 사업에 이어, 이번에는 쓰레기 종량제봉투 사업 비리가 불거지고 있다. 광역 시도 단위의 각 지부에서도 비리 폭로와 항의 농성이 이어진다. 불법과 폭력으로 쌓아올린 연 1천억원대 사업의 둑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릴 기세다.

2월1일 서울고등법원은 주택 사업 비리로 30억원대 뒷돈을 받은 전우회의 이형규 전 회장, 김성욱 전 사무총장, 김복수 전 사업본부장에게 1심과 같은 5~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들과 결탁한 건설업자 함인범씨는 1심보다 1년 늘어난 9년형을 받았다.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회의 배상환 위원장은 항소심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그러면서 “현 황규승 회장과 여러 시도 지부장들은 옛 비리 집단과 한 몸통이고 쓰레기 종량제봉투 사업 등에서 터져나오는 새로운 비리 등을 덮기에 급급하다”면서 “전우회의 비리 척결은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수지사업소와 ㅅ사의 주소지가 동일”

2월 중순, 서울 서초동의 전우회 본부에서는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충남 홍성에서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생산하는 전우회 수지사업소의 ㅇ씨가 다시 찾아와 고성을 질렀다. 내부에서 입수한 대화 메모와, 직접 현장을 봤거나 ㅇ씨의 이야기를 들었거나 전우회 내부 대책회의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쓰레기 종량제봉투 사업(수지 사업)의 비리 전말을 전한다. 국가보훈처에 보고된 전우회의 수지 사업 매출은 2017년 66억원이었다.

“ㅇ씨는 20년간 수지사업소를 자기 사업으로 운영했다. 자기 돈으로 원재료를 사고 직원을 채용했다.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영업은 전우회 쪽에서 맡았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들어오는 쓰레기봉투 판매대금은 전우회 본부 통장으로 전액 입금된다. 그중에서 ㅇ씨한테 다시 배분된다. ㅇ씨는 지금은 빚만 남았다고 전우회를 원망한다. 구속된 3인방 중 김성욱 전 사무총장한테 엄청난 뒷돈을 상납했고, 그동안 여러 경로로 전우회에 뜯긴 돈이 모두 50억원에 이른다는 소리가 들린다. ㅇ씨는 불법 또는 탈법으로 빼내간 돈을 내놓으라는 내용증명을 전우회에 보냈다고 한다.”

“충남 홍성의 수지사업소는 자기 사업장도 없다. ㅅ사의 공장과 시설을 빌려 쓰레기봉투를 생산했다. 전우회의 대부분 사업소가 그렇듯이, 법적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ㅅ사에 지급한 임차료도 과도했던 것 같다. 그만큼 ㅇ씨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차료 수입 중 상당액은 전우회의 3인방한테 흘러갔다고 보면 된다. ㅇ씨로서는 김 전 사무총장한테 직접 상납하고 ㅅ사라는 우회 경로로 또다시 상납했던 셈이다. 뜯기고 또 뜯기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져 전우회 본부 사무실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전우회 수지사업소와 ㅅ사의 주소지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ㅇ씨가 손을 놓으면 수지 사업은 사실상 끝난다. 전우회의 누구도 사업을 끌어갈 능력이 없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ㅇ씨가 거세게 나올 때마다 전우회에선 무마책으로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급한 인건비를 지원해주거나 하는 식이다. 오래전부터 지속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3인방의 최측근이었던 황규승 현 회장 책임 또한 크다.”

“지난해 말 전우회에서는 본부 직원 1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정규직 남자 직원 전원을 시간제 근무자로 강제 전환한 것이다. 수지사업소의 자금난을 급히 지원해야 했고, 그로 인해 전우회 재무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것이 구조조정 배경이었다. 그 와중에 3명은 20년 일한 전우회 일을 그만두게 됐다. 3인방이 잇속을 다 챙기고 마구 싸놓은 오물을 전우회원들과 전우회 직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뒤집어쓰는 격이다.”

