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북 저승사자 아인혼 "영변+α땐 美, 금강산 풀수도"

전수진 2019. 2. 1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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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저승사자' 아인혼 전 조정관
북한 살라미에 인센티브 살라미
한국이 먼저 요청, 미국 부담 적어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도 옵션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북 제재의 아이콘이다. 아인혼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 및 대이란 제재 조정관과 비확산 군축 담당 특별고문을 지내 북한이 아파하는 곳을 정확히 안다. 그런 그가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가역적(reversible)이라는 조건 하에 1회만 제재를 면제(one time relief)해주는 방안을 미국 정부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행동에 대한) 상응조치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인혼 연구원은 “북한이 원하는 상응조치는 제재 완화이지만 미국에겐 가장 힘든 조치”라며 “제재 해제를 북한에게 공짜로 해줄 수는 없다. 현재로선 제재 완화는 없다는 게 확고한 미국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진전에 따라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도 미국이 상응조치 중 하나로 고려해볼 수는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동맹인 한국 정부가 요청해온 사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인혼은 2016년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계속됐을 땐 “북한에 대한 핵 공격 옵션도 배제 않겠다”는 강경 발언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실무진도 그에게 자주 조언을 구한다. 11일 방한한 그는 청와대ㆍ외교부 당국자들과도 비공개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의 6~8일 평양 방문 평가와 다음주 열릴 후속 협상에 대한 전망은.
“비건 대표가 방북 직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어려운 문제(hard work)’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외교 용어로 행간을 읽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고, 미ㆍ북간 현격한 입장 차가 있다’는 의미다. 하노이 정상회담까진 시간이 많지 않다. 큰 기대는 접는 게 맞다. 그러나 1차 싱가포르 회담보다는 구체적인 합의가 나오길 기대한다.”
-하노이 회담이 성공으로 평가되려면 선언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나.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적시되길 바란다. 적어도 앞으로 수개월간 외교적 절차를 밟아나갈 로드맵은 필수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비건 대표가 방북 직전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영변 그 이상의 핵폐기를 약속했다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 북한은 반드시 영변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플루토늄 및 우라늄농축 등 북한 전역의 핵물질 관련 시설을 폐기해야 한다. 단순히 ‘폐기하겠다’로는 충분치 않다. 구체적 조항이 적시돼야 북한은 실제로 그 조치들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북한이 영변 외 시설에서 핵무기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앙포토]

-미국도 상응조치를 해야 북한을 추동할 수 있는데 북한이 가장 원하는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 아닌가.
“비건 대표가 ‘북한이 모든 (비핵화) 조치에 합의하기 전까지 북한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 미국이 아무런 상응조치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공짜로 줄 수도 없다. 제재 해제는 그러나 가장 힘든 조치다. 미국은 대북 제재라는 레버리지를 놓아선 안 된다. 단 순서를 밟아나갈 수는 있다. 1회용 제재 완화를 하거나 또는 가역적인(reversible) 제재 완화 조치를 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살라미에 인센티브 살라미로 대응하는 셈인가.
“맞다. 말그대로 인센티브 살라미 전술이다.”

-미국이 먼저 내놓을 인센티브 살라미 조각은 역시 종전선언 또는 연락사무소 설치인가.
“맞다. 일종의 정치적 선언을 하거나 언제든 폐쇄가능한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다. 남북관계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진전을 이루고 있지 않나. 연락사무소는 북한에게도 매력적인 옵션이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은.
“조금 논란은 되겠지만 우리가 고려해볼 리스트에 올려는 놓아야 할 것 같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한에 굉장히 큰 선물이다. 아까 언급한 ‘가역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도 맞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금강산과 개성공단 관련한 제재 면제 및 완화를 해주는 것을 매우 꺼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 (금강산과 개성공단) 관련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게 훨씬 쉽다. 왜냐.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요청을 해온 사항이기 때문이다. 합리화를 하기에 쉬운 면이 있다.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이 해당 조치를 하면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고 비핵화에도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는 논리다.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상응조치 옵션의 스펙트럼에서 (금강산과 개성공단 부분은) ‘아주 어렵다’보다는 ‘쉽다’에 가깝다.”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 리스크’를 거론하며 하노이가 제2의 싱가포르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주의해야 하는 건 하노이에서 특정 분위기(atmospherics)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전반을 진정하게 제어할 수 있는 구체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재선 가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도 알고 있으리라 본다.”

-한국 일각에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준에서만 합의를 하는 소위 ‘스몰딜(small deal)’로 불과할 것이라는 걱정도 계속된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작은 합의를 해놓고 대단한 성과로 포장할 것을 우려한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실체적(substantial) 성과를 거두려는 참모진이 있다. 노련한(skilled) 전문가인 비건 대표가 지난 수개월간 북핵 문제의 역사는 물론 모든 뉘앙스를 파악했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워싱턴의 현 분위기는.
“현재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10가지 이슈를 꼽아보라고 하면 북ㆍ미 회담은 포함되지 못한다. 워싱턴은 현재 (국내) 정치 이슈에 매몰(consumed)돼있다. 중앙일보 독자들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거다. 재선 레이스를 목전에 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ㆍ미 협상을 자신의 성과로 선전하고 싶을 것이다. 그건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전쟁이 벌어졌을 거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협상) 판을 끌고 온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credit)이 분명히 있다.”

전수진ㆍ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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