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군비경쟁'..미·중·러 '핵 경쟁'으로 계속되나 [뉴스+]

이우승 2019. 2. 3. 16: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 INF 탈퇴에 미·중·러 군비경쟁 가속화/ 미 "중, 다자군축 참여해야", 중 "반대"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당시 벌였던 군비경쟁이 또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 조약’(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탈퇴를 예고하고, 러시아가 ‘대칭적 대응’을 발표하면서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다자군축 조약 구축을 위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6개월 뒤 미국의 INF 탈퇴가 현실화하고, 러시아의 맞대응 조치가 충돌할 경우 사실상 신냉전에 돌입하면서 핵 경쟁은 가속화할 보인다. 미·중·러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2017년 현재 각국 핵무기 보유 현황. 자료: SCMP 홈페이지
◆미, INF 탈퇴…. 미·러 핵 경쟁 우려

미국 INF 탈퇴 명분은 러시아의 선 조약위반이다. 2017년 배치한 9M729 순항미사일이 INF가 규정한 사거리 500km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500km 미만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미국이 이를 빌미로 유럽에서의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500~5500km 중거리 핵전력 군축이 중요한 것은 이 무기들이 서로의 동맹국들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만 아니라 서로의 동맹국들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것보다는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당시 체결된 이 조약은 중거리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금지함으로써 유럽에서의 핵전쟁 위협을 크게 감소시킨 바 있다. 냉전 종식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조약파기에 따른 중거리 미사일 개발과 실전 배치에 족쇄가 풀린다면 그만큼 핵 경쟁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력에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는 저강도 핵무기를 이용한 억지력 유지 방침을 계획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3월에 러시아가 어떤 방어 체계도 무력화할 수 있는 핵 프로그램을 갖췄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 ‘아방가르드’(Avangard) 개발은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음속보다 20배 빠른 아방가르드는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 무력화할 수 있다. 

◆미, INF 탈퇴는 중국에 대한 경고….“중국도 다자군축 참여하라”

미국이 INF 탈퇴를 선언한 것은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적 위협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경고 성격도 크다. 미정부가 새로운 다자간 군축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모든 사람이 크고 아름다운 방(room)에 모여 훨씬 더 좋은 새로운 (군축) 조약을 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새로운 군축 조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러시아와의 INF 재협상을 넘어 중국 등이 참여 새로운 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도 “장차 언젠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내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심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군비경쟁에 대한 의미 있는 중단을 논의하기 시작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을 다자군축 협상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중국의 중거리 핵전력이 미군의 아시아 전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사거리 2000km의 둥펑(東風) 21D는 유사시 대만이나 한반도로 들어오는 미 항모전단에 큰 위협이 된다. 대만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군사기지화 시도가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중장거리 핵전력 보유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중국 핵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둥펑 31, 41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단거리로 구성됐다. 만약 다자군축협상에 중국이 들어온다면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또 탄두 숫자와 종류, 다탄두미사일 탄두 수를 제한하는 전략 무기감축 협정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은 그동안 제약 없이 방대한 재래식 군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조약파기가 현실화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중국 세력권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재래식 병력 증강의 길이 열리게 된다고 보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톰 카라코 분석관은 “미국이 INF 조약 폐기를 통해 태평양 지역에 핵심적인 지상 발사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지상군이 더욱 정교한 장거리 화력 프로그램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다자군축에 가입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현재 조약이 무력화되는 것도 중국에는 불리하다. 중국 외교부가 INF 대신 다자간 군축 조약 협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조약의 다변화에 반대한다”며 “기존 조약을 잘 지키고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현 조약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중·러 핵 경쟁 가속화…. 신형 핵무기 개발 박차

현재 세계 최고의 핵보유국은 미국과 러시아다. 미국의 비정부기구인 군축협회(ACA)에 따르면 2017년 현재 러시아가 7000개, 미국이 68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프랑스가 300개, 중국 270개, 영국 215개, 파키스탄 140개, 인도 130개, 이스라엘 80개, 북한이 15개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2월 ‘핵 태세검토보고서’(NPR)를 공개하면서 저강도 핵무기 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발표했다. NPR에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위협 평가와 미국의 대응 방안이 나와 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 장관은 “미국이 지난 8년 동안 F-35 전투기 단 한 종류를 개발하는 동안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경쟁국 및 적국은 34종의 새로운 핵 운반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향후 30년에 걸쳐 1조2000억 달러 예산을 투입해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핵 공격 무기였던 미니트맨Ⅲ(ICBM), 트라이던트(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를 모두 차세대 무기로 대체하고, 폭발력 20㏏ 이하 저강도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국지전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신형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량 면에서 미국과 러시아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핵무기의 소형화, 탄두 정교화, 타격 정확도를 높여 이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1월 중국은 미국보다 평균 5배 많은 핵무기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은 2014년 9월부터 2017년 12월 사이에 모두 200여회 핵무기 모의실험을 했고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5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해방군보(解放軍報)는 중국의 핵전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해방군보는 지난해 1월 30일자 사설을 통해 “역내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미국이 핵 능력을 계속 강화함에 따라 핵 억지력을 향상하고, 핵 보복 능력을 키우기 위해 중국군의 핵탄두 보유 규모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