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지를 힘도 없다.. 혹독한 군산의 겨울

부산=변종국기자 입력 2019. 2. 13. 03:01 수정 2019. 2.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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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공장 폐쇄 발표 1년.. 군산 가보니
GM 출고차량 가득했던 곳엔 잡초만 전북 군산시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가 발표된 지1년을 앞둔 12일, 준중형 세단 크루즈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올란도가 출고되던 야적장에 잡초만 무성히 나 있다. 군산=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지난해 2월 13일 한국GM은 전북 군산시 군산공장을 가동률이 20%대에 불과하다며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만인 12일 찾은 공장 앞은 너무 한산했다. 이곳으로 태워다 준 택시 운전사는 “이 근처는 운전 연습하는 초보 운전자들이 찾지 않으면 텅 빈다”고 말했다.

한때 준중형 승용차 크루즈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올란도와 같은 신차로 가득했던 차량 출고장은 잡초들로 무성했다. 출입문은 굳게 잠긴 채 ‘어서 오십시오’라는 팻말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전라북도와 지역 자동차 부품업체 등에 따르면 한국GM 군산공장의 협력사 약 160개 중 20여 곳은 이미 폐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 지역이 지난해 4월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지역 업체들에 자금 지원이 시작된 게 10월경이라 그 사이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 한계 업체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업체들도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다. 경영안정자금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 겨우 인건비를 대고 나면 다시 빚을 내야 한다. 다른 완성차업체에도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전적으로 군산공장에만 의존하던 2, 3차 협력업체들은 비명을 지를 여력도 없어 보였다.

한때 2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렸던 A기업은 1년 사이 매출이 30억 원대로 줄면서 요즘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긴급 경영안정자금 등으로 3억 원가량을 지원받았지만 은행 빚을 갚느라 경쟁력 있는 부품을 개발해 새 공급처를 확보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이 회사 대표는 “GM 협력사라는 꼬리표 때문에 은행이 추가 대출을 해주려 하지 않아 연구개발(R&D)과 신규 투자를 못 하고 있다”며 “정부 자금으로 산소호흡기만 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정부는 최근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형태로 군산에서도 새로운 공장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고 군산 경제도 살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신현태 군산자동차부품협의회 대표는 “군산에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 공장을 유치해 상생형 일자리를 만들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진전이 없어 아쉽다”며 “탁상공론이 아닌 군산지역 기업들에게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재취업 교육 받아도 일자리 없어…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

한국GM 군산공장에 철강 가공물을 납품하던 협력업체의 정문이 12일 굳게 잠겨 있다. 군산공장 폐쇄로 문을 닫은 공장 내부에는 각종 기자재와 설비가 방치돼 있다. 군산=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지난해 4월 정부는 군산을 고용위기지역과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했다. 2017년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에 이어 지난해 한국GM의 군산공장마저 폐쇄된 데 따른 조치였다. 중앙정부와 전북도는 현재 지역 주민들에겐 생활안정자금과 재취업 교육을 지원하고 사업주들에겐 고용 유지를 위한 각종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지역경제에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론 오래 버티기 힘들다.

군산공장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A 씨는 “재취업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일자리 자체가 없으니 결국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8년 10월 기준 전년 품절 대비, 실업률만 2018년 상반기 기준, 자료: 통계청, 군산시
○ 정부지원책 효과 반신반의

통계청과 군산시에 따르면 군산시의 실업률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2.6%포인트 늘어난 4.1%다. 인구도 1년 사이에 2000명 이상이 줄어 현재 27만여 명 수준이다.

지역 상권도 당연히 추락하고 있다. 군산 시내에 있는 원룸은 한때 보증금 100만 원에 월 35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보증금 없이 15만 원에 내놔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군산공장 인근의 베니키아호텔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실내 낚시터 같은 가게를 열고 있지만 15일 버티면 잘 버틴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이 악용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 부품업체인 B사의 대표는 “회사 명의를 바꿔 가며 지원금을 따내거나 대표 명의를 아내 이름으로 바꿔 다시 지원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 자동차 판매 급감에 있는 돈도 못 쓰는 한국GM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와 산업은행은 지난해 5월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을 골자로 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합의에 따라 GM은 총 64억 달러(약 7조 원)를, 산업은행은 7억5000만 달러를 한국GM에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GM이 맡은 64억 달러 중 28억 달러는 한국GM에 대출한 차입금으로 지난해 6월 모두 출자 전환됐다. 8억 달러는 한국GM에 투입하는 신규 출자금으로 지난해 6월에 역시 이행 완료됐다.

나머지 28억 달러는 한도성 대출 자금으로 한국GM이 시설투자를 할 때만 대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GM의 판매량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다 보니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던 쉐보레 이쿼녹스가 지난해 6월 판매를 시작했지만 여태 1718대만 팔릴 정도로 부진하다 보니 신규 투자가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GM은 지난해 11월 전 세계에서 7곳의 공장 문을 닫고 직원 1만4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GM이 여기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설이 분분한 가운데 한국GM이 연구개발(R&D) 부문을 떼어내 별도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지역 부품업계에선 GM이 경기 부평시, 경남 창원시에 있는 공장 문도 닫아 그나마 남아 있던 공급 물량이 완전히 끊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솔솔 나오고 있다.

○ ‘군산형 일자리’에 거는 실낱같은 기대

군산 지역 협력업체들은 지역 상생형 일자리인 이른바 ‘군산형 일자리’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전북도와 한국GM은 군산공장을 놓고 최근까지 3개의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계 및 자산 설비를 재활용하겠다는 외국계 업체와 주거 및 상업용 강철 모듈 건축을 개발하는 외국계 업체, 전기차 생산을 위한 컨소시엄 업체 등이 협상 대상이다.

문승 한국지엠협력사모임 대표는 “자동차 관련 일자리 모델이 빨리 결정돼야 기업들도 버틸 힘이 생기고, 자금 확보도 수월해지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군산공장 폐쇄로 직간접 일자리 1만 개가 사라졌는데 소규모 업체를 유치해 봐야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긴 힘들 것으로 본다. 신현태 군산자동차부품협의회 대표는 “전기차라고 해봐야 1만~2만 대 수준일텐데 이걸로 기존 부품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군산을 전기차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큰 그림으로 군산형일자리가 진행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부품업체 J사 관계자는 “새 사업자가 자율차든 전기차든 사업을 시작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릴 거다. 한계 부품기업들이 살아나려면 당장 먹고살 수 있도록 정부가 이자 납부 유예 같은 정책을 더 내놔야 한다”고 호소했다.

군산=변종국 bjk@donga.com / 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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