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도 러브콜 보낸 한국인..'장기칩' 개발로 동물실험 대체 주목

이기림 기자 입력 2019. 2.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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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은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장기칩' 개발로 산학관 주목
"동물실험 대신 장기칩 이용해야..윤리 아닌 과학적 근거"
허동은(Dongeun Dan Huh)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바이오엔지니어링학과 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미국 국립보건원(NIH), 미국 항공우주국(NASA)….'

미국 정부 주요기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한국인이 있다. 인체 장기를 모사한 '장기칩'(Organ-on-a-chip) 분야의 석학으로 평가 받는 허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가 그 주인공.

장기칩은 특정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해 칩 위에 올려 실험 등을 통해 실제 장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디바이스다. 최근 독성물질이나 약 등 물질을 장기칩에 올려 생리학적인 반응을 볼 수 있어 동물 대상의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보다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동물실험을 자제토록 하는 조항 등이 담긴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도로 개정안이 발의됨에 따라 한국 정부기관에서도 허 교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의학과 생물학에 기여한 건 아니었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다 졸업할 시기인 1999~2000년쯤, 의공학이라는 학문이 뜬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평소 관심 많던 미세공학을 기반으로 세포를 넣은 칩을 만들어 진단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허 교수는 최근 <뉴스1>과 전화인터뷰에서 "대학원에서 많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참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폐세포를 디바이스안에 길러서 폐조직 모사할 수 있다는 논문을 내면서 이슈가 된 이후 본격적으로 장기칩 개발을 시작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세계 최초 허파칩 개발로 주목…미국 정부기관도 '연구지원' "사실 장기칩은 지난 1990년대부터 미세공학자들이 진행해온 연구입니다. 그러나 조직 등 세부차원의 기능이 아닌 전체 장기차원에서의 모사가 가능한 플랫폼 콘셉트는 없었죠. 포닥(박사후연구원)을 거치며 복잡한 폐기능을 칩에서 모사할 수 있다고 학계에 보고를 했는데 그 논문이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채택되며 관심을 많이 받게 됐습니다."

허 교수는 지난 2010년 하버드 세계 최초로 '허파칩'(Lung-on-a-chip)을 개발했다. 그 결과 제약회사와 미국 정부기관에서 특히 그를 주목했다.

실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2년부터 '티슈칩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며 그의 연구를 장기간 지원하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최근 10여년간 장기칩에 대한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단순히 하나의 장기만을 모사하는 게 아닌, 장기와 장기를 연결하는 등 복합적인 칩 개발도 이뤄지는 상황. 폐, 간, 심장 등 많은 조직이 개발됐고, 질병이 있는 칩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허 교수는 최근에도 깜박이는 눈을 모사한 '블링킹 아이 온 어 칩'(Blinking Eye-on-a-chip)을 개발하며 주목받았다. 이 칩은 눈물샘과 눈꺼풀까지 재현한 칩으로, 실제 사람 눈처럼 외부반응에 깜빡이며 반응한다. 이를 이용하면 잔인하다고 여겨지는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단체의 주목도 받았다. '러쉬 프라이즈 2018'에서 과학부문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드레이즈 테스트는 화장품 등을 개발할 때 토끼를 못 움직이게 고정한 뒤 눈 점막에 화학물질을 넣어 반응을 보는 실험이다. 최근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와 함께 우주에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 "장기칩, 동물실험 대체할 수 있어…5년 내 가시적 성과 나올 것"

전세계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이 연간 1억여마리, 국내 308만2259마리로 알려진 가운데 동물실험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고 있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질병 치료와 신약개발, 화학제품 개발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많지만 최근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과학적으로도 동물실험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

허 교수는 "바이오공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동물실험의 역사는 오래됐고, 그로 인해 현대 생물학과 의학이 발전한 것에 대해서 인정한다"면서도 "최근 학계에서도 동물실험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고, 실제 윤리적 문제가 아닌 과학적 문제들도 연구결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약물도 90% 이상이 인체대상 임상실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허 교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 동물실험 대신 애초에 사람세포를 이용한 '장기칩'(Organ-on-a-chip)에 투자하고, 이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동물실험 등을 거친 임상과정에서 수조원을 썼다가 사람임상에서 결과가 달라 돈을 날리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투자비용이 부족한 작은 회사에게 장기칩을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3~4년 전부터는 학계보고를 바탕으로 관련기업도 생기는 상황으로, 대학과 정부기관, 산업계가 협력하다보면 5년 내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장기칩 육성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고, 기존 참여하지 않던 기관에서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기술로만 보면 이미 세계 최고 수준급인 한국 연구진들을 위해 공학, 생물학, 의학 등 학계와 제약회사, 정부가 다함께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연구에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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