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문제' 고발했는데 '입시코디' 물색..민낯 드러낸 교육현실

이유진 기자 2019. 1. 3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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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오늘 종영 ‘SKY 캐슬’이 남긴 씁쓸한 여운 3가지

입시경쟁의 그늘을 보여주려 했던 기획의도와 달리 JTBC 드라마 <SKY 캐슬>은 여러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드라마를 활용한 사교육업체의 홍보물.

‘당돌’ 혜나엔 미움…약자에 혹독한 사회 잣대 노출 의료사고 피해자 흉기 위협 장면 ‘모방범죄’ 논란도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이 1일 밤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다. <SKY 캐슬>은 대학 입시라는 보편적 공감코드에 음모와 암투, 살인 등 자극적 소재를 버무려 비지상파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매회 방송이 끝난 후 온·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반응 역시 단순 시청 소감에서 벗어나 일종의 ‘현상’이 됐다. 1회 방송이 나간 지난해 11월23일 이후 약 2개월간 <SKY 캐슬>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씁쓸한 풍경’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

“하지 마. 공부 안 해도 돼. 케이야. 하지 마. 안 해도 돼.” 지난 26일(19회) 방송에서 김주영(김서형)은 딸 케이에게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욕심이 아이를 망쳤다는 데서 오는 통렬한 반성이 담긴, 짧지만 강한 문장이었다.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대한민국 한 가정이라도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는 유현미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작가의 바람과 달리 움직였다. 서울대가 있는 낙성대 일대 지하철 역내엔 ‘100% 서울대 선생님’이란 홍보 문구를 내건 사교육 업체 광고가 실렸다. 해당 광고엔 ‘<SKY 캐슬> 제작 지원’이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예서 엄마’ 한서진을 맡은 염정아는 한 사교육 업체의 광고모델이 됐고, 학습효과를 높여준다고 입소문을 탄 1인 전용 스터디룸 ‘예서 책상’은 200만원대라는 높은 가격에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차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피해자답지’ 않게 악착스러운 모습을 보여 악플에 시달렸던 드라마 속 혜나.

캐릭터를 둘러싼 논쟁도 하나의 현상이 됐다. 특히 김혜나(김보라)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또 하나의 잣대를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준상(정준호)의 혼외자인 혜나는 강준상의 집에 들어가 한서진과 맞서는 등 악착같은 면모를 보인다. 이 때문에 혜나란 이름과 ‘혐오스럽다’를 합쳐 ‘혐나’라고 부르거나, ‘주제를 모른다’ ‘기어오른다’ 등 악성 댓글이 관련 기사마다 줄줄이 달렸다.

상위 0.1%의 부모를 가진 캐슬 아이들과 달리 기댈 언덕이 없는 혜나는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다른 학생의 수행평가를 대신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수많은 어른들 틈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캐릭터가 혜나라는 점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한 시청자는 “혜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사회가 가난한 사람 또는 약자에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는 장면을 희화화한 장면. 인터넷 캡처

<SKY 캐슬>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31일 발생한 ‘정신과 의사 피살사건’ 이후 일어난 모방범죄 논란이 그것이다. 같은 달 8일 방송된 <SKY 캐슬> 6회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사 강준상을 칼로 위협하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사건 직후 낸 성명에서 <SKY 캐슬>을 언급하며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중략)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한동안 의협의 성명이 지나치다는 의견과 인기 드라마인 만큼 그 내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31일 기자들과 만난 <SKY 캐슬> 조현탁 감독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조 감독은 “김주영과 같은 입시 코디에 대한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교육현실의 맨얼굴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많이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했다. 이어 “<SKY 캐슬>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입시 정보가 아니라 교육을 매개로 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다. 드라마 20회가 끝나면 아마 이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조 감독은 또 “편집을 하고 촬영을 하느라 반응들을 늦게 접하는데 의도하지 않은 얘기들이 돌 때가 있었다”며 “가난한 캐릭터는 마냥 착해야 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혜나라는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미움도 샀지만 혜나는 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인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의협에서 지적한 부분도 봤다. 의사란 직업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드라마로 인해 일말의 피해를 입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가 인기 있다고 모두 사회적인 반향이 큰 건 아니다”라며 “<SKY 캐슬>은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 반응도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SKY 캐슬>이 빚은 뜻하지 않은 현상은 인기 콘텐츠의 숙명인 동시에 창작자들이 신중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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