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희양 실종 20년 맞은 父情.."아빠만 잘 살아서 미안해"

김민욱 입력 2019. 2. 13. 05:30 수정 2019. 2. 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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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혜희양 아빠' 송길용씨가 벽에 걸린 혜희양 사진을 어루 만지고 있다. 김민욱 기자


"공부하고 온다"며 집 나간 게 마지막 기억
13일은 송혜희(당시 만17세)양이 실종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아빠 송길용(66)씨에게는 1999년 2월 13일 당시 고3 진학을 앞둔 혜희가 “공부하고 올게요”라며 경기도 평택 집을 나선 게 마지막 기억이다. 엄마 몰래 아빠에게 건네받은 용돈 5000원에 신이나 엄지를 올리던 기억도 함께다. 하지만 40대 중반이던 송씨는 어느덧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지난 11일 오후 7시쯤 송씨를 그의 평택 집에서 만났다. 23㎡(7평)쯤 되는 단칸방이었다. 벽면 한쪽에는 앳된 얼굴의 혜희 사진이 가득했다. ‘브이(V)’ ‘엄지척’ 포즈는 달랐지만 모두 환한 얼굴이다. 송씨에게는 여전히 ‘복덩이’ 혜희다. 사진들 가운데 유독 무뚝뚝한 표정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이 된 혜희를 추정해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사진이었다.
'혜희양 아빠' 송길용(66)씨의 1t 트럭 조수석에는 딸을 찾는 전단이 가득하다. 김민욱 기자


전단 제작비 벌러 온전치 않은 몸 이끌어
송씨는 과거 두 차례의 허리 수술과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온전치 못하다. 냉장고 안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는 처방약이 잔뜩이다. 그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온종일 길에서 폐지를 모았다고 했다. 폐지를 팔아 딸을 찾는 전단과 현수막 제작비용에 보태기 위해서다.

제작비용은 한 달에 70만~80만원 든다는 게 송씨의 말이다. 전단 2만여장에 현수막 10여장이다. 송씨는 지난 20년간 수백만장의 전단지·현수막을 통해 혜희의 실종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사이 남부럽지 않게 살던 송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평택 송탄행정복지센터 로비에 혜희양을 찾는 전단이 붙어 있다. 김민욱 기자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내딸 찾아주겠나"
그는 “매주 목요일은 홀몸노인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봉사를 한다”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전단 나눠주고, 현수막 달고. (그러려면 부지런히) 폐지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는 나에게 ‘집착’이라고 ‘이제 그만 가슴에 묻으라’고 하는데 내가 찾으려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내 딸 찾아주겠냐”며 “더 나이가 들어 실종 전단 하나 제대로 못 만들게 될까 봐 그게 두렵다”고 말했다.

송씨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려 했다. “입맛이 없다”고만 작게 말했다. 송씨는 “혜희가 밥을 제대로 먹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렇게 따뜻한 방에서 호강하고 있으니…”라며 “혜희에게 죄짓는 거 같다. 미안한 생각뿐이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혜희 양은 20년 전 평택 도일동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실종됐다. 지금은 주변이 개발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 마을이었다. 김민욱 기자


시골길서 마지막 목격, 의문의 30대 남성
혜희는 20년 전인 13일 오후 9시50분쯤 집 부근인 평택 하리마을 입구(현 도일동 사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게 전부다. 송씨 입장에서는 버스에서 내린 혜희가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당시만 해도 시골 마을이라 폐쇄회로TV(CCTV)는커녕 가로등로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을 때다.

경찰의 초동수사 과정서 술 취한 30대 남성이 혜희와 같은 정류장에 내렸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지만,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답답했던 송씨는 혜희 엄마와 전국을 누볐다. 몇 년간 1t짜리 트럭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단을 나눠주고 현수막을 달았다. 그는 “모래밭에서 좁쌀 찾듯이 뒤졌다”며 “그때 나나 부인이나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혜희 양의 유년시절. 아빠 송길용씨는 두 딸이 태어난 뒤 하던 사업 등의 일이 모두 술술 잘 풀렸다고 했다. [사진 송길용씨]


세상 등지려 할 때 '혜희 살아있다' 더욱 확신
부부는 지옥 같은 현실을 잠시 잊으려 술을 찾았다고 한다. 어느 순간 혜희 엄마에게 심장병에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혜희 엄마는 전단을 품은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송씨 역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다리에서 한번 뛰어내리고, 농약도 사다 마셔봤지만 (내) 목숨이 질긴 모양이더라”며 “(살고 보니 막내 혜희와 다섯 살 터울인) 큰딸만 혼자 남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혜희도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더욱 섰다”고 말했다. 송씨는 7년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혜희 아빠' 송길용 씨의 단칸방 한쪽 벽면에 딸을 찾는 전단이 붙어 있다. 김민욱 기자


사람들의 작은 배려 관심에 큰 용기
그는 잠자리에 누우면, 특히 혜희가 실종된 ‘2월’이 되면 칠흑 같은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이 내민 전단을 보고는 ‘혜희양 이야기 잘 알고 있으니 이 전단은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큰딸에게도 늘 고마움을 느낀다. 송씨는“손녀·손주를 볼 때는 (감격스러워) 시간이 멎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송씨는 “혜희는 어딘가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눈 감기 전에 한 번이라도 꼭 보고 싶다”며 “지금도 우리 혜희만 찾을 수 있게 해준다면야 목숨도 기꺼이 내줄 수 있다. 이번 주말도 나는 전단을 돌릴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인터뷰 후 송씨와 함께 근처 국밥집으로 갔다. 그는 밥을 몇술 뜨더니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고 했다. 곧 “혜희가 전교 수석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평택=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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