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학생회의서 학생 사망했지만..부모는 열흘간 진상 몰랐다

이보라 기자 2019. 2. 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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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강대학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열흘이 지나도록 누가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사건 내용을 몰랐다는 게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총학생회나 산하 중앙운영위원회라도 정확히 내용을 전달하고 입장 표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책이 마련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내에서 총학생회 회의를 하다 숨진 전 서강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겸 경제학부 학생회장 ㄱ씨 아버지의 말이다. ㄱ씨가 학교 내부에서 학생 자치 활동 중 사망한 지 한달이 넘었지만 학교 당국과 총학생회가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 등 사후 조치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달 1일 새벽 0시10분쯤 서강대의 한 건물 앞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다. ㄱ씨는 전날인 지난해 12월31일 학생 6명과 총학 중운위 회의를 하다 나와 투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강대 중운위 회의록에서 ㄱ씨는 당시 회의에서 일부 학생과 안건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생이 안건과 관련해 ㄱ씨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ㄱ씨가 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고 ㄱ씨 지인은 말했다.

ㄱ씨는 투신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소신을 지키기 어렵다. 머리가 복잡하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떠나야 내가 몸 바친 곳이 산다. 내가 떠남으로써 모든 게 종결되길 바란다”는 유서 글을 남겼다.

이후 사건과 관계된 학생 면담은 단 한차례 이뤄졌다. 학교 당국은 사건 당일인 지난달 1일 낮 12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총학생회실에서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학생 2명를 불러 면담했다. 이들에게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경찰 조사에서 어떻게 진술했는지 등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 부모는 ㄱ씨 사망 후 열흘간 ㄱ씨가 왜 사망했는지, 마지막 참여한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지난달 10일 직접 사건을 파악하고자 총학생회 임시 중운위에 참석했다. 총학생회에 당시 회의록과 녹취 등을 요청해 지난달 16일 이를 살펴보고 나서야 진상을 알았다. 학교 당국은 ㄱ씨 사망 약 한달째인 지난달 28일 ㄱ씨 부모와 사건 관련 공식 면담을 가졌다.

교내에서는 ㄱ씨 죽음에 대한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 등 학교 당국과 총학생회의 사후 조치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서강대 학생 한모씨(21)는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도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도 언급조차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건지 너무 궁금하고 마음 아팠지만 꾹 참고 있었는데 뒤늦게 올라온 회의록을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서강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 ㄹ씨는 “ㄱ씨의 장례가 치뤄진 지 벌써 한달이 지나간다. 학생대표자가 학교에서 업무를 보는 도중 발생한 사건인데 학교 당국에서는 어떤 공식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소극적인 학교 당국의 모습에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이어 “회의에 참석했던 학생들에게 학교 상담센터에서 우선순위로 상담받을 수 있으니 생각있으면 가보라는 게 조치의 전부였다”고 했다.

ㄱ씨가 학생회장으로 소속됐던 서강대 경제학부 학생회는 뒤늦게 입장문을 내놨다. 학생회는 4일 당시 회의 책임자였던 ㄴ씨에게 ▲총학생회장·총 새내기맞이 사업단장·기타 모든 서강대학교 학생사회의 자리에서 즉시 사퇴 ▲서강대 경제학부 대표의 발언권을 박탈하고 ‘청문회 중운위’를 진행한 것에 대한 사과문 게시 등을 요구했다.

서강대 측은 관련 학생들에 대한 심리 상담 등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서강대 관계자는 “관련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이들을 상담하고 있다. 사태 파악을 하고 있으며 곧 공식 입장문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요청 등으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외부 법률 자문단에 법리 검토 후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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