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⑫ 성매매 그만두려 얼굴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 23배 높아

최은경 2019. 2.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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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요구 손님 욕설에 모멸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의 업소 철거가 16일 시작됐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지난달 철거 최후통첩이 날아온 데 이어 중장비가 들어왔다. 10여 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20여 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성매매 여성 B씨(53)의 증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집창촌에서 벌어진 일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16일 재개발 조합 측 철거용역 업체가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옐로하우스 일대 상가와 성매매 업소를 철거하고 있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지난 2~6일 설 연휴 동안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가 보도된 뒤 과거 10년 넘게 성매매를 하다 빠져나왔다는 한 여성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장문의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다들 삶은 힘들어요. 물론 회사나 직장생활도 그렇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더 많은 고민과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큰 마음속 응어리가 있어요.”

자신은 성매매의 늪에서 탈출했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과 막막한 삶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담았다.

옐로하우스 여성들과 오랜 대화 끝에 듣게 된 그들의 자살 시도 얘기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다수 집창촌 여성들이 이 길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그들을 짓누른 가난 때문이었다. 장애 등의 이유로 돈을 못벌어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한 부모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돕고 싶어했다. 그러나 가족에게도, 남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생활 때문에 늘 고독과 수치심에 갇혀 있다.

“나 하나 사라지면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고 한다. 그럴 때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도 결국 그의 돈에 의지하며 사는 가족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린다. 신체 폭력, 성폭력, 감금, 갈취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고통을 겪는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환경은 정신적 고통을 가중한다.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여성들은 “많은 여성이 힘들어하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B씨 역시 부산 완월동 집창촌에 있던 30대 초반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 했다. 1990년대 후반쯤이었다. 신체에 자해를 하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발견됐다. 아직 그때의 흉터가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이 최악이었어요. 다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 주로 일본인을 상대하던 B씨는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배)와 자주 만났다. 밤낮이 바뀌고 쉴 틈 없는 노동으로 힘들어하는 B씨에게 한 젊은 야쿠자가 하얀 약을 건넸다. “힘든 걸 다 날려버릴 수 있다고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좁은 공간에서 모든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성매매 여성들. 김경록 기자


내보일 수 없는 마음속 응어리

점점 약에 중독돼갔다. 그 시절 집창촌에서는 마약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고 했다. “업주들이 일부러 마약 투약자를 여성들에게 접근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약에 중독되면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군말 없이 일하니 업주는 편한 거죠.”

약을 탐닉할수록 몸이 망가지지만 집에 돈을 보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상한 몸으로 일하기 힘드니 또 약을 찾게 된다. 투약 횟수가 점점 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졌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2011년 탈성매매 여성 235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정도의 여성(110명, 49.8%)이 약물 복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또 약에 의존하는 저 자신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어느 순간 제가 돈 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까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매달 집에 가서 돈을 드렸는데 사정이 있어 며칠 늦으면 당장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돈이라도 먼저 부쳐줄 수 없느냐’고 물으시지요. 사정을 뻔히 아니 가족을 탓할 수는 없고, 죽도록 서글픈데 어디 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 극단적 생각을 했습니다. 나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많이 봐왔지요.”

문유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성매매 피해자 지원 성과분석 자료(2016)’에 따르면 ‘성매매 피해 여성’(성매매 여성)의 자살시도율은 48%로 일반인(2.1%)의 23배에 이른다. 문 연구위원은 보건복지부 자살실태조사를 바탕으로 2007년 기준 성매매 여성 15만1036명 중 50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 10명 중 8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충족한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2002). 그 심각성이 베트남·걸프전 참전 군인보다 높다고 나타났다.

옐로하우스 여성 C씨(37) 역시 B씨와 비슷한 흉터를 지니고 있다. 2012년쯤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나만 없으면 다 좋지 않을까. 그냥 편안해지고 싶었어요. 이렇게까지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또 다른 옐로하우스 여성(40대)은 스무살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한다. 가족 생활비, 부모님 병원비를 홀로 책임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때다. 위기를 넘겼지만 몇 년 전 또 한 번 고비가 왔다. 10년 가까이 키운 고양이가 곁을 떠난 데 이어 부모님이 1년 간격으로 모두 돌아가셨다. “울타리가 사라지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어요. 상실감이 너무 크고 떠난 사람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요.”
많은 성매매 여성이 반복적으로 다양한 외상을 겪으면서 심한 불안과 우울함을 느낀다. [연합뉴스]


"부모님 세상 떠나니 혼자 남겨진 막막함"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신장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도 늘고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이런 흐름에서조차 외면당한다는 서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다른 사람의 작은 비난에도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내 삶을 알게 될까 두렵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곳 여성들을 극단적 생각으로 내모는 원인을 나열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외로움과 고립감, 돈 문제, 왕따 문제, 이성 문제, 급격한 체중 증가 등 세상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 이들에게도 찾아온다. 문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긴장하고 숨기고 사는 탓에 한층 더 예민하며 불안 요소가 찾아왔을 때 우울감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남들에게 도움이나 위안을 청하기도 힘들다.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손님의 멸시도 이들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면 ”몸 파는 ○이 자존심을 세우는 거냐“ ”○○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욕설이 날아든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울면서 마음을 달랬지만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삶에 회의가 든다고 한다.

김자영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전략기획팀장은 ‘탈성매매 여성의 불안과 우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2013)’에서 “자아존중감이 낮을수록, 약물복용 경험이 있는 응답자일수록 불안과 우울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성매매 여성이 스스로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심리, 사회적으로 매겨지는 낙인과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성매매 여성 상담을 해온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학과장은 “성매매 여성은 불안한 미래와 부정적 사회 시선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달고 산다”며 “성매매 생활을 그만두기 위해 얼굴을 자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심 학과장은 “대부분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성매매에 내몰리게 된 여성들”이라며 “이들에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자랑스럽다’는 등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돕는 부산여성지원센터의 한 활동가는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살다 보니 탈성매매 후 자활을 하더라도 일반인처럼 살기 어렵다는 여성이 많다”며 “이들을 위한 체계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가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재개발 사업에 따른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사회적 약자로 보고 정신건강 지원해야”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여성가족부의 지침에 따라 탈성매매 여성에게 의료·법률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1인당 최대 지원비는 760만원이다. 2015년 기준 84명이 총 263회, 1인당 평균 3.1회의 의료 지원을 받았다. 의료 지원 분야에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정신질환 등도 포함되지만 현 제도로는 지속적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유경 선임연구위원은 “이들은 장시간 성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그 이전에 가정폭력 등의 경험이 많아 상당한 지원이 있어야 하는 만큼 정신건강 의료 지원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성매매 피해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대표 역시 “성매매 여성을 자발적 여성과 강요에 의한 여성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피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뒤 회복 시간을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많은 전문가가 성매매 여성 지원이 보다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여전히 모든 문제를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

옐로하우스 철거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압박에 시달려온 B씨는 지난 1일 기자에게 “해선 안 되는 몹쓸 생각이 든다. 이렇게 힘들고 괴롭게 더 살아야 하는지. 열심히 살면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모든 게 부질없다”는 문자를 보냈다.

옐로하우스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그는 세상의 냉담한 반응을 접하면서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20여 년 전 완월동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땐 젊음의 용기로 완월동에서 빠져나와 1년 만에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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