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결국 해고"..파견 계약직 '설움' [밀착취재]

이동준 2019. 2. 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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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합법과 꼼수 사이, 파견 계약직 문제

인력파견업체에 속한 계약직 근로자들이 원청기업과 파견업체 꼼수로 설 명절을 앞두고 대량 해고됐다. 이들은 “퇴직금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3년간 맘 졸이며 살았지만 결국 해고”

50대 가장 A씨는 서울의 B파견업체에서 3년간 시설관리자로 일하다 지난 연말 해고됐다.

계약직으로 일한 그는 업체의 ‘미루기 계약’의 피해자다. A씨에 따르면 B업체 측은 계약서에 서명을 먼저 요구하고 회사 직인을 나중에 찍는 수법으로 퇴직금 지급을 피했다. 또 입사 시기와는 무관하게 연말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매년 연말이면 대량 해고가 반복된다.

예컨대 1월에 입사한 C는 사용계약을 11월까지 작성하고, 5월에 입사한 D는 이듬해 5월이 아닌 12월 말일까지 계약하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상 1년 만근 시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을 쪼개기식 계약으로 피하는 것이다.

A씨는 “업체는 회사 직인을 찍고 나중에 준다고만 할 뿐 근로 계약서는 주지 않는다”며 “연말 해고통보를 받고 11개월 계약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50대 가장 A씨는 서울의 한 파견기업에서 3년간 시설관리자로 일하다 지난해 해고됐다.

그는 이어 “계약서를 주지 않는 이유는 서류를 보고 항의하거나 언론 제보 등을 우려한 것”이라며 “과거에도 이 같은 꼼수가 문제가 돼 관리소장이 한차례 홍역을 치른 후 계약서를 돌려주지 않는 문제가 불거졌다”고 덧붙였다.

◆“직원 70명 일괄 사표 받아”

B사의 꼼수는 늑장 계약만이 아니다. 12월 초 직원 전원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고 월말인 31일 직원을 한 명씩 불러 재계약을 하거나 해고를 통보한다.

관리소장의 사직서 요구는 법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1년 단위 계약직 근로자도 재계약 여부를 사전에 통보하게 돼 있다. 이는 계약직 근로자의 취업 활동을 돕기 위한 보호 장치다.

문제는 이런 절차가 구인이 뜸한 연말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A씨는 “소장은 직원들이 일하러 가기 전 사무실에 서류를 늘어놓고 사인을 요구한다”며 “정신없이 바빠서 내용 확인 없이 서명하기도 하지만 계약직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필요해서 소장이 시키는 대로 ‘기간 만료 확인서’나 ‘퇴직금 미지급 동의서’ 등에 사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운명의 그날, 눈물바다”

A씨는 “우리 같은 계약직들은 연말이나 지금 같은 명절이면 재계약 되길 바라면서 숨죽여 기다린다”고 말했다.

전체 직원 70명 중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기간 만료서와 사직서를 작성해 누가 재계약이 되고 누가 퇴사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B사의 경우 기간 만료 날인 12월 31일 퇴근 전까지 재계약 여부를 알 수 없다.
A씨는 “3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통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A씨는 “관리소장이 퇴근 직전에 한 사람씩 부르는 바람에 사내 퇴직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졌다”며 “소장이 부른 사람은 그날 해고된다. 인원이 많다 보니 12월 31일 저녁부터 시작된 해고 통보는 새해까지 이어진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해고당한 사람 대부분은 50~60대 가장”

A씨는 “해고당하는 사람들은 가정을 둔 50~60대 가장이 대부분”이라며 “젊은 친구들은 스스로 나가니 잡지 못해 안달”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그들만의 기준을 정한 뒤 ‘나이 많은 이들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50세 이상 근로자를 먼저 해고하면서 ‘원청의 요구’ 내지는 ‘용역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A씨는 “그러나 사람을 내보낸 후 같은 일할 사람을 뽑는다”며 변명일 뿐 일축했다.

이어 “연말 계약이 끝나 실업자가 되면 최소 3개월은 놀아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은 새해를 맞아 희망에 부풀어 행복해하지만 해고된 계약직들은 가족 눈치를 보며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생활이 막막한 가장들은 관리소장에게 매달려 울며 애원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며 “지난 3년간 해고당한 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내가 동정의 대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안타깝지만 제재할 방법 없어

계약직 근로자들은 1년 임시직이라는 것을 알지만 재계약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일부에서 편법으로 A씨와 같은 계약직들을 힘들게 만든다. 노동법에는 해고통보를 서면으로 할 수 있고, 고용계약도 11개월에 근로자가 동의한 것으로 돼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문의해도 “갑작스럽거나 일방적인 해고 통보가 아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해고 통보를 사전에 알려주고 서면과 동시에 말로 전달받았으면 좋겠다”며 “업체는 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서면으로 통보하지만 재계약을 꿈꾸며 마음 졸이는 노동자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단지 ‘해고하겠다’는 말이 필요할 뿐이다. 노동법이 개선돼 나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사진·글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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