20년 이상 지부장들 마찰음

고엽제전우회가 운영하는 경기도 안산의 한 사업장 모습. 김현대 선임기자

<한겨레21>은 전우회 쪽에서 지난해 10월 ㅇ씨와 나눈 대화 내용 메모를 입수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자리에서 ㅇ씨는 “20년 동안 여기에서 밥 먹으면서 전우회에 봉사했는데… 망하게 됐다”면서 “전우회와 ㅅ사 쪽에 돈을 주었고, 그때문에 빚만 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본 손해를 “전우회 본부 쪽에 청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뒤 맥락이 분명치는 않지만 ‘ㅅ사 26억원 조치’로 적시하기도 했다. 또 “부채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고 나는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서 “본부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결국은 터지고 만다”고 말했다. “덧없다. 다 털고 나가겠다”는 회한도 담았다.

ㅇ씨와는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 외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ㅇ씨의 한 지인은 “이미 사업이 거덜 났는데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것 같다”며 “ㅇ씨는 전우회와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를 짓고 끝내겠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전우회의 한 내부 관계자는 “전우회의 18개 수익사업마다 사정은 다소 다르겠지만, 억지와 탈법으로 이어온 경우가 많아 수지사업소 같은 부실이 도미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우회 본부와 별개로 각 광역시도 단위의 지부에서도 비리를 둘러싼 마찰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1997년 전우회 창립 이래 20년 이상 지부장 자리를 이어온 곳에서 그 진동이 커지고 있다.

대구의 남세현 전 달성군 지회장은 1월 중순 전우회 대구지부 사무실이 입주한 대구보훈회관 정문 앞에서 사흘 동안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였다. 남 전 지회장은 “대구지하철공사 청소용역 사업과 보훈병원 영안실 관리 등으로 연 23억원 수입을 올리는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대구 지부장과 회계 직원 1명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20년 이상 자리를 지키면서 온갖 독재를 누린 지부장이 이제는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 전 지회장은 2월18일부터 다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

이에 ㅈ지부장은 “남 지회장은 지난해 5월 임기가 끝났지만 품위 문제로 연임을 못 받은 상태고, 허위 사실 유포가 많아 정식 고소를 해놓았다”고 반박했다.

서울에서는 장례 사업 비리로 구속된 박근규 전 지부장 탄원서에 회원들의 도장을 도용한 사실이 드러나, 회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지회장은 “어처구니없지만 그동안 정관에 지부장 연임 제한 규정이 빠져 있었고, 이를 이용해 각 광역시도 지부장들이 장기 연임 독재를 했다”며 “지난해 국가보훈처 지적을 받아 연임을 제한하는 쪽으로 전우회 정관을 개정했으나, 아직도 과거 지부장들이 여럿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부장들 대다수 상이등급 5급 이상”

1997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 지부장을 지낸 황규승 현 회장에 대한 비판도 커진다.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의 한 회원은 “3인방이 구속된 주택 사업과 <한겨레21>이 보도한 4대강 준설토 사업도 모두 경기도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당시에도 실세였던 황 경기 지부장이 해당 사업 비리에 깊이 관여했을 것”이라고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경기지부가 각 지자체에서 받아낸 용역사업 규모 또한 엄청나다”면서 “경기지부를 포함한 각 도지부의 수익사업 내역을 소상하게 공개하고 어디에 그 돈을 썼는지 출처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우회 간부들의 상이등급 비리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우회의 한 내부 관계자는 “구속된 전우회의 3인방과 핵심 시도 지부장들 대다수가 월 150만~170만원을 평생 지원받는 상이등급 5급 이상을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만 명이 넘는 전체 전우회원 중 실제 5급 이상은 4%도 안 되는 4천 명 남짓에 불과한데, 시도 지부장 이상 간부들 절대다수가 5급 보상을 받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이라면서 “전우회의 위세를 이용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간부들이 5급 이상 등급을 받아냈다는 것은 전우회 내부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